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구우며 생각한 것들
나는 빵순이다. 빵을 좋아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먹겠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빵을 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요리나 베이킹에는 전혀 관심도 없던 내가,
오븐 속에서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는 빵을 보면서 설레어하고 있다. 비건은 나를 빵도 굽게 만들었다.
비건을 지향하게 되면서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것에 물리적으로 제약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특히 먹는 것에 대해서는. 그래서 먹어야 할 것과 먹어서는 안 될 것을 철저하게 구분하고 경계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한 구분 짓기가 오히려 나를 틀 속에 가두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경계와, 틀과 같은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비록 불완전하고 어설픈 비건으로 살고 있지만 비건이 되기로 마음먹고 나서 오히려 나의 삶은 더욱 다양해지고 넓어졌다.
비건을 지향하는 삶은 더 다채롭고 넓은 세상으로 나를 인도해 주었다. 요리와 베이킹이라는 세계로 이끌었고, 그동안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식재료를 탐구하게 만들었다. 환경문제, 동물권이라는 키워드를 나의 삶에 포함시켜주면서 공존, 공생, 연결이라는 가치관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비건을 지향하게 되면서 계란이나 버터, 우유가 들어간 빵을 지양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빵집에서 풍기는 짙은 버터의 냄새가 달갑게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다.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만든 베이커리에서 빵을 구입해서 먹곤 했는데 요리에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자 "요알못이 요리도 해 먹는데 빵이라고 직접 구워 먹지 못하랴."라는 마음으로 무작정 베이킹에 도전했다.
통밀가루에 이스트와 소금, 미지근한 물을 넣고 반죽을 하고, 발효를 시킨다. 오븐에 넣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면서 구워지는 빵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갓 구운 빵을 직접 내린 커피를 커피와 함께 비건 버터를 발라서 먹는다.
한 개의 통밀빵을 굽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반죽을 하면서 손으로 밀가루의 감촉을 느끼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모양을 만들어 가는 시간,
반죽을 발효시키면서 몇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
부풀어 오른 반죽을 보면서 마치 어린이처럼 신기해하면서 발효의 과학적인 원리에 대해서 탐구했던 시간,
짙은 버터향 대신 은은하게 풍기는 고소한 냄새를 맡으면서 오븐 속의 빵을 기다리는 시간,
따뜻한 빵을 조심스럽게 잘라서 가족과 함께 나누어 먹는 시간.
이 모든 과정과 시간들은 나에게 색다른 뿌듯함과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요리도 잘 못하고 손재주 없는 나에게 큰 용기를 가져다주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창조의 시간이었다.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행위의 가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의 가치와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성공적인 첫 베이킹 도전에 힘입어 앞으로 꾸준히 소소하게 야매로 홈베이킹을 해 나갈 생각이다.
나에 의한, 나와 내 사람들을 위한 건강한 빵을 만들어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