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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Feb 16. 2021

솔직하고 당당하게 채밍아웃 해도 괜찮아.

비건이 아닌 친구와의 여행에서 배운 것들

 요가 지도자 과정을 함께 하고 같은 요가원에서 수련하며  강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와 3박 4일 동안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비행기 티켓과 숙소, 렌터카를 예약하고 출발하는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신경에 쓰였던 것은 3박 4일 동안의 끼니로 무엇을 먹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함께 여행을 가는 친구는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채식을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와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던 그 순간 이미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채식에 잠시 쉼표를 찍어야겠다고 자연스럽게 마음을 먹었다.





  여행의 3일째가 되던 날, 아침부터 친구의 기분이 별로인 것 같았다. 그녀의 무미건조한 말투와 표정에서 전날과는 다른 급격한 온도의 차이를 느꼈다.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라며 눈치를 보면서 그녀의 기분을 살폈지만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했고, 그저 컨디션이 좋지 않겠거니.라고만 생각했다.

 그날 저녁 식사의 메뉴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전골이었다. 물론 나는 냄비에서 고기를 빼고 두부와 김치만 덜어서 먹었다. 식사 후 숙소로 돌아와서 맥주를 마시면서 친구와 꽤 오랜 시간 동안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가 말했다.

고기를 안 먹는다는 것을 왜 미리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느냐고. 그것이 서운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해 주었을 거라고. 서로 조금씩 타협하고 배려해서 둘 다 만족할 수 있었을 거라고.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맞춰주기만 하는 관계는 건강하지 못하다고.



평소에 내가 고기를 즐겨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 비건을 지향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녀는 이틀 동안 함께 식사메뉴를 정하고 내가 밥 먹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자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번 여행에서 채식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다. (그녀는 관찰력도 좋고 기민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녀가 솔직하게 터 놓은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충분히 나의 채식, 비건 라이프를 이해하고 존중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기 싫었다. 여행지에서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그런 즐거움과 기회를 빼앗고 싶지 않았다. 식사 메뉴를 선택할 때마다 친구가 나를 신경 쓰면서 내 눈치를 보는 것도 싫었다. 그냥 내가 맞춰주는 게 편했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고기나 생선을 아예 못 먹는 것도 아니고, 상황이나 분위기에 따라서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것이 편하다고 여겼다. 그것이 모두를 위해 좋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것이 나의 이유이자 변명이었다.


친구가 이야기했다.

나는 늘 그런 식이 었다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남에게 싫은 소리도 안 하고 단호하게 거절을 하거나 스스로의 호불호를 명확하게 이야기해주지 않고, 맞춰주기만 한다고.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과 배려, 그것이 나의 큰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했다. 그렇게 에둘러서 상대에게 거절을 표시하는 나의 어법이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단호한 거절이나 표현보다 더 서운하고 섭섭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건강한 관계는 서로의 호불호와 취향, 의견을 솔직하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서로 배려하고 타협하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선택을 해 나갈 수 있는 관계라고.





왜 나는 그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당당하게 비건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항상 내가 그들에게 맞춰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기 싫다는 말은 지질한 변명에 불과했다.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채식을 한다고 이야기하면 더 이상 나와의 식사에 여러 가지 제약이 생길 테니 나를 만나는 것을 꺼려할까 봐, 유난스럽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일까 봐 두려웠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당당하게 비건이라고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고 그것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받고 존중받을 수도 있었다. 비건을 주제로 친구들과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상대를 배려한다는, 주목받는 것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내 선에서 아예 이야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러한 건강한 소통의 기회마저 차단해왔던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본의 아니게 "채밍아웃"(채식을 한다고 밝히는 것)을 하게 되었다. 채밍아웃과 함께 이 기회를 통해서 지금까지의 나의 관계 맺는 방법, 타인들과 소통하는 방식, 나의 성격들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고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당당하게 채밍아웃 하기로 했다.  


그럴 권리가 있고, 충분히 이해해주고 존중해줄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비건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도, 미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가 먼저 인정하고, 용기를 내고,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래야지 타인들에게도 나의 비거니즘을 이해받고 존중받을 수 있을 테니깐. 사실 타인의 이해와 존중도 필요하거나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믿고,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었다.


 근본적으로 채밍아웃이라는 용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채식이, 비건이라는 용어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단어로 자리 잡아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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