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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빈 Nov 30. 2023

편지 쓰고 싶어지는 밤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글 쓰는 행위를 퍽 좋아하는 나는, 오랜만에 함께 여행하게 된 친구들을 생각하며 펜을 든다.


같은 교복을 입었던 우리들은 어느덧 20대 끝자락 사회인이 되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진로 탐색을 위한 봉사 동아리로 시작된 만남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자연스레 여행하는 모임이 되었고, 나를 포함한 여섯 명 모두가 함께한 마지막 여행은 대학생 시절이던 5년 전이다.


학생일 때는 나름대로 시간을 맞출 수 있었는데, 이제 각자 다른 지역에서 직장을 다니고 일이 있다 보니 여섯 명이서 한날한시에 만나 여행을 떠나기도 쉽지 않다. 앞으로 또 함께 여행을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것도 사실. 다음 여행보다 우리들 중 누군가로부터 청첩장을 받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장난삼아 해 본다.


만남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이번 여행은 다른 때 보다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특별한 만큼 손바닥만 한 종이에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들을 골라본다. 골라서 꾹꾹 눌러쓴다. 20대라는 시간, 우리 모두 자기만의 빠르기대로 부지런히 잘 달려왔다는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그런데 직접 펜을 들어 종이 위에 문장을 적는 일이 드물어져서 그런지 쓰는 감각이 조금 어색하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약한 팔목을 지지해 가며 엽서를 채우는 동안 자꾸만 글씨가 휘청인다. 나는 갓 태어나 비틀비틀 일어서려고 애쓰는 아기 기린을 떠올리며 내 못난 글씨를 측은한 듯 우스워한다.


누군가에게 글을 쓴다는 건 생각보다 힘이 필요한 일. 하지만 되려 힘을 받는 일. 얼얼하게 힘을 다해 다섯 명에게 나눠줄 엽서를 쓰고 나니 왜인지 마음이 흘러넘치는 것 같다. 이건 아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한 행위가 남긴 자욱일 것이다. 표현의 크기가 손바닥만 하더라도 상관없나 보다. 아무리 소소해도, 단 몇 마디라도 내 바깥으로 솔직하고 애정 어린 감정을 내비칠 수 있으면 마음은 자라는 것이다.


넘치는 이 마음 그대로 모아 다시 길고 긴 편지를 쓰고 싶어 진다. 다정한 말들로 한껏 다독이고 싶다. 편지의 수신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냥. 그런 편지가 쓰고 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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