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에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이 글은 패션 산업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컨퍼런스&미디어 플랫폼 [디토앤디토]에 기고한 글입니다
지난 5월 31일 시작된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 전시가 오는 9월 10일 마무리됩니다. 미리 얼리버드 티켓까지 구매해 두었건만, 이런저런 일정으로 미루다가 전시가 거의 끝날 때쯤 되어야 겨우 방문할 수 있었는데요. 아마 스니커즈 마니아 분들이라면, 희귀한 컬렉션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전시 같았습니다. 물론 꼭 마니아가 아닌 분들도 가볍게 즐기기 나쁘진 않았지만, 후기들을 둘러봐도 스니커즈에 대한 애정도 차이에 따라 만족도가 확실히 갈리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이러한 현상은 매우 신기한 일입니다. 특정 아이템 하나가 어떤 문화의 상징이 되고, 결국 거대한 산업의 토대까지 일구게 된 게 스니커즈 말고 또 있을까요? 그래서 오늘은 전시 그 자체보다는, 전시를 통해 느낀 '스니커즈 문화가 어떻게 패션 산업 전체에 이렇게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이번 전시는 사실 그 의도부터가 다소 불순(?)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관람객을 반기는 건, 스니커즈 시장 규모 그래프, 그리고 바로 뒤에 가장 인기 많다는 스니커즈 Top 3가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들을 선정한 건, 바로 글로벌 리셀 플랫폼이자 이번 전시의 메인 스폰서이기도 한 스탁엑스입니다. 즉 이번 전시는 거대한 리셀 시장 홍보물이라고 봐도 어색하지 않은 셈이죠. 결국 애초에 이러한 기획이 가능했던 건, 스니커즈가 특정 문화를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내는 존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총괄 디렉터로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스니커헤드라 할 수 있는 와디를 선정한 것도 상당히 의미심장했습니다. 스니커즈 시장과, 여기서 파생된 리셀 시장은, 결국 스니커즈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생태계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스니커즈와 함께 리셀 시장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는 럭셔리 브랜드들은 처음부터 고가의 가격표가 붙어 있습니다. 희소성에 따라 일정 부분 프리미엄이 붙긴 하지만, 스니커즈만큼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스니커즈가 이렇게나 비싼 몸값을 자랑하게 된 건, 이를 열광적으로 추종하는 마니아, 스니커 헤드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내며 이와 같은 문화를 계속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결국 이와 같은 스니커즈 생태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고요.
이처럼 스니커즈가 하나의 아이콘이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나 접근 가능한 상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럭셔리 브랜드들의 기원을 따라가면 결국 '하이 컬처'가 나옵니다.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가 유럽에서 탄생한 것 역시 이들의 뿌리가 귀족 문화에 있기 때문입니다. 클래식은 그래서 강력했지만, 새로운 세대에게 늘 고루했습니다.
조금 더 신박한 걸 찾던 이들에게 스니커즈가 본격적으로 발견된 건, 바로 1970년대입니다. 이전까지 스니커즈는 기능적인 상품에 가까웠습니다. 운동선수들이 주로 이를 소비하였고요. 그래서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스니커즈 역시 최첨단 기술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길거리 농구를 하면서 스니커즈를 신던 이들을 보며 누군가는 '아 멋지다'라는 감정을 느낍니다. 여기서부터 스니커즈는 거리 문화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떠올리기 시작합니다.
전시 역시 이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상당한 공간을 할애합니다. 특히 여기서 Run DMC는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스니커즈를 하나의 상징물로 활용하며 힙합 문화를 주도하였고요. 특히나 'My adidas'를 발매되면서, 아디다스의 슈퍼스타는 시대를 대표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스니커즈는 기존의 '하이 컬처'와 대비되는 '서브 컬처'의 대항마로 자리 잡습니다.
당시 소외된 이들이 스니커즈에 이와 같이 열광한 건, 스니커즈가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신발 가격이 아주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명품처럼 아예 부담스러울 정돈 아닙니다. 이처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향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확장성이 탁월했습니다.
더욱이 여기에 커스텀 문화가 등장하면서, 스니커즈는 하나의 '디자인 오브제'가 되어 버립니다. 사실 처음 Run DMC가 '끈이 없는 아디다스'를 신었을 때부터 변형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스니커즈 마니아들은 끈을 희한하게 묶기도 하고, 신발에 색을 칠하는 등 본인의 멋을 뽐내게 되고요. 아예 커스텀이 가능한 신발 모델이 출시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는 후술 하겠지만 스니커즈가 현재의 위상을 가지게 만든 결정적인 요소로 자리 잡습니다.
