초보 사장이 멘탈 털리던 날
'처음'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설레임. 하지만 누군가에게 처음은 두려움이고, 긴장의 연속일 수 있다.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부끄러움일수도 있으며,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당황스러움일수도 있다. 처음은 수줍은 얼굴과 당당한 얼굴, 그리고 숨기고 싶은 어둠의 면까지 천의 얼굴을 가졌다.
베테랑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처음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가 노련하게 대처했을 수도 있으나, 그 이전에 그가 처음일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내가 그렇고,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내가 더욱 그렇다.
요즘들어 광고 카피에서, 책 제목에서, 신문기사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표현이 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내 품에 안겨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은 말이다. 너희들이 이 세상을 만난 것이 처음이듯,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야기 한다. 그래도 둘째는 조금 수월하지 않냐고 말이다. 첫째도 키워봤고, 그 때보다 나이도 들었고, 이제 결혼한지도 꽤 되어 살림도 익숙해 졌을테니 둘째키우기는 식은죽 먹기가 아니냐며 내게 웃어보인다. 과연 그럴까. 아쉽게도 첫째를 키워본 것이 처음이듯, 둘째를 키워보는 것도 처음이라 나는 여전히 초보 엄마다. 초보임에 틀림없다.
고객들은 내가 초보 사장인지 눈치채지 못한다. 아니 초보일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내 쇼핑몰은 그저 수많은 쇼핑몰 중에 하나일 뿐. 거기에서 판매되는 제품 또한 아주 예전부터 그 자리, 그 모습으로 계속 팔던 것같이 여긴다. 그래서 고객은 더욱 당당하게 요구하고, 얼버무리며 이야기해도 다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면 그 고객은 모든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이미 지불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맞다. 고객은 이미 본인이 누릴 서비스에 대한 모든 비용을 지불했음이 맞다. 나는 그 돈을 받았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고객이 핸드폰을 통해 제품을 둘러보고 하나를 선택하여 결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 모든 것이 계약된 것이다. 계약서를 별도로 쓰진 않았으나 암묵적으로 그렇게 합의된 것이다. 갑과 을의 느낌은 아니겠으나 제공하는 자와 제공받는 자의 입장으로 서로의 자리가 정해진 것이다. 적어도 고객이 주문한 제품이 배송되고 우리 사이의 결제가 완료될 때까지는 말이다.
그러고보니 육아라는 것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는 그냥 그렇게, 엄마여야만 한다. 아이를 위해 먹을 것, 입을 것, 잘 것을 준비해주고 안아주고, 달래주고, 챙겨주어야 한다. 엄마와 아이라는 관계 속에서 그냥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다. 아이를 탓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엄마도 처음이라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울텐데, 문득 아이는 그것을 모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 둘을 키워봤는데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나의 엄마였으니 불편한 것을 치워주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사람이라고 여기겠구나. 응애하고 울음으로 표현하면 척척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서 해주는 사람. 이유는 없다. 처음부터 내 엄마였으니까 말이다.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내 엄마니까 말이다.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다.
"아니, 내가 이걸 시킨게 아닌데... 손잡이 있는 걸로 시켰는데 손잡이 없는 것을 보내주시면 어떡해요!"
"네? 아~ 제품이 잘못 배송되었나봅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성함을..."
"아니~ 손잡이 있는거랑 없는 것도 구분을 못해요?"
"죄송합니다. 바로 반품처리 도와드릴게요!"
사실, 주문접수를 할 때부터 이상한 건이었다. 제품의 대표이미지와 상세 페이지 내의 설명이 달랐다. 도매처에 문의를 할까 고민을 하다가 무슨 객기였을까. 그대로 주문접수를 진행했던 건이었다. 몇 일만에 들어온 주문이 신기하기도 했고, 얼른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괜히 마음이 급했고, 손가락이 분주했다.
도매처의 상품등록 자체가 잘못된 게 문제였다. 아니 그 전에 내가 자세히 확인을 안하고 주문접수를 진행한게 더 큰 문제였다. 처음부터 어그러진 주문은 계속해서 문제를 만들어 냈다.
초보 사장에게 반품접수가 익숙할리 없었다. 처음보는 사이트이다 보니 어떤 버튼을 누르고 어떻게 진행해야할지도 몰랐다. 선불? 착불? 긴가민가하며 도매사이트에 반품접수를 시키자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벨이 울렸다.
"아니, 잘못 와서 반품처리 하는건데 내가 배송비를 내야해요?"
"네? 아... 아니요. 저희 쪽에서 배송비는 부담하니 그냥 제품만 다시 보내주시면 됩니다."
"택배사에서 전화가 와서 반품 배송비를 내라고 하는데, 내가 원 참. 내가 살다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 정말."
"아,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택배기사님께 연락드려서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니, 내가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구요. 물건 사면서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구요!"
목구멍 끄트머리에 말이 걸렸다. 나도 처음이라고, 나도 쇼핑몰이 처음이라고, 나도 반품접수 받은 것이 처음이라고 말이다. 정말 빨리 처리해 드리고 싶은데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찾아보느라 늦어진거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말하지 못했다.
"고객님,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최대한 빨리 반품처리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베테랑으로만 살아야 하는 걸까.
처음이라 어색하고 낯설어 조금 느리게 간다고 하면 민폐인 것일까.
어쩌면 아이를 안고서 엉엉 울며 털어낼 수 있는 육아의 세계가 냉정하고 차가운 비지니스의 세계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동글동글한 아이의 눈이 나를 쳐다보며 괜찮다고 위로해 주는 것 같은 순간이 있지 않은가. 그 눈빛에 다시금 힘을 얻고 우유를 타고, 아이를 안아 재울 수 있지 않은가.
아쉽게도 쇼핑몰을 운영하는 초보 사장에게는 그런 동글동글한 눈빛의 위로란 없다. 오늘 탈탈 털린 내 멘탈은 나 스스로 주워담아 깨끗이 씻어 말려 다시 고이 접어 장착해야 한다. 내일 또 어떤 고객의 전화가 걸려올지 모르니 얼른 서둘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일 다른 고객의 전화를 받아들 즈음엔 내 이름 앞에 달려있는 초보 사장이라는 수식어에서 초보라는 이름이 조금은 흐려져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렵지만 조금씩 엄마가 되고, 사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