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영화 한 편 (3)
마음이 허하다. 오늘 나는 회사에서 짜증 나는 직원 앞에서 연기를 했다. 강한 척. 다 아는 척. 그리고 쏘아붙이듯이 말하기. 마치 원래 그런 사람인 것처럼.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회사에서의 기싸움에 넌덜머리가 난다.
서로 웃는 얼굴, 좋은 말 한마디, 칭찬과 격려를 하면서는 조직이란 게 굴러갈 수는 없는 걸까? 아무리 조직문화가 좋은 집단이더라도 이따금씩 강한 사람에겐 약해지고 약한 사람에겐 강해지는 알 수 없는 인간성을 드러내는 사람이 끼이기 마련이다. 그 직원의 언행에 한참 동안 상처받던 나는 심란한 마음으로 유튜브에 만만해 보이지 않는 법, 당당하게 회사 생활하는 법, 남의 의견 무시하는 법 등등을 찾아봤다. 5편 이상의 유튜브 조언들로 머리와 마음을 꽉 채운 덕인지 그 직원 앞에서 기도 눌리지 않고 태연 작약한 표정으로 이런저런 말들을 쏘아붙이듯 말할 수 있었다. 조직 생활이라는 게 뭐길래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스스로의 영혼을 갉아먹어야 할까?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는 그저 좋은 사람들과 웃으며 일하고 싶을 뿐인데. 저런 인간들에게는 남에게 친절하게 말 건네는 법 동영상을 100시간 강제 시청시켜야 해. 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더욱 웃긴 것은 실제로 비슷한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는 것)
너무 가까이하면 미운 인간들. 그 밑바닥에는 뭐가 있을까. 인간의 본성을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전쟁과 그중에서도 너무도 인간에 의한, 그리고 인간을 위한, 그래서 너무도 인간스러운 이념전쟁. 1995년 인도네시아의 이념전쟁을 소재로 한 오늘의 영화, 액트 오브 킬링(Act of Killing)이다.
학살자의 내면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영화. 액트 오브 킬링.
이 영화는 2012년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했다. 뭣도 모르고 봤던 나는 영화 후기를 쓰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역사며, 이 영화에 후한 별점을 준 평론가며,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이며 다양한 방면으로 이것저것 찾아보게 되었고 이 영화를 제대로 소개하기로 결심했다. 영화 기법, 영화 내용, 영화의 소재, 그리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까지. 짧게 정리해봤다.
영화 기법 | 기묘한 다큐멘터리, 재연의 재촬영
영화의 배경은 배경은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대학살은 1965년에서 1966년 사이에 공산주의자, 화교 및 좌익으로 간주된 자들에 대해 벌어진 대규모의 살해 행위로, 인도네시아 정부 및 군부가 조장 및 선동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했다. 9월 30일 운동의 쿠데타 미수로 인한 반공주의 광풍이 학살의 원인이었으며,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수치로 500,000 명 이상이 이 과정에서 살해당했다. 인도네시아 학살은 소위 "신질서"로의 이행을 불러왔고 이러한 대격변의 결과 대통령 수카르노가 실각하고 수하르토의 30년 독재가 시작되었다.
공산주의자 100만 명 이상을 학살했던 군부와 그 군부의 정치세력과 결탁했던 폭력 조직의 우두머리를 직접 만나 그들이 저질렀던 학살을 학살자들 스스로 재연하고 촬영하는 것을 다시 한번 촬영한 다큐멘터리이다. 학살자들의 재연 영화를 위한 카메라가 있고, 그리고 그 촬영 카메라를 찍는 다큐멘터리 팀의 촬영 카메라가 있는 것이다. 영화의 기법이 매우 기묘하다. 재연하는 것을 촬영하는 것을 재촬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내용 | 역사 영화? 정치적 영화!
