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도 햇살 Aug 30. 2023

듣기를 잘하는 사물은 무엇일까

아이의 관점에서 보는 세계는 어른과 달라

 요즘 아이가 사춘기 진입으로 매일 솟구치는 감정과 인간관계의 레일 위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하루는 자려고 누웠는데, 그날은 오랜만에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은 날이었는지 살갑게 다가와서 종알종알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학교 수업에서 발표를 하는데, <나는 000가 되고싶다>라는 주제로, 그 이유가 담긴 물건이나 풍경 등의 사진을 찾아 자료를 만들어 발표하는 거였단다. 우리 아이는 요즘 주변의 친구들 관계와 그에 파생되는 많은 일들로 인해 지쳐 있어서, 자기가 이야기를 하면 그걸 잘 듣고 집중해주는 물건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그게 되고 싶다는 발표를 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야기 듣기를 잘 해주는 물건이 어떤 것인지, 도대체 있기나 한지 몰라서 한참 헤맸다고 했다.



  “내 말을 듣는걸 잘 하는 물건이 도대체 뭐냔 말이지. 스피커도 아니고 마이크도 아니고. 그건 말하기를 더 잘 하도록 돕는 물건들이지, 누군가가 말하는걸 잘 들어주기만 하는 물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더라고.


친구들이 ‘일기장’ 어떠냐고 했는데, 그건 내 말을 글로 적어놓는 것인데 듣는 것이 아니고 목적도 다르니 그건 아니었고.


 그래서 내가 고민 끝에 뭘로 했는지 알아? ‘엄마’로 했어. 엄마는 이렇게 내가 하는 얘기를 그냥 잘 들어주잖아. 그리고 우리 엄마같은 경우 말고 일반적인 ‘엄마’도 아이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역할의 사물로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했어. 비록 물건이 아니고 인간이지만.


그래서 ‘나는 엄마가 되고싶다’로 발표를 했어. 엄마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피곤해도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고, 나도 그런 엄마가 되고싶다고, 한 열 줄은 썼다고! 발표하고 자료를 학교에 두고 와서 그렇지, 엄마가 그 내용을 봤으면 감동할걸?“


  “어, 그래 왠일이라니. 고맙다. 그거 칭찬인거지?

 그런데 정말 엄마가 잘 들어주나?”


  “음, 대체로 그렇기는 한데 사실대로 말하자면 항상 잘 들어주지는 않아. 말을 이쁘게 하지 않고 심하게 할 때도 있어. 그래도 '말을 잘 들어주는 사물'이 생각날 때 떠오르는 거니까 평소에 잘 들어주는 셈이지.


참, 아빠한테는 비밀로 하기로 해. 엄마만 칭찬하는 거라고 샘 내고 삐질 것 같아”






  오랜만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내성적이고 말을 많이 하는것보다는 누군가의 말을 듣거나 그를 관찰하는 게 수월해서 어딜 가나 말을 하는 ‘스피커’보다는 듣는 ‘리스너’에 가깝다. 또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오면 피곤한 데다가 집안일도 쌓여있는데, 아이들에게 말까지 많이 하려면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하니 왠만하면 리스닝 위주가 된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은 외향적이라 말하기를 좋아하니, 나로서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애쓰는게 아니라 수동적으로 듣기를 당하는 셈이다. 요즘 아이들의 삶은 '라떼'와는 너무 다른 세계라,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맥락인지 쫓아가기 버거워서 더 열심히 들어야 이해가 된다. 물론 편안히 듣기만 할 수 없고 말을 확 잘라야 하는 상황들이 종종 일어나긴 한다. 하여간 ‘듣기를 잘하는 사물’이라니, 사춘기 자녀 엄마의 역할로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사족. 스피커의 원리는 전기 신호를 소리로 변환해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전기 신호의 섬세한 전파를 잘 들을수 있어야 제대로 복원해서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단다. 낮은 소리와 높은 소리, 터프한 소리와 부드러운 소리의 전파를 잘 구분해 최대한으로 살려서 내보내는 것이니 먼저 듣기를 잘해야 하는 셈이다. 결국 말을 잘 하려면 듣기도 잘 해야 한다는 소리다.



출처 네이버 검색


끝.

매거진의 이전글 은둔형 외톨이가 이렇게 많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