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디자인 일을 하는데, 최근 좋은 기회로 디자인 외주를 받아서 작품 작업을 잠시 쉬고 있다. 이번에 하게 된 디자인 업무는 내 건강상 편의를 봐준 고마운 일인데다 실무적으로 처음 해보는 분야라 이것저것 공부하면서 재밌게 하는 중이다. 어느덧 시안 작업에 들어가게 됐고 너무 즐거운 나머지 작가 일은 접고 디자인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혼자 농을 쳤다. 물론 정말 디자인 업계에 종사해서 전력을 다하게 되면 또 괴로워하겠지만..
작품 하는 과정을 생각하면 즐겁지만 힘들 때가 많다고 느낀다. 그 힘듦과 힘듦으로 인한 괴로움이 내게 미치는 영향은 시간만 흘려 보내며 작품 재료 구매도 못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증명한다. 곧 신작을 만들어야 하는 나로서는 한숨이 나온다. 몸도 좋지 않거니와 작품 할 때의 압박감으로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드는 통에 ‘해야지, 해야 하는데-’ 하면서 계속 일이 밀리는 것이다.
작품을 하는 건 분명 즐겁고 보람 있고 좋다. 그 어떤 일도 내게 이런 만족감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왜 100% 즐겁게 여기지 못할까. 감사해도 모자랄 판이니 스스로를 타박하듯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하기 싫은 마음 하나 없이 완벽하게 즐거워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환상에 젖은 질문을 던지면서.
그 환상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몇몇 짤로 부서졌다. (ex. 그렇게 울고불고 힘들어할 거면 그만 두지? (답 : 미야자키 하야오의 4번째 짤을 보시오.)) 거장도 하기 싫어 죽겠을 때가 있고 해도 안 되는 때가 있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 문학가, 음악가, 미술가, 영화 감독, 운동 선수 등 다양한 이들이 그런 문제를 안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동생과 이야기하는 동안 같은 고민을 했다고 알려진 몇몇의 이름을 떠올렸고 각각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남달라 보여도 똑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묘한 위로를 받았다.
보통 어떤 일이든 과정을 볼 기회가 없고 결과만 마주하게 되기 때문에 그 일을 어려움 없이 단번에 성공시켰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었으리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짐작 이상이다. 완벽한 결과를 내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할 때가 허다하고 심지어는 차마 보여줄 수 없는 것일 수 있기에. 하지만 하기 싫은 걸 인내하고 해내는 사람, 해도 안 될 때를 견디는 사람, 미완을 품는 사람이야말로 자기 한계를 넘을 수 있고 자신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걸 테지.
한편 시기가 시기인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눈에 자주 들어오고 있다. 최근 알게 된 바이올린 만화 <더 콩쿠르>도 그런 것이었다.
계속 의심이 돼.
내가 정말 이걸 해도 되는지.
어울리지도 않는 일을 그저 욕심부리는 건 아닌지.
꽤 오랫동안 매일같이 말야.
그치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고민하는 거고,
힘들다고 해서 즐겁지 않은 건 아니잖아?
힘들 정도로 열심히 한 게 뭐!
(무슨 소리야, 던컨은 잘 하잖아!)
힘들어…
힘들어 죽겠어.
어릴 땐 레슨 빠지려고 아픈 척도 했어.
어제도 연습이 잘 안 돼서 같은 구간만 반복했고.
오늘은 더했지.
스케일만 계속했거든.
힘들어, 진짜~
근데 아마 내일도 힘들 거야.
(근데 왜 계속해?)
음…
힘들기만 한 건 아니니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한
계속할 거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저 하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때가 있는 거란다.
모르겠어요.
바이올린을 좋아하는데.
너무 좋아하는데, 계속 좋아하고 싶은데,
실수를 하는 그 순간이
너무 무서워요.
좋아할 자신이 사라지는 기분이랄까.
이러다가 바이올린을 정말
싫어하게 될까 봐,
그게…
그게 싫어요.
스스로에게
확신이 안 서는 걸 안다.
그래서 그만둘 거냐?
(도리도리)
그럼 잘할 수 있게 만드는 길을 가야지.
그게 더 즐겁잖니?
누군가가 소중한 악기를 네게 맡기고,
네가 만든 바이올린이
누군가의 소중한 악기가 되고,
스스로에게
기대를 하고 싶잖아.
그걸 억누르지 마라.
순수히 ‘좋아함’ 안에도 무수히 많은 감정이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달까. 좋아해서 즐겁고, 좋아해서 잘하고 싶고, 좋아해서 힘들고, 좋아해서 두렵고, 좋아해서 기대가 되고, 좋아해서 조바심이 나고, 좋아해서 행복하고. 좋아해서, 좋아하니까. 이 모든 건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순수히 사랑하기 때문에.
내 환상은 좋아하는 일을 너무 단편적으로 바라봐서 만들어진 것 같다. ‘좋아하면 그냥 좋아해야지’라는 식으로 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단편적이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아니, 그전에 분명 내 일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도 그 일을 할 때 어떤 반응이 나오게 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좋아하는 일로부터 덕지덕지 쌓인 감정을 치우면 가장 밑바닥에는 사랑이 있다. 그래, 사랑이라면. 사랑이니까 잘 하든 못 하든 그런 조건과 상관없이 마음껏 사랑하고 싶은 것이고, 사랑하니까 그저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모순되고 뒤죽박죽인 모든 감정은 그 위에 쌓인 것이었다.
다시금 내 삶에 좋아하는 일, 사랑하는 일이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고 감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비로소 마주하게 됐을 때를 떠올렸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설렘으로 심장 고동이 귓가에 울린다. 그때 나는 새 언어를 얻은 것 같았지.
창작하는 일의 기쁨을 알기에, 소중한 그 일을 할 수 있음이 좋아서 힘들어도 끝까지 붙들고 싶다. 그럼에도 붙드는 그게 사랑 아니고 무엇일까. 내가 작품 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이다.
다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짤을 본다. 아이러니하게도 창작의 고통에 일그러진 모습마저 행복하게 보이는 것 같다. 괴로움을 견디고서라도 할 수밖에 없는, 그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깊고 놀라운 애정이 느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