인도네시아도 반공 이념을 강력하게 선전하는 군부가 정치권을 장악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반공이라는 이념 선전은 '외부의 적'을 설정하고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정치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반공이라는 정치이념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인도네시아 학살에 앞장섰던 폭력배의 구성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조슈아 오펜하이머가 감독 총대를 맡았고, 다큐멘터리의 두 거장이라고 불리는 베르너 헤어조크와 에롤 모리스 감독이 executive producer로 참여했다고 한다. 잊혀 가는 역사 속 추악한 인간들에게로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 감독이 찍고자 하는 건 뭐였을까? 그래. 군부가 대학살의 만행을 저질렀지. 그건 누구나 다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 그런데 우리, 손자 두 명을 끌어안고 있는 저 할아버지에게도 마냥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너무나 명확한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인와르 콩고의 삶 밀착취재 다큐멘터리.
※미시적 : 사람의 감각으로 직접 식별할 수 없을 만큼 몹시 작은 현상에 관한
영화의 주인공은 안와르 콩고. 안와르 콩고 씨는 젊은 시절 1965년 쿠데타를 주도한 군부와 결탁한 조직 폭력 무리의 우두머리였던 사람으로서, 대학살을 주도한 암살단의 핵심인물이었다. 쿠데타 당시 군은 ‘반공’을 명분으로 100만 명이 넘는 공산주의자와 지식인과 중국인들을 비밀리에 학살했다고. 40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대학살을 주도한 암살단의 주범 '안와르 콩고’는 인도네시아의 '국민 영웅'이 되어있고, 두 명의 손자와 함께 호화롭고 행복하게 생활하는 것으로 보이는 중이다. 위의 장면은 콩고가 손주들과 TV 앞에서 자신이 공산당원들을 살인하는 재현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의 캡처본이다. 콩고는 손주들이 본인이 나오는 장면을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손주들에게 어서 오라며 다그치기도 하고, 그들을 본인의 양 무릎에 앉혀 안아주며 같이 TV를 시청하기도 한다. 이 장면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콩고의 행동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영화 소재 |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역사 속으로
인간이 찍은 인간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비디오. 100만 명 이상을 학살한 사람도 사람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찾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인도네시아로 향했을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어떤 답을 찾아왔을까.
자세히 보면 예쁘다?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학살자를 24시간 밀착 취재했던 조슈아는 어떤 감정이었을지 상상해보게 된다. 조슈아는 분노, 애정, 공포와 의아함이 모두 섞인 복합적인 감정으로 인와르 콩고의 삶을 담아낸다. 영화 속에는 악마라고 상상되는 전쟁 학살 마의 무시무시한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당신을 멀뚱하게 쳐다보는, 빼빼 마른 백발의 곱슬머리 할아버지가 있을 뿐이다.
악마에 대하여
다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굉장히 지루하고(...)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사실 이 영화,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엄밀히 따지면 객관적이지 않다. 수천 시간의 촬영 영상 중에 특정 부분을 감독이 선택하고, 고른 뒤 순서를 결정하여 하나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
간단하게 한 장면을 묘사해보겠다. 영화의 중간에는 대학살에 큰 공헌을 한, 인정받는 빤차 실라들이 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이 말하는 천국이란 무엇이었을까. 전쟁통에, 열다섯짜리 소녀를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겁탈했던 시대가 그들에겐 자신의 기쁨이자 천국이었다고 말한다.
악마들의 천국.
그들은 대학살의 시대에 자신이 어떤 이득을 누렸는지, 아주 호탕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나는 그들이 웃고 떠드는 것을 조그만 나의 핸드폰에 담아 한 손아귀에 잡고 지켜보았다. 내 안에 무언가가 울컥했고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대한 불쾌함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깔깔거리며 천국을 이야기하는 그는 아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행위에서 어떤 악취가 나는지. 그리고 알면서도 고치지 않았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비디오 녹화테이프에서 특정 장면을 고르다
당신의 천국에 대해 생각할 것. 나쁜 짓하며 살아가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것. 세상이 가끔 게을러 당신을 가다듬어주지 못할 땐 당신 스스로만이 당신의 영혼을 구제해야 한다는 것. 감독이 우리에게 강렬하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인와르 콩고의 순수한 무지(無知): 무지는 죄인가?
