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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공 Oct 06. 2021

취미 도예의 세계로

유일하고 꾸준한 취미, 주말 물레를 돌리러 공방으로 갑니다

평생 하고 싶은 취미 생활을 골라보라고 한다면 책, 영화 그리고 공방에 가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왜 도자기 일까. 영화과를 가지 않았다면 도예과를 갔을까?


도자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에는 한국, 중국, 일본관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도자기만 모아서 전시해놓은 전시실이 따로 있다. 도자기가 시대별로 색별로 전시되어있었는데 정말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 전시실에 들어가서 처음 눈이 번쩍 뜨이며 느낀 경이로움이 아무래도 도자기에 푹 빠지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도자기란 천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도 그 모습을 간직한다. 아주 깨어지기 쉽지만, 영원한 듯 보인다. 색은 언제 보아도 참 예쁘다. 시간을 오래 간직한 물건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일들을 목격해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 본질이 흙이라니. 곱게 흙을 빚어 만든 형태가 천년이 지나도 유지된다니. 흙일 때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마에서 구워져 나온 후에는 무한한 시간을 안고 간다. 그런 도자기의 속성 혹은 내가 부여한 낭만 같은 것들이 좋았다.

British Museum <출처 : http://www.reier.de/project-details/Britisches-Museum-Percival.html>

취미 도예를 처음 시작한 것은 벌써 6년이 되었다. 중간중간 꾸준히 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처음 공방 문을 두드린 것이 2015년이다. 집 앞에 마침 젊은 작가님이 문을 연 도예 공방이 있었는데, 주로 어린아이들이 많이 왔고 그리고는 회사에서 단체로 동아리인지 복지인지 배우러 온 팀들이 있었다. 당시의 내 또래는 별로 없었다. 나는 도예가 완전히 처음이어서 핸드 빌딩부터 시작했는데, 정말 생각과 이상은 달랐다.

아주 작은 컵 하나 꽃병 하나 만드는 것도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리는 일이고 손에 열이 많아 그런지 흙이 쩍쩍 갈라진다. 비가 오는 날과 해가 쨍한 날, 선풍기의 바람에도 흙이 얼마나 예민한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그림에도 재주가 없고 글씨도 보통 악필이 아니지만 손으로 만드는 도자기만큼은 그래도 약간은 모양이 못나도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깔끔한 원형에도 각자의 스타일이 생기며, 더 시간을 들여서 다듬으면 다듬을 수록 예쁜 모양새를 찾아간다는 것을 배웠다. 그때 핸드 빌딩을 나름대로의 커리큘럼에 따라서 열심히 만들었으며 핀칭, 코일링, 삼강, 투각, 판 작업까지 제법 많은 것 들을 했었다. 석고틀로도 접시도 만들고 하지만 이론적인 접근이라서 그런지 아직 쓸만한 걸 만들지는 못 했었다. 막상 열심히 다듬었다고 생각했지만 왜인지 쭈글거리는지 그래도 손으로 조몰락거리면서 초등학교 때의 미술시간도 생각나곤 했다.

공방에서 판 작업으로 만들었던 함

하지만 도자기만큼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 취미도 없다. 한 번 공방에 가면 3~4시간은 꾸준히 작업해야 하고 하나의 기물이 완성되어서 나오는 것도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린다. 그래서 학기 중에는 거의 못했고 방학 때나 겨우 시간을 내어서 했던 취미이다. 그래서 한 동안 공방에 못 다니다가 다시 석사를 가기 전 몇 개월 정도 시간이 되어서 다시 공방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전에 다니던 곳이 시간이 안 맞았나 해서 건너편의 미술학원 같은 곳에서 다시 기물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확실히 이전보다는 발전한 것이 느껴진다. 손에서도 그리고 내가 만든 기물의 형태에서도 아주 조금씩은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취미 도예의 매력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건 가마에서 구워져 나오면 성취감도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도 하고 그런 재미가 있더라. 두 번째 다녔던 공방에서는 선생님과 친해지게 되어서 같이 공연도 보러 다니고 수다도 떨고 했다. 선생님이 도예를 잘하려면 그림 공부부터 해야 된다고 해서 수채화 수업도 들어볼까 했는데 결국에는 막판에 시간이 잘 안 나고 해서 깔끔하게 마무리를 못했다.

