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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대호 May 18. 2016

타오르는 불씨, 얀 팔라흐

Dobrý den, Praha - 체코의 모든 것.

01. 여행의 불편함이 안겨 주는 생각


여행하며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물은 어딜 가나 사 먹어야 하고, 화장실은 돈을 내야 하며, 식당과 상점 그리고 행정 서비스는 느리고 불친절합니다. 그런 낯선 불편함이 여행의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고는 합니다, '와 정말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구나'.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지배와 6.25 전쟁을 겪었음에도 길지 않은 시간에 민주화를 이룩해냈으며 한강의 기적이라 일컬어질 정도의 눈부신 발전을 거뒀습니다. 누군가의 각고의 노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와 같은 번영을 누릴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36주년입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의지와 열망으로 신군부세력과 폭력에 맞선 민중항쟁은 많은 희생의 결과를 낳았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계기가 되었고 필리핀, 타이, 중국, 베트남 등의 아시아 국가로까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끝까지 기억해야 하고 감사함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체코도 오랜 외세의 지배와 이념적 대립으로 우리와 비슷한 역사와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공산정권 당시, 개혁 실패 후 침묵하던 시민들을 깨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한 청년과 그를 기억하고 감사해하는 체코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02. 숭고한 희생정신


얀 팔라흐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타오르는 불씨>의 한 장면

여느 때와 다름없던 바츨라프 광장. 프라하 국립박물관 앞에 한 청년이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입고 있던 코트를 난간에 걸쳐두고 준비해온 기름을 온몸에 뿌리기 시작하죠. 그리고 불을 붙입니다. 화염에 휩싸인 그는 바츨라프 동상으로 뛰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쓰러집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코트 안에 있는 편지를 읽게 합니다. 그 후 도착한 구급차에 실려갔지만 끝내 숨을 거둔 그 청년은 20살 까를대 학생 얀 팔라흐입니다.

얀 팔라흐 ⓒWikipedia commons

그는 1948년 프라하에서 50km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프라하 카를대학교에 입학해 역사와 경제학을 전공하던 그때, 시대는 격변하기 시작합니다. 1968년, 프랑스에서 학생들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사회변혁 혁명이 일어납니다. 68 혁명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독일 등 국제적으로 번져 나갔고, 체코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당서기 알렉산드로 둡체크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제창하고 체코에 봄바람이 불기 사작하죠. 그때 얀 팔라흐는 소련을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4일 만에 돌아옵니다. 소련이 자신의 조국 체코를 무력으로 침입했기 때문입니다.


소련의 탱크 앞에 무참히 진압당하는 국민들을 목격합니다. 그 후 그는 공산정권에 대한 파업과 항의 시위에 참가합니다. 그러한 시도들이 번번이 실패로 끝나자 자신이 속해있던 단체에 좀 더 급진적인 시위를 제안합니다. 그러나 뚜렷한 답이 돌아오지 않았고, 항의의 다른 형태를 계획하게 됩니다. 긴 시간과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지 않고,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죠.


그리고 1969년 1월, 바츨라프 광장에서 실행에 옮깁니다. 당시 그를 담당하던 의사는 의식이 있던 그와의 대화를 통해 저항에 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고 합니다.


‘It was not so much in opposition to the Soviet occupation, but the demoralization which was setting in; that people were not only giving up, but giving in. And he wanted to stop that demoralization.’
                                                                                                         -Jaroslava Moserova-


 의사의 말에 따르면 그는 소련의 압제에 대한 반대보다도 국민들이 굴복하고 포기해서 침묵하지 않기를 바랐던 겁니다. 큰 화상을 입었던 얀 팔라흐는 곧 숨을 거둡니다. 이후 그의 사체는 법의학 건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장례가 치러집니다.

