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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콩 Aug 03. 2022

세네갈의 인사담당자 이야기

3년 11개월, 약 4년의 세네갈 삶이 끝났다. 2015년에는 수도에서 4시간 떨어진 한 고즈넉한 시골 TVET(technical and vocational education and training) 학교에서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가르쳤고 이번 2020년에는 수도의 사무소에서 세네갈 현지 직원 인사관리를 했다. 인사담당 업무를 처음 했던 터라 스스로 담당자로써 역할 및 노동법 숙지에 있어 너무 미숙하고 어려움이 있었지만 스트레스를 받았던 만큼 성장할 수도 있었다. 특히 2021년에는 사무소 내 직원들이 나가고 들어오는 횟수가 너무 잦아 매달 채용을 하고 매달 퇴사를 시켰던 것 같다. 2022년에 들어 조금 안정적인 구조를 갖췄고, 나는 세네갈 사무소를 떠나게 되었다. 오늘은 몇 가지 인사업무를 하며 있었던 에피소드들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세네갈의 인사담당자로써 일을 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업무는 노동법을 읽어내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다 읽진 않고 필요한 부분만 갈췌하긴 했으나, 불어로 되어있고 1997년 이후 개정된 적이 없는 법으로, 국가 노동협약(CCNI)을 같이 읽어야 했다. 또, 우리 사무소의 내부 규정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지 않아 상충되는 부분이 많았다. 노동법과 노동협약, 본부 규정을 조합하고 상충하는 부분을 해석하여 세네갈 사무소 내부만의 규정을 만들었다. 이것도 완성도가 좋지 않아 1년은 넘게 수정 반복 작업을 했다. 특히 상충되는 순간 해석하기 나름 다르게 이해될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아직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치부라 느껴질 만큼 내부규정의 완성도에 속상하지만, 없는 것보단 존재하는 것이 나았다. 동일한 규정으로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고 직원들이 누릴 수 있는 규정 부분을 내부규정으로 선언함으로써 대체근무, 유연근무, 자녀양육휴가 등을 한국인-세네갈 현지인 할 것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초창기 한국인-세네갈인의 조금 불공평했던 부분을 규정을 확립하며 평등하게 만들 수 있었다. 처음으로 노동법을 공부하며 생각한 것이, 많이 아는 사람이 많이 누리고 많이 아는 사람이 어떤 싸움에서든 이기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2020년 파견되고 주말 평일 할 것 없이 노동법 숙지하던 날들..


 현지 직원 채용 시 어떤 부분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너무 어려웠다. 서류심사-필기시험-인터뷰를 보편적으로 진행하는데, 필기시험을 너무 잘 봐 인터뷰에 있어서 기대치가 컸던 지원자들은 사실 대부분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특히 온라인으로 본 필기시험 만점자 1인은 실제 면접 시 전혀 영어를 할 수도 없었고, 지원자의 유명한 기자 남편에 대해 모든 인터뷰 시간을 할애해 남편의 위치를 설명하였다. 인터뷰의 시간적 소요를 줄이기 위해 필기시험을 보고 걸러내는 것인데, 그 필기시험 출제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필기시험은 정말 어려운 문제로 출제하였는데, 또 게 중 훌륭하게 해내는 친구들은 합격의 문 앞에 성큼 다가올 수 있었다. 


나는 채용 시 해외 경험이 있거나 Bi-lingual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채용 프로세스는 오픈해두되, Bi-lingual 학교에 채용 공고를 공유하여 학교에서 인재추천을 할 수 있도록 요청을 하였다. 나의 인사 경험은 세네갈뿐이라, 타 문화권에서도 비슷할지는 모르겠지만, 세네갈의 문화권 특성상 해외 경험이 많거나 새로운 것에 대해 오픈마인드인 친구들이 업무에 있어서도 확실히 오픈마인드를 가지고 배울 준비가 되어있었다. 특히 우리 사무소의 경우 한국인-세네갈의 협력하여야 하는 구조로, 한국에 본부를 두고 그에 맞는 규정을 숙지해야 해 세네갈의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고집하는 직원들은 협업이 어려웠다. 세네갈의 문화와 한국의 규정들을 조합하는, 다른 두 조건들을 모두 맞출 수 있는 접점을 찾아 타협하거나 협력하도록 하는 것이 직원들의 기본적인 요건인데, 자존심이 너무 쌘 세네갈의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를 접해보지 않은 현지 직원과 업무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타문화권을 경험해보지 않은 친구를 채용해보면 적응하기까지 너무 어려워했다. 


우리 사무소는 인건비 연간 예산이 너무 작아 사실 정말 마음에 드는 친구들은 고용하기까지도 어려웠다. 예전에 다자협력사업 컨설턴트 채용을 실시했는데, 너무 아쉽고 기억에 남는 지원자였다. 제네바, 파리 등을 오가던 십여 년이 훌쩍 넘는 경력의 국제기구 근무자였는데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우리 사무소로 지원을 했고 어느 정도 급여 삭감이 될 것을 감수할 수 있다고 한 지원자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우리의 예산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정말 괜찮은 직원들을 뽑기엔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결국 우리가 선택한 것은 대부분 갓 졸업한 유능한 신입직원이었다. 2020년에는 몇몇 정말 유능한 재능 있는 친구들이 사무소로 들어왔었다. 흔치 않게 보이는 적극적인 태도, 능동적인 태도를 갖춘 친구들이었고 또 그만큼 업무 결과도 좋았다. 어린 유능한 친구들은 회사에서 성장되기를 바랐고 받을 수 있는 교육이 있는지 늘 물어왔다. 사업관리 교육, 국제기구에서 제공하는 교육 등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 제공하였고 그리고 스스로 더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친구들은 학업의 연장을 이유로 사무소를 떠나갔다. 유능한 직원들은 회사와 본인이 함께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게 충족되지 않을 때 새로운 곳을 떠나가고 우리는 유능한 인재를 잃게 될 뿐이다. 2021년 우리는 세명의 유능한 직원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덕분에 많은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함께 근무한것에 대해 영광으로 생각한다. 


