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반으로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에서 작성하는 픽셔널(fictional) 에세이. 길었던 팬데믹의 끝자락에서 지난 시간의 촌극을 회상한다.
감염병, 팬데믹은 사람들의 연애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이 질문에 대한 리포트는 아니고, 그저 이십 대의 끝자락을 팬데믹과 함께 보내면서 주변 사람들의 일과 사랑이 여러 형태로 지속되고 변화하는 모습들에 대한 목격담 정도는 되겠다.
친구들과 만나면 종종 아주 익숙하게 반복되는 레퍼토리로 사업구상을 하는데, 특히나 2020년에는 유난히 데이팅 앱을 만들자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그냥 데이팅 앱이 아니라 다른 서비스를 빙자한 만남이어야 한다. 팬데믹 우려에 비대면으로 ‘자만추’가 어려워진 상황이니, 외로운 사람들을 달랠 기발한 서비스를 구상하자. 물론 이런 생각들은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구현되었있고, 우리의 사업구상은 늘 그랬던 것처럼 수수료를 얼마나 뗄까 하는 구체적인 망상에서 종료된다. 2022년 3월 기준으로 상위 10개 데이팅 앱의 월 순이용자는 78만 7184명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2019년 4월(58.4만 명)과 비교했을 때 34.8% 증가한 수치다. 실제로 엄청 많은 사람들이 데이팅 앱을 사용한다. 은근히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정말 괜찮은 사람끼리 만나서 오래오래 잘 만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다.
이렇게 비대면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도 있고, 여전히 소개팅, 미팅, 회사, 학교, 일 터 다양한 곳에서 만남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팬데믹이어도, 전쟁통이어도 만남과 시도는 계속된다. 만날 사람들은 다 만나고 있고, 방식들은 수도 없이 변화하지만 결국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이기 때문에 벌어진 촌극들, 장면에 대한 기록을 한번쯤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례를 묶어서 네 가지 정도로 분류했다.
A. 소개팅
의무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기적으로 소개팅을 하는 A가 있다. 요즘 시대의 소개팅 주선은 결혼정보회사처럼 사진 몇 장에 키/나이/직업/사는 위치 등이 프로필처럼 정리되어 착착 날아오더라. “주변에 괜찮은 사람 없어~?” 하면 준비된 것처럼 프로필이 착착. 신기하다. 세상에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소개팅이라는 것이 참 곤란하게도 좋은 마음으로 주선했다가 잘 안되면 양쪽의 신뢰를 잃기도 하고, 괜히 중간에 이상하게 끼어버리기도 하고 그래서 참 좋은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 더 신중하게 되는데 그것과 참 상관없이 주선도 많이 해주고 소개팅도 많이 나가는 사람들은 능력이 있는 거다.
그러던 A는 어느 날 도저히 나가고 싶지 않았던 소개팅 당일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했다”며 약속을 취소했다. 혹시나 모를 코로나의 감염과 전파의 위험성이 있으니 상대방을 적당히 배려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게 사회 통념상 지금 자가격리를 해야 마땅하니 만날 수 없다는 아주 적절한 핑계. 내가 확진자와 접촉한 것이 아니라면 같이 사는 가족이, 아버지 회사에서 확진자가, 동생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천되는 다양한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시간이 언제 되냐는 물음에는 “백신을 맞고 몸이 조금 좋지 않을 수 있으니 다음에 보자고” 약속을 미룬다. 이쯤 되면 알아차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적당하게 “그럼 푹 쉬세요” 정도로 대화가 마무리될 수 있다. 어렵사리 소개팅을 주선해주었는데, 카페에서 취식이 불가하고 한 시간 내에 나가야 하고 2인 이상 집합 금지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초면에 집을 갈 수도 없고, 약속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그럼 코로나 잠잠해지면 시간 잡으시죠” 하고 미루다 보면 둘 중 한 명은 이미 커플이 되어서 프로필 사진이 바뀌어있기도 하다.
코로나는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한 참으로 재미없는 주제이지만 단골 주제가 된다. 그 누구를 만나도 이야기할 수 있는 소울리스 공통 화제.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면 “백신은 맞으셨어요?” “화이자 맞으셨어요?’ “코로나 걸리셨어요?” “아프셨어요?”… … 소개팅도 점점 사회생활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씁쓸했다. 어땠어? 재미있었어? 하면서 팝콘 들고 후기를 들으려고 하면 업체 미팅이라도 다녀온 듯 그냥 뭐.. 좋은 사람이기는 한데.. 그냥 뭐… 이런…
B. 장거리 커플
연애도 글로벌 시대라고 하나.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닌가. 국제커플이건, 외국과 한국을 오가는 장거리 커플에게 코로나는 많이 가혹했다. 거의 7년을 넘게 연애하고 결혼을 앞둔 커플 B는 제3 국에서 만나서 커플이 된 한국인-일본인 커플인데, 코로나 중에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게 된 후로는 생이별을 했다. 비자가 있어도 어떤 사유로든 입국 자체가 금지되어서 서로 오도 가도 할 수 없었다. 줌, 페이스톡도 한계가 있지 기약 없는 시간이 1년, 2년, 건너 건너서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기는 하는데 여전히 그 상태인 것으로 안다. 올해부터는 조금씩 상황은 나아지겠지만, 이런 난처한 처지의 커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 한국-일본이면 거리라도 가까워서 한 달에 한번 정도 마음먹으면 주말에라도 갈 수 있었을 텐데, 한국-유럽, 등 원래도 먼 거리의 커플들은 더더욱 어렵게 되었다. 유학생들은 그나마도 수업이 비대면이니 귀국해있었고, 그럼 교포 내지는 외국인은 먼 나라에서 그저 사이버 연애를 지속할 뿐. 해외에서 마스크와 생필품 수급이 어려울 때는 한국에서 구호물품 보내듯 박스로 채워서 보내주고, 그런 애틋함과 정성과 기다림으로 이어지기도 혹은 이어지지 않기도 했을 것이다.