서촌 공방에서 물레로 작업하는 파스타 그릇

그리고 또 한참을 공방에 다니지 못했다. 석사를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심적으로 그럴 여유도 없기도 했고 코로나에 새로운 취미생활을 해도 되나 싶었다. 몇몇 공방을 돌아다녀 봤는데 마음에 딱 맞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정착할 곳을 찾았다. 서촌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서촌에 있는 도예 공방을 여럿 찾아보았는데, 집에서도 가깝고 드디어 물레 수업을 받을 수 있다더라. 처음에는 일단은 핸드 빌딩 작업으로 감각을 익힌 다음 물레의 아주 기초부터 알려주시는데 지금도 여전히 물레 초심자다. 핸드 빌딩으로는 코일링, 판, 핀칭 갖은 기법을 이용해서 주전자와 다기 세트를 완성하면서 이 정도면 무언가 만들만하겠는데 하다가 물레에 딱 앉는 순간 완전히 걸음마 떼는 아이처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여전히 어려운 중심잡기나 고르게 두께를 빼는 것, 형태를 만들고 수정하고 분명히 물레는 돌아가고 있는데 같이 내 몸도 휘청이니 기물이 이리저리 흔들리다. 겨우 하나 그릇을 만들고 나면 굽을 깎는데 그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하루에 3~4개만 작업해도 완전히 기운이 빠져버린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초벌 된 기물을 다듬고 유약에 담그고 가마에서 구워져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가 완성된다. 그 사이에 깨지거나 갈라지거나 유약이 말리거나, 굽을 깎다가 구멍이 나기도 일수다. 정말 잘 만들어놓고는 자르는 실에 금이 가거나 손톱에 찍히거나, 어느 정도까지는 수습이 되다가도 그냥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손가락과 허리가 아플 만큼 집중도 해야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더 괜찮은 형태가 나오는 날이면, 조금씩 커져가는 기물을 보고 나의 아이디어로 무언가 만들어 낼 때 정말로 성취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3~4시간 동안 손이 흙으로 가득하니 가급적 휴대폰을 아예 만지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것도 참 좋다. 그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휴식공간이 생기는 기분이다. 공방에서 나오는 잔잔한 노래들 (클래식이나 비긴 어게인 음악을 주로 틀어주신다) 들으면서 물레가 돌아가는 소리 사각사각 굽 깎고 다듬는 소리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특히나 비가 한옥에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나 가끔씩 나눠마시는 차나 커피도 좋다. 나름대로 동네 사랑방 같은 역할도 해서 다들 지내는 소식도 듣고 막걸리도 한 잔 할 때가 있는데 그것도 참 재미있다. 그래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 배우는 일, 같은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알아가는 일들에 아직도 푹 빠져있다.

내가 만든 접시에 샐러드를 담아 먹는다.

여전히 옆자리에서 커다란 달항아리를 만드는 분들을 보면 언제쯤 나도 항아리를 만들게 되려나 싶다. 지난 시간에는 제법 큰 기물도 중심이 잡히더니 어느날은 작은 걸 만드는데도 유독 안 되는 날이 있다. 흘러나오는 노래에 괜한 감상에 젖어서 하나도 집중을 못하고 엉망으로 만드는 날도 있다. 하지만 서촌 공방으로 가는 길이 설렌다. 그런 취미가 하나쯤 있는 것은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 또 여전한 재택근무를 하며 내가 만든 접시에 샐러드를 가득 담아서 먹는다. 언젠가는 백자도, 언젠가는 예쁜 파스타 그릇도, 크리스마스 파티나 애프터눈 티에 어울리는 장식들도, 그럴듯한 화병도 계속 만들어 나가고 싶다.

(단! 집에 놓을 곳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 주변 분들에게 또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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