그런데 영화의 메인 캐릭터 콩고의 경우는 나에게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 가깝게 행동하고, 자신의 살인 장면이 담긴 영화를 손주들에게 기꺼이 보여주려고 한다. 그의 모든 행동들은 형용할 수 없는 이질감을 불러온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천국을 말했던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을 대하는 불쾌함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잘못했던 걸 아예 모르는 사람 같았다. 이건 말이 통하지 않는 대화 상대와 논리를 이어가려고 혼자 노력해야 하는 답답함 같은 것이다.
영화 속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콩고가 웃는 모습. 누군가를 살인했던 행위를 재현하면서 콩고는 천연덕스럽게 웃는다. 영화의 리뷰를 남긴 누군가는 그것을 가리켜 악마의 웃음이라고 적어두었다.
사실 나는 그와는 반대로 콩고의 웃음을 보면서 어린아이가 생각났다. 아무것도 알지 못할 때 지을 수 있는 웃음이 있기에. 본인이 이 세상에서 자아내고 있는 죄악이 물레방아를 돌려 실을 잣는 것보다도 쉽고, 그것이 아주 간단한 놀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세상의 거대함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에게만 보이는 놀라울 정도로 순수하고 가벼운 웃음. 그렇다. 가까이서 보니까 멀리서 보는 것보다는 사람다워 보이더라고. 그의 웃음이. 아무것도 모르는 그의 무지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마피아 영화를 보고 살인을 저지른다
콩고를 자신의 학살의 모티브로 어린 시절 보았던 미국의 마피아 영화를 들먹이기도 했다. 주인공들이 아주 멋지게 악당을 물리쳤다고 했다. 콩고의 곁에서 한 마디만 해줄 사람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콩고 야. 너의 주변에는 어떤 악당도 없다. 그들과 너의 이념이 다른 게 아니라 정확히 본다면 수마트라와 수 하트라의 이념이 다른 것이고, 이념이 다르다고 하여 누군가를 죽여서는 안 된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존재들이 서로 존중하며 지낼 수 있어야 한다. 네가 그 사람을 죽여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 질문.
만약 콩고가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다면 콩고의 빈자리를 대신해줄 누군가가 나타나 수만 명을 도살했을까?
그래서 이 영화 왜 봐야 되는데?
세계의 3대 학살이라고 분류될 만큼 학살의 규모와 사상자의 수가 유례없다는 1965년 인도네시아 공산당 학살. 그 역사의 한 복판에서 누군가를 죽이고 살아남은 ‘학살자’가 다름 아닌 우리 할아버지와 같았다. 는 조슈아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액트 오브 킬링을 보는 모든 이들이 조금이라도 나와 내 주변과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들기 위해 이 영화가 탄생했다.
조직이란 것.
그리고 조직을 굴리는 세상이란 것.
세상의 기준이 도덕적이지 않았던 때는 수도 없이 많다. 역사책의 절반은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하루하루 살기도 벅차고, 하루가 끝나면 지쳐 잠들기에도 바쁘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만은 생각해봐야 할 한 마디. 나 정말 잘살고 있나?
내가 너무 바빠서, 내가 너무 잘 살고 싶어서, 나의 마음속으로 만들어내는 나만의 천국은 어디쯤에 있는지 살펴볼 때다. 역사책의 몇 페이지에만 이라도 도덕성을 몇 방울 더 떨어뜨려보려는 조슈아의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이었다.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당신을 위해 다음 영화로 <한나 아렌트>를 추천.
| 한나 아렌트 명대사 |
"가장 큰 악은 오히려 평범함 가운데에서 나타난다"
"악은 늘 극단적일 뿐 근본적 이질 않아. 깊고도 근본적인 건 언제나 선뿐이지."
영화, 액트 오브 킬링
인도네시아의 대학살 역사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