이렇게 1970년대 시작된 스니커즈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건, 이어서 80년대에 등장한 에어 조던 시리즈의 역할이 컸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NBA의 전성기를 불러온 것을 넘어서, 본인을 모델로 한 거대 브랜드 조던을 탄생시켰는데요. 이때부터 스니커즈는 수집의 가치를 지니기 시작합니다. 에어 조던은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조던의 열정과 가치가 담긴 하나의 상징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와 같은 거대한 상업적 성공은 조던에 이은 수많은 시그니처 시리즈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아쉽게도 이들이 조던만큼의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요.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너무나도 충격이 컸기에 스포츠뿐 아니라 문화 전반이 이에 주목하게 되었고요.
이를 계기로 많은 예술가들이 이때부터 스니커즈에 관심을 표하기 시작합니다.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동시에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이, 대중에게 자신의 철학을 알리고 싶어 한 예술가들의 구미를 자극한 건데요. 안 그래도 커스텀 자체가 스니커즈 문화의 속성 중 하나였기 때문에, 변형이 자연스럽다는 점도 한몫했습니다. 이처럼 스니커즈 상품에 예술가들의 커스텀이 더해지자, 스니커즈가 가지는 가치는 지속적으로 올라갑니다. 당연히 브랜드들이 이를 놓칠 리가 만무했고요.
브랜드는 이때부터 콜라보와 한정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여러 예술가, 셀럽들과 협업을 하여 기존 스니커즈에 다양한 변주를 주었고요. 이중 일부는 수량을 한정하여 수집가들의 욕망을 자극합니다. 2005년 나이키가 제프 스테이플과 협업하여 단 150족만 만들었다는 피죤 덩크는 이를 대표하는 사건입니다. 당시 한정판 신발을 구하려고 몰린 이들이 소란을 일으켜 경찰들이 출동하기도 하였거든요. 뉴욕포스트는 이를 신문 1면에 실으며 '스니커 폭동'이라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이와 같은 마케팅 효과에 반색한 브랜드들은 콜라보나 한정판 발매를 더욱 늘려갔고요,
그리고 여기서부터 마니아들의 문화는 사회 주류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그전에는 스니커즈라는 아이템이 큰 인기를 끌긴 했지만, 이를 수집하는 것 자체는 소수의 문화였는데요. 한정판 마케팅이 활발해지고, 이들 신발이 웃돈을 주어가며 거래되면서, 이들이 가진 경제적 가치가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한 겁니다. 돈이 몰리자 시장이 형성되고, 일반 대중들도 몰리기 시작한 거죠. 그러면서 그동안은 신발 판매가 일으키는 매출 규모가 주 대상이었다면, 리셀의 가능성도 이후 조금씩 조명받기 시작합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스탁엑스 같은 리셀 플랫폼들이 201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했고요. 국내에서도 네이버가 크림을, 무신사가 솔드아웃을 만들며 이러한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시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스니커즈 문화가 탄생한 배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는데요. 사실 지금의 스니커즈 중심의 리셀 시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일각에서는 너무 현재 시장이 과열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하고요. 또한 나이키, 아디다스 등 일부 브랜드가 통제 가능하기에, 신발 시장 자체는 앞으로도 남겠지만, 파생된 리셀 시장은 지금의 위상은 앞으로 유지하기 어려울 거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스탁엑스 같은 리셀 플랫폼들이 이와 같이 스니커즈 문화를 부각하는 것도, 어쩌면 브랜드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생적인 시장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의 일환일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본질적으로 '슈테크' 트렌드와 상관없이 스니커즈가 가지는 가치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물론 현재처럼 스니커즈 자체가 투자 대상이 되는 건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처럼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정판 자체야 다르겠지만, 이외 제품은 결국 생산량을 결정하는 브랜드의 결정을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최근 나이키는 생산량을 조정하고, 리셀 금지 약관을 신설하는 등 본격적인 견제에 나서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 대상으로써의 가치와 별개로, 스니커즈가 패션과 트렌드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는 건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겁니다. 앞서 언급했던 많은 속성들이 여전한 데다가, 지금까지 쌓인 역사의 힘은 결코 변하지 않을 거기 때문입니다. 일부 브랜드나 셀럽들이 이를 좌우할 수도 없고요. 기능성 신발에서 거리 문화의 상징으로, 여기서 다시 수집과 투자의 대상까지 끊임없이 변모해 온 스니커즈. 앞으로 스니커즈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며 패션 시장을 이끌어 나갈지, 계속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네요.
※해당 전시는 아쉽게도 9월 10일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는데요. 비록 전시는 끝이 났지만, 전시 총괄 디렉터를 맡은 와디의 도슨트 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 가능하오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봐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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