해외까지 가지 않더라도 국내에서도 장거리 커플이 제법 많은데, 코로나 초기에는 KTX나 비행기를 타는 것도 조심스러워서, 이동하거나 사람들 많은 곳에 가는 것 자체가 어려워 원래는 2-3주에 한 번씩 만나던 커플도 못 본 지 3개월이 넘었다는 얘기도 종종 들었다. 출근도 못해서 집에 있을 지경이었으니 만나서 마음 편하게 데이트도 못하고, 예약해놓은 것들은 번번이 취소되고, 괜히 기분 좋게 만났다가 확진자를 만나서 격리하거나 동선이 밝혀질 수도 있고, 그런 이상한 시대. 다들 생이별은 끝내고 잘 만나셨는지, 무사하신지. 궁금해진다.
C. 비대면
직접 만나지 못하면 비대면으로 만난다. 비대면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 꼭 소개팅 앱처럼 목적성이 있는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팬데믹에는 재미있는 커뮤니케이션 툴이 많았는데, 한 동안 클럽하우스라는 앱이 인기를 끌었다. 인싸들의 앱이라, 한동안 아이폰이 아니면 쓰지도 못하더니 설치를 할 수 있을 때쯤에는 이미 유행이 지나있었던 그 앱. 주변에서는 은근히 클럽하우스를 통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얘기를 몇 번 들었다. 그 외에도 줌으로 진행하는 세미나에서도 만나고, 인스타그램에서도 만나고, 당근 마켓에서도 만나고 생각하지 못한 매체들이 연애의 수단이 되어있더라. 물론 전통적인 소개팅 앱들도 인기가 많았는데 특정 직업군이나 학교만 소개를 해준다거나, 일정 외모 이상이어야 만난다거나, 사진 없이 가치관만 가지고 매칭을 한다거나 재미있는 솔루션들이 많았다. 그러나 공통적인 건, 다들 실제로 만나기 전의 떨림 (설렘과는 다르다). 이미 온라인상에서 잔뜩 친해졌는데 실제로 만나면 너무 달라서 실망스럽다거나, 마스크 개봉박두한 필터 없는 얼굴과 실제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라거나하는 경우는 빈번했고, 서로가 마음에 쏙 들어서 잘되는 경우도 기적적으로 있었다. (하지만, 뭐, 될놈될이라고!)
D. 코로나가 무슨 상관!
‘코로나’ 때문에 싸우는 커플을 많이 봤다. 감염병이나 뉴스에서 떠들어 대는 이야기에 무감각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출할 때마다 위생장갑까지 껴고 나와서 음식은 포장만 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다. 이런 시기에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기 싫은 사람이 있고, 바로 지금 놀이공원을 가야 된다는 사람이 있는 건데 이런 것들도 싸움이 된다. 신념이거나 원래 면역력이 좋지 않거나 하는 이유로 단 한 번도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 있고, 그 누구도 강요할 수는 없지만 백신을 맞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심지어는 마트도 못 가는 때가 있으니 싸움이 되는 거다. 여러 명이 모이는 술자리에 간다고 하면 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 거고, 코로나가 중요해 내가 중요해하는 말도 안 되는 우선순위를 따지기도 했을 거다.
이렇듯 코로나와 팬데믹에 영향을 많이 받은 A, B, C 외 여러 커플이 있을 때, 그것이 무슨 상관인지, 여전히 자연스럽게 만나고, 운명적으로 재회하고, 지구 상엔 코로나도 뭐도 아닌 너와 나만 존재하는 듯한 연애를 하는 커플도 있다. 열정적인 연애를 하는 연상연하 커플이 있었는데, 한 겨울에 카페에서도 취식이 안되었고 만난 지 한 달도 안 되었으니 갈 곳도 마땅치 않겠다 싶어서 도대체 어디서 데이트를 하냐고 물어봤더니만, 추웠지만 한강변을 세 시간을 걸으면서 얘기했다는 걸 듣고는 그래, 사랑이 있는데 뭐가 중요하겠나 싶었다.
코로나와 사랑의 촌극이라는 주제에는 역설적이지만, 코로나는 상황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지만 관계에는 영향을 끼칠 일이 없는 거다. 함께 예약한 페스티벌이 코로나로 취소되어 잔뜩 짜증을 낼 수도 있는 거지만, 반대로 그럼 집에서 유튜브를 보면서 둘 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거다. 근사한 카페에서는 오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만, 그럼 근교의 바닷가에서 편의점 커피라도 마시면서 돌아오지 않을 추억을 쌓을 수도 있다. 코로나에 걸려 힘들어하면 만나지 못해 아쉬울 수 있어도 한 번 더 챙겨줄 수도 있고, 자가격리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재미있는 영화라도 한 편 추천해주면서 그 나름의 상황은 나름대로의 즐거움으로 채우면 된다. 그러다가 모든 제한이 풀리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또 밖으로 나가면 될 일! 그러니 부디 다들 즐거운 사랑을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