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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bbers Nov 10. 2021

성장은 지겹다

-하얀 원피스 그녀-

애초에 버지니아 비치에 이사를 온 이유는 아빠의 직장이었다. 아빠는 이곳의 교회에 부목사로 채용이 되어 오셨다. 아빠가 부목사인 나는, 당연하게 교회를 일요일뿐 아니라, 일주일에 평균적으로 5일은 갔던 것 같다. 그 교회는 꽤 컸었다. 다른 이민 교회들과 다르게, 그 교회는 시설을 미국 교회로부터 빌리지 않고, 성도들이 개척할 때 다 같이 지은 교회였다. 그래서 그런가, 교회는 외부적으로는 많이 컸다. 밖에서 바라보았을 때, 아주 큰, 말 농장같이 생겼었다. 내부적으로는 모든 걸 갖춘 교회였다. 큰 강당과 연결된 큰 식당, 식당을 거치면 나오는 복도 옆에는, 다닥다닥 아담한 방들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방들을 지나 복도를 나오면, 청년부가 예배드리는 작은 강당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교회를 아름답게 만든 것은, 교회를 둘러싼 자연이었다. 교회는 바로 앞에 강이 있었고, 그 강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을 바라보면, 숲이 있었다. 우리 교회는 마당에 호두나무가 심어진 교회로, 가을이나 겨울 즈음엔 호두가 후드득 떨어졌고, 그 호두를 깨면서 먹곤 했다. 그뿐 아니라, 숲에 깊게 들어가기 전 바로 앞에는 그네가 있었다. 나무로 된 그 그네는, 벤치를 그네로 만든 것으로, 여러 명이서 같이 타도 되는 그네였다. 그렇듯, 나는 우리를 환영한 교회의 모든 시설을 이용하며, 나만의 놀이 공간을 만들었다. 물론 이렇게 시설이 다양한 교회는 나중에 부활절 날, 이스터 에그를 숨기기엔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해서 나는 언제나 끝에 남아 나눠주는 이스터 초콜릿만 받았었다). 이것만 빼면, 모든 게 재미를 주었다. 그중에서도, 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 친구와 함께한 모든 놀이가 즐거웠다. 




그 친구를 만났던 건 그 교회를 다니면서부터였다. 그 친구는 한 교회 성도의 딸로, 오빠도 한 명이 있었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애는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아주 하늘하늘하고 이쁜 원피스였다. 우리는 처음에 둘 다 낯을 가리며 둘 다 부모님의 다리 뒤에 숨어서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동갑이라는 치트키로 인해 금세 같이 친해졌고, 교회 안과 밖의 모든 곳을 탐험하고 같이 놀았다. 그 아이의 이름은 해연이었다. 


해연이와 나는 교회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놀이들을 만들고 탐험했다. 교회 숲 근처에서는 탐험놀이를 하고, 교회 안의 큰 식당에서는 술래잡기를 하고, 또, 청년부 작은 강당에서는 라바 놀이 (Floor is Lava : 바닥이 용암인 것처럼 상상하며, 바닥에 발을 닿지 않게 하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요리놀이를 즐겼다. 근처 숲에서 야생 베리나 나뭇잎, 호두, 그리고 꽃 등을 수집하며, 그것을 돌로 빻아서 즙을 내거나 요리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또다시 요리놀이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그때의 우리는, 한 시간을 넘게 돌아다니며 숲 속에서 작은 야생 베리들을 주워, 이후 또 한 시간 동안 즙을 내고 있었다. 그때 우리의 목표는 잼을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야생 베리는 함부로 먹으면 안 되지만, 어렸던 우리는 그런 건 상관이 없었다. 그저 외적으로 봤을 때 비슷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우리가 열심히 돌아가며 즙을 내고 있을 때, 아빠가 오셨다. 아빠는 우리를 자세히 보시더니, 교회 밖으로 나오셨다. 나오시면서 하시는 말이, "너네 이런 거 먹는 거 아니야"라고 하시면서, 열심히 두 시간 동안 빻았던 우리의 베리들을 땅에 탈탈 털으셨고, 그리고서는 "놀아라" 라며 다시 교회 안으로 들어가셨다. 해연이와 나의 눈에서 그 베리들은, 슬로모션으로 떨어졌다. 두 시간 동안이나 열심히 채집하고 빻았던 베리들이 땅에 떨어져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분명 허무함과 억울함 때문에 머릿속이 하얘지며 할 말을 잃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후에 우리는 땅에 떨어진 베리들을 줍지 않았고, 그것이 마지막 요리 놀이었다. 


그 이후로는 우리는 채집을 하지 않았고, 교회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제일 좋아하는 놀이를 잃은 우리가 과연 또다시 좋은 놀이를 할 수 있는지에 의문이 들었지만, 우리는 금세 그 사실을 잊고 다시 좋은 놀이들을 개발했다. 어떤 날에는 어린이 놀이방에 들어가 애들이랑 같이 놀았고, 어떤 날에는 청년부 강당에 놀러 가 악기를 연주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은 날에는, 우리가 알지도 못했던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중에 하나가 선물방이었다. 우리 교회는 명절마다 큰 행사를 했고, 그때마다 어린이들을 위해 간식이나 인형 같은 작은 선물들을 준비하곤 했다. 특히 미국 교회의 3대 명절인 부활절, 추수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더욱더 큰 선물을 받을 가능성이 많았던 날이었다. 그런데 그때에만 받을 수 있었던 선물들이 한꺼번에 모여져 있던 선물방을, 우리는 우연히 발견했다. 큰 강당에서 술래잡기를 하던 중, 내가 숨을 차례이기에 숨을 곳을 찾다 보니, 강당의 오른쪽 구석에서 공간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해리포터가 처음에 살았던 계단 밑의 공간처럼, 그곳도 무대 밑에 작은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에 들어가는 문에는 자물쇠가 걸려있었는데, 허술하게 걸려있어 그냥 옆으로 살짝 틀기만 하면 열리게 되어있었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술레였던 해연이부터 다급하게 불렀다. 해연이는 들어오자, 나와 똑같이 눈이 동그레 졌다. 어렸던 우리의 눈에 그곳은 보물창고였다. 우리가 크리스마스 때 원했던 선물들, 부활절 때 쓰이는 초콜릿과 과자들, 그리고 공책들이나 이쁜 펜 같은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우리는 다급히 물건들을 살피고, 또 놀랍게도, 무엇을 어떻게 가져갈 수 있는지 체계적으로 계획을 짰다. 너무 오랫동안 계획을 짰기 때문일까, 우리는 뒤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오는 것을 모른 채 들어가 있었고, 그로부터 30초 후에는 어느 한 집사님의 손에 둘 다 붇잡혀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한 번밖에 없을지도 모를 기회를 날려버리고, 다시 작은 강당에 내쳐졌다. 나는 한 번뿐인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입술이 불룩 나왔었는데, 해연이는 그 와중에 웃고 있었다. 친구가 상황 파악이 안 되나 싶어 걱정스럽던 찰나에, 해연이가 비밀스럽게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 손안에 넣었다. 펼쳐보니, 그것은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때 나눠주는 금색 동전 초콜릿이었다. 미국에서는 금색 은박지에 동전 모양 초콜릿을 나눠주곤 했는데, 이것을 받으면 캐리비언의 해적에서 나오는 보물을 손에 쥔 느낌이었다. 이런 보물을 사수한 해연이를 나는 리스펙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그렇게 우리는 야금야금 초콜릿을 나눠먹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그 방의 자물쇠는 더 이상 열쇠 없이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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