리셉션으로 들어온 T군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다. 이력서를 봤을 땐 너무 화려한 경력들로 리셉션 업무를 맡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T군은 우리 사무소를 통해 더 큰 세상을 보고 배우고 싶다며 꼭 이 업무를 맡고 싶다고 했었다. 실제로 T군은 늘 아이디어 뱅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샘솓듯 쏟아내는 친구였는데, 사실 리셉션은 성실하고 꼼꼼하고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T군에게 맞는 직무는 결코 아니었다. 늘 지각하기 일쑤였고 서류 정리, 업무 정리 등이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느 날, 지루하고 재미없는 업무에 싫증이 난 T군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T군, 너는 정말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고 추진력도 너무 좋아! 우리 사무소에 있는 동안 행정업무를 조금 다듬어서 나가게 된다면 향후에 창업투자지원 같은걸 받는 게 쉽지 않을까? 네가 오래 일하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알지만, 있는 동안만이라도 우리 최선을 다 해보자!" 그는 나의 조언에 감사해했지만 특별히 달라지지는 않았다. T군은 우리가 종종 채용하는 한 Bi-lingual학교에서 추천을 받은 학생이었는데, 작년 행사에 학교 학장님이 왔었다. 소장님께서는 학교 학생들이 얼마나 업무에 잘 적응하고 잘하고 있는지 이야기하며 한 명, 한 명의 직원들을 언급하셨다. 그러자 학장님은 모든 학생들을 잘 알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으나 T군에 대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언급을 하셨다. 화려한 경력은 화장하는 것과 똑같다. 보이기에는 아름답고 완벽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진실을 보여주는 데는 시간문제다. 나 또한 T군의 화려한 경력 뒤, 짧은 기간의 경력들을 보고 의구심을 표현했었다. 현재 T군은 퇴사를 하고 캐나다에 있는 석사과정으로 진학해 잘 지내고 있는걸로 알고 있다.


 근무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M군의 건강보험 삭제요청 건이었다. 노동법에는 고용주가 고용인에게 사회보장세, 건강보험, 퇴직연금 일부를 필수적으로 제공하게 되어있었는데 건강보험의 경우 고용주는 50%의 비용을 지불할 수 있었다. 50%는 고용인의 몫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입되어있던 국가 건강보험의 경우 정말 버리는 돈에 가까울 정도로 보장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로 인해 M군은 삭제요청을 했고, 노동법에 명시되어있었기에 법률자문을 받은 후 진행하자고 조금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M군은 본인의 권리이고 본인이 지불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더 참을 수가 없으며 당장 삭제하라고 삿대질을 하였다. 나는 손가락을 내리고 매너 있게 행동해달라고 요청했고 M군은 나에게 삿대질한 것이 아닌 내 뒤에 있는 컴퓨터를 향해 손가락을 뻗은 것이라 말했다. 평소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 시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라 정말 당황했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부소장님께 데려가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계속 들어주고 설명하려던 나는 기싸움에서 졌고 부소장님은 더 이상 말할 이유가 없다며 변호사 자문을 듣는 것이 먼저라고 내보내셨다. 재미있는 것이 이 친구는 법을 전공했다. 그리고 이 친구는 이런 발언을 했다. 


" 마담 빈, 내가 노동청에 가서 신고하지 않는 이상 이게 문제가 될 일이 없어!!" 

"그럼 그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래서 더욱 우린 법률자문이 필요해!"

 "그럼 지금 내가 노동청 가서 신고라도 할 거란 말인 거야?"


정말 이해하고 싶었는데, 사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사건 이후 이 맥락을 이해하려 해도 어떤 경우의 수를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법을 공부한 친구였기에, 더욱 이해시키기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스스로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타협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지, 내 입장이 너무 커 상대방 혹은 회사의 입장을 조금도 헤아릴 수 없는 건지 잘 모르겠다. 우린 가족이고, 우린 동료니까 믿고 일해야지 왜 노동청에서 내가 신고할 거라고 생각하지?라는 생각의 발언은 나를 너무 혼란스럽게 했다. 이 친구는 마지막까지 병가 신청서 제출한것을 확인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함을 들어냈다. 사실여부를 떠나 본인을 불신한다는 것에 매우 포커스되어 있었다. 인사 담당자는 사실 확인을 하지않고 직원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걸까? 


서아프리카를 오가기 시작한 지 꽤 긴 시간이 흘렀다. 2015년부터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르완다를 오가며 일을 해봤는데.. 내가 한국인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을 못하듯 이들에 대해서도 매번 다른 부분을 보게 된다. 하지만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문화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과 그들의 커뮤니티별 성향이 확실하게 존재함은 느낄 수 있다. 그게 문화일 수도 있지만 지리적 요건일 수도 있고 가족 구성원일 수도 있다. 세상에 정답이라는 것은 존재하진 않겠지만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서 읊어대고 있는 '정도'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 같다. 타인의 상황이라고 비난 비판을 하던 것이 내 상황이 되었을 때 결코 너그러이 용서가 되고 타협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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