얀 팔라흐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거의 8 시간 동안 기다리는 사람들. ⓒhttp://www.janpalach.cz/

이후 얀 팔라흐의 소식과 그의 요구사항은 체코 전역으로 알려집니다. 사람들은 그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단식 투쟁을 시작으로 다양한 항의 행진과 시위를 펼칩니다. 검열의 폐지, 언론 통제 중지, 공산정권의 퇴진을 외치며 말이지요. 하지만 체코 공산정권은 각종 물타기를 시도합니다. 얀 팔라흐를 정신이상자의 광기로 폄하하고 자살의 성격을 왜곡했습니다. 그리고 1968년 '프라하의 봄' 이후로 가장 강력한 통제를 가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다시 올 것만 같았던 봄은 끝내 오지 않고, 프라하의 겨울은 점점 길어지게 됩니다.

1969 년 1 월 18 일부터 국립 박물관 앞에서 약 15명의 젊은 사람들이 단식투쟁에 참여했다. ⓒhttp://www.janpalach.cz/
프라하 행진을 선도하는 학생들..  ⓒhttp://www.janpalach.cz/




03. 타오르는 불씨


우리나라에서 얀 팔라흐라는 인물에 대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제 15회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얀 팔라흐에 대한 사건을 다룬 영화 <타오르는 불씨>가 국내 최초로 상영되었죠. <타오르는 불씨>는 미국의 케이블 방송인 HBO에서 3부작 미니시리즈로 제작된 드라마입니다. 2014년 유럽 15개국에서 방영되었으며 6월에는 미국에서 극장 개봉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언론과 비평의 열광적인 찬사를 받고 여러 가지 상도 수상하였죠.

<타오르는 불씨> 포스터. 영화에서 얀의 어머니는 진보 성향의 변호사 다그마르 브레쇼바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바츨라프 광장에서부터 시작하여 분신 장면 이후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소식을 듣고 충격에 휩싸인 가족들, 고통 속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얀 팔라흐에게서 정보를 캐내려는 경찰과 기자들, 그의 유서 내용을 널리 전하려는 학우들, 그리고 얀의 뜻을 이어 분신 항거를 하는 얀 자이츠와 에브젠 플로 체크의 모습까지.


그 가운데서도 얀 팔라흐의 사건을 왜곡하고 조작하려는 정부와 그에 맞서 아들의 명예를 지키려는 가족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영화입니다. 정신이상자의 광기로 폄하하거나 자살의 성격을 왜곡하며, 재판을 통제하려는 정부 권력층과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임에도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은 개인의 명예회복을 뛰어넘어 올바른 역사로의 투쟁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04.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벨벳 혁명 25주년 당시 얀 팔라흐 청동 십자가에 추모 모습. ⓒWikipedia commons.

1989년에서야 비로소 얀 팔라흐를 공개적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체코를 떠나 독일로 망명한 체코의 천문학자 루보 시 코호우텍은 자신이 발견한 소행성의 이름을 '1834 팔라흐'로 짓습니다. 까를대학 예술학부 앞 광장은 그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조각가 Olbram Zoubek에 의해 만들어진 그의 얼굴은 학부 건물에 세워졌습니다.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뛰어난 공헌을 한 그를 기리기 위해 바츨라프 광장에 추모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매년 그의 기일인 1월 19일에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많은 인파와 그들이 남긴 촛불이 바츨라프 광장을 가득 매웁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무려 20년 뒤에서야 체코에 완전한 봄이 찾아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코인들은 기억하려 하고 있습니다. 얀 팔라흐의 숭고한 희생정신 덕분에 오늘날의 번영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프라하를 걷다 보면 그를 기억하려는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얀 팔라흐의 사건은 말해줍니다. 어느 역사에서든 희생에 대한 승리는 쉽게 따라오지 않는다고. 한 사람의 영웅적 희생의 불씨가 남아 있는 자들의 끈질긴 싸움으로 들불로 번져야 역사가 바뀐다는 것을 말이지요.


Olbram Zoubek에 의해 조각된 얀 팔 라흐의 마스크와 기념 상패. 20년이 지난뒤에나 당당히 세워놓을 수 있었다. ⓒWikimedia commons
 Legerově 거리에 있는 기념벽화. ⓒBy Jklamo via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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