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창 시절 조금 느린 아이였다. 주는 데로 받아먹는 것이 아닌,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한 아이였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학습은 나를 부진아, 느린 아이로 취급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때는, 급식 먹는 속도가 느려 매번 꾸중을 듣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개구리는 멀리 뛰기 위해서 더 움츠리고 움츠린 만큼 높이 뛴단다.
엄마는 늘 나를 이렇게 지지해 주셨다. 느려도 괜찮고 못해도 괜찮다고 그랬다. 그 대신 그만큼 시간을 많이 투자하여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곤 했다. 왜 느린지, 왜 고민하는지, 무엇이 어려운지 최선을 다해 들어주셨고 그 믿음이 끝까지 할 수 있다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에야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정말 모자란, 부진아인 줄 알았다. 그리고 부진아였다. 학급에서 비치는 부끄러운 시선들이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는척하고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모르는 건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젠 시간을 가지고 고민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의 가치를 매우 잘 알게 되었다. 조급해하지 않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신경 쓰며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내가 참 다행이라 생각해 본다. 실제로 초등학교 3학년 때 느린 급식으로 혼이 날 때면 급하게 먹으려다 체하곤 했었다. 그럴 때면 엄마가 해준 반복된 개구리 이야기는 나를 지지해 줄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나는 지금 조금 모자라지만 잘 될 거야-하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내가 5살 때쯤이었을까, 우린 경북대학교 근처에 살았었고 종종 경북대학교로 산책, 피크닉을 나가곤 했다. 대구에서 최고의 국립대학교인 경북대학교, 엄마는 이 학교를 제 집 드나들듯 오면 내가 이 학교를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단다. 그리고 때때로 욕심을 더 내시기도 했다. "우리 은빈이 나중에 크면 이렇게 학생들처럼 이 학교에서 공부해야지! 아님 해외에 훨훨 날아가 세계 제일인 하버드를 가도 엄마는 좋아!"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이런 이야기들은 일절 하지 않으셨다. 내가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를 갔을 때 엄만 내가 4년제 대학을 갈 수 있으리란 기대를 크게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런 이유에서 일까,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리면 어쩌지 이런 고민은 별로 없었다. 과외가 필요하면 짧고 굵게 필요한 만큼 요청을 했고 공부하란 소리는 거의 못 듣고 자랐다. 나에 대한 공부와 관련된 기대가 크지 않으셨다고 생각했고 엄마가 늘 강조했던 내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집중했다. 최근에 한 기사에서 보통 부모의 기대는 자녀를 부담스럽게 하고 그 실망감을 주지 않겠다는 압박이 꽤 크다는 글을 봤다. 우리 아이가 어떤 대학- 어떤 지위- 어떤 학군에 들지 말지 엄마는 한 발자국 물러서서 자녀가 스스로 선택하고 탐색할 수 있는 여유를 줘야 하는 것 같다. 다행히도 나의 엄마는 그러했다. 조금 느린 위축된 나에게 너는 잠시 움츠리고 있는 것이며, 그걸 펼치기 위한 순간을 인내해내고 있다고 되뇌어 주었다.
우린 주변인들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서른 중반이 지난 지금도 나는 내 친구들과 가족들의 사랑을 먹고 자라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면 나의 주변인들이 잘하고 있다고- 잘 못해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그것이 나의 양분이 된다. 우리 아이들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랑과 믿음을 줘야 한다. 스스로를 믿을 을 수 없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믿고 있다며 믿어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줘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