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Choi Dec 26. 2021

2021 연말정산

지난 글에 이어서  가지 토픽을 가지고 연말정산을 해본다. 평소에 즐겨 구독하는 퍼블리의 박소령 님이나 김규림 작가님 같은 분들이 올려주신 <올해의 ㅇㅇ> 시리즈에 영감을 받아서, 올해는  맘대로  가지 꼭지를 정해 봤다.


<올해의 ㅇㅇ 시리즈> 원본은 여기에: https://www.instagram.com/p/CXnHzWXppRH/



1. 올해의 성장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했고, 시도하고 있다. 어느덧 사회생활 10년 차,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여전히 새로운 것들을 시작하고 도전할 수 있고, 배우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고 즐겁다.


우선 2년 8개월 정도 다녔던 회사를 나와 몇 달 푹 쉬었다. 쉬는 동안 필라테스를 시작했고,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고, 일기를 매일 쓰기 시작했다. 읽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 쓸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될 때까지, 마음과 신체가 천천히 회복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이었다.


 달이 지난 , 새로운 팀에 조인했다. 커머스라는, 나로선 난생처음 시도해보는 분야. 팔을 걷어붙이고 아주 본적인 공부부터 자잘한 디테일까지 일일이 챙겨가면서  달간 맨땅에 헤딩을  끝에 이제야 조금씩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있게 됐다. 결국은 시장이 학교고, 고객이 선생님이니까. 게임의 룰을 모르면 마시면서~ 배우는~ 수밖에 없죠.


무엇보다 가장 큰 성장은 새롭게 시작한 일요일 “위클리 리플렉션 루틴”인 것 같다. 나중에 더 자세히 쓸 기회가 생길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충 일주일 목표를 세우고 그걸 잘 지켰는지 평가하고 다시 목표를 수정해서 세우는 시간이다. 몇 주째 이 루틴을 반복하다 보니 내가 참 욕심이 많고 시간은 제한적이라는 점을 배웠다. 그리고 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한다는 것도.


처음엔 야심 차게 세운 목표를 반도 못 지켜서 이런 계획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는데, 점차 더 중요한 일들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집중하는 요령이 생겼다. 매주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을 잘 붙잡고 가다 보면 어쨌든 큰 방향에서는 잘 살고 있는 것일 테니까.   



2. 올해의 영감


몇 권의 책과 전시, 콘텐츠에서 발견한 문장들이 나에게 큰 힘과 영감을 주었다.


“나는 매주 일요일을 생각하는 날로 정했다. 그날은 어떤 것도 실행하지 않고 오직 생각만 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업무 결과에 대한 피드백이나 개선안을 생각하지 않고 실행만 한다. 힘들어도 불평하지 않고, 결과가 좋아도 행복해하지 않고, 결과가 나쁘다고 좌절하지도 않는다. 그저 실행할 뿐이다.”

유튜버 신사임당의 책 <킵고잉>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에 힌트를 얻어 나도 매주 계획을 세우는 일을 시작했고, 주중에 어떤 좌절이 있더라도 머리를 비우고 실행하는 것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루틴이 매일 불확실한 상황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꽤 많이 줄여주었던 것 같다.


“Power, love and self-discipline.”

무슨 힙합 가사 같기도 하고, 레이 달리오의 <원칙>에 나올 것 같기도 한 이 문장은 사실 성경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사도 바울이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중의 한 구절. 2000년 전의 문장인데 꽤 힙한 느낌이 든다. 우리말로는 “능력과 사랑과 자기절제하는 마음”으로 번역이 되어있기는 한데, 왠지 간지가 덜한 건 기분 탓이겠죠. 이 세 가지는 올해 하반기 나를 일으켜준 세 가지 가치관이다. 매주 목표들을 세울 때, 이 세 가지 가치에 맞는 액션 위주로 정했다. 일 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서 중요한 것들은 결국 더 파워풀하게, 더 사랑하면서, 더 규율이 잡힌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제갈량은 유비와 함께했던 시간이 그리워졌다. '당시 선주는 걸출한 재주와 지모를 가진 분이셨다. 법정과 방통이 장막 안에서 작전 계획을 짜면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은 전쟁터로 출정했다. 나는 그저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기만 하면 됐으니 얼마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웠던가!’”

<결국 이기는 사마의>에서 제갈량의 죽음을 묘사하던 부분이다. 결국은 사람이 답이다. 심지어 제갈량에게조차도 그랬다.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가 하루하루의 행복, 성과, 나아가서 회사의 성공까지 - 모든 것을 결정한다.


“대중은 개인적인 표현에 반응하는 것 같다. 블루보틀의 브랜드도 초기에는 나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런 나의 개성의 표현에 칭찬과 찬사가 쏟아지자,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고 거만해졌다. 칭찬은 정말 중독성 있고 위험하다. 칭찬을 많이 들을수록 더욱 경계해야 한다.”

매거진 B 전시에서 만난 블루보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의 인터뷰 중에서. 나중에 기억으로 적은 거라 정확한 문장은 아닐 수도 있다. 20년 전 처음 블루보틀을 시작했을 때와 요즘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하는 것이 참 멋졌다. 나도 언젠가 저런 멋진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의 불씨를 댕기는 듯했다. 하얗게 센 머리에도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마치 “당신도 링 위에 오르십시오.”라고 초대하는 것 같았다.


“어느 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

사실 모든 장르를 통틀어 올해의 문장 하나를 뽑으라면 누가 뭐래도 이 가사. <쇼미더머니 10>에 나온 이찬혁의 국힙, 아니 K컬처 올킬 모먼트.



3. 올해의 순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몇 가지 있다.


달고나 라떼를 마시면서 퇴사 서류에 사인을 하던 안암역 커피빈.

다음 날 미국으로 떠나는 여자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고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돌리던 밤.

백신 맞고 드러누워서 이틀째 천장만 바라보던 기억.

거의 5-6년 만에 교회에 가서 이유도 없이 펑펑 울었던 기억.

처음으로 팔린 상품을 포장하면서 창고에서 포스트잇에 손글씨로 편지를 쓰던 장면.


그래도 왠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아마도 이때가 아니었을까. 하늘이 참 아름답고 적당히 선선했던 날. 모처럼 놀러 나와서 들떴던 날.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신났던 날.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참 감사한 한 해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And that's ok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