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시작한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서른이 훌쩍 넘도록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다가, 코로나 블루가 찾아오던 어느날 문득,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운전을 할 수 있으면 참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열심히 학원을 다녀서 내 생애 최초의 국가 공인 자격증을 취득했다. 나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은지 학원은 연일 북새통을 이뤘다. 갓 민증이 나온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듣자니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한 방에 붙었습니다. 코로나 특수로 성형외과도 굉장히 인기가 많다지요.
아무튼 초창기 굉장한 설렘과 극도의 긴장 구간을 넘어, '오 조금 익숙해지는걸? 나는 역시 운전 천재였던 걸까?'의 운2병 구간(*운전 2개월차에 흔히 찾아오는 병)을 지나, 한 번 차를 시원하게 긁고 나니 이제야 좀 대한민국의 어엿한 드라이버가 된 느낌이다. 동승자들이 운전이 많이 늘었다고 칭찬을 해주니까 처음보다는 그래도 조금 늘지 않았을까...는 희망사항이고, 실은 누가 봐도 아직 초보 운전이겠죠.
운전을 시작하고 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참 많다. 뭐 딱히 모르고 지냈어도 인생에 큰 불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택시 기사님들의 터프함이다. 예전부터 굉장히 박력 있는 분들이 많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도로에서 운전대를 나란히 하고 보니 도로에 임하는 마음의 자세가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같은 경우엔 '오늘도 무사히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하게 해주세요'의 마음이라면, 도로에서 마주치는 택시의 경우에는 '무조건 빨리 가야한다'는 생각일 테니까 다른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한동안 택시를 타지 않다가 얼마 전 여행지에서 오랜만에 택시를 탔는데, 정말 신세계를 경험한 기분이었다. 아니 도로에 차가 빽빽한데 여기에서 이렇게 가로질러 가신다고요? 아니 제한 속도가 60인데 120을 밟으신다고요? 마치 차선을 넘나들며 가지고 노는 도로 위의 모차르트를 보는 것 같았다. 바흐와 헨델만 듣다가 모차르트를 처음 들은 사람들의 기분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버스도 터프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버스엔 많은 승객들이 타고 있기도 하고 덩치도 크니까, 만날 때마다 항상 '먼저 가세요'라는 마음으로 대하는 편이다. 덩치 큰 차들을 보면 초등학교 1학년 때 중학생 형들을 보는 느낌이 드는데 저만 그런 건 아니죠?
그래서 운전을 시작하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신나게 쏘다녔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수영과 피아노도 어릴 때 배운 친구들이 잘 한다고, 뒤늦게 배운 운전이라 늘 긴장의 연속이다. 서울은 웬만한 동네는 차를 가져가는 게 바보일 정도로 도로도 불편하고, 차도 막히고, 주차도 어렵다...는 핑계로 걸어다닐 때가 많다.
운전만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었구나 싶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확실히 편하다고 느낄 때가 간혹 있습니다. 갑자기 저녁에 여자친구가 보고 싶어진다든지, 동생네 잘못 산 가구를 반납하러 갈 때 같이 간다든지... 등등. 동승한 사람과의 대화가 즐거우면 사실 그렇게 빨리 가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인데, 아마 나는 모차르트보다는 류이치 사카모토 정도를 목표로 하는 게 좋겠다고 하면 너무 건방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