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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Sep 03. 2018

영화 <스윗 프랑세즈>

퇴근길 영화 한 편(4)


 지혜에게 위로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혜와 친구가 된 것이 햇수로 따지니 벌써 5년이다. 그 5년이라는 시절 동안에 꼬물꼬물 서로의 성장과정을 지켜본 지혜의 비밀 일기장이 건네는 위로.


 햇빛이 쨍한 일요일 낮에 지혜에게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요즘 점점 나의 세계 속에서 내가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게 정말 힘들고 어렵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 혼자서 이 모든 걸 끝까지 해나가기가 어렵다는 생각.. 일상에서의 변화 그게 가능한 걸까? 왜 예전에는 반복되는 하루에도 매번 즐거울 수 있었을까 지금과 별반 다를 것들이 없었을 텐데..

나는 섣부르게 입을 열고 싶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보낼 글을 준비했다. 일주일 하고도 이틀 정도 걸렸다. 생각보다는 조금 길어졌지만 그래서인지 더 그녀가 글을 열어볼 순간이 기대된다.


평범했던 그녀-루실-의 찬란한 순간, <스윗 프랑세즈>

IMbd 평점 6.9/10 | 다음 영화 평점 85./10 | 2015.12.03 개봉 | 107분, 15세이상관람가

줄거리

배경은 나치의 점령 당시 프랑스. 프랑스 시골 마을뷔시에 사는 여인 루실은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중이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 루실의 마을에 독일군들이 주둔하게 된다. 루실은 깐깐하기로는 온 마을에 악명이 높은 시어머니와 함께 시어머니의 아들, 즉, 남편을 기다리는데 그녀의 집에서 머물게 된 독일군 장교 한 명이 그녀의 조용한 마음의 호수에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배경 | 독일군이 주둔하는 프랑스 마을 뷔시


 더 이상 나라의 주권을 주장할 수 없는 곳에 사는 자들만의 설움이 있다. 설움이 지배한 거리는 더 이상 새가 지저귀지 못했고, 독일군과 프랑스 마을 주민 간의 날카로운 긴장감이 팽팽하게 날이 선 채 감도는 중. 간단한 장을 보러 나가는 길에도 혹여나 독일군이 말을 걸어올까 마음을 졸이는 프랑스 아낙들의 불안감이 끝도 없이 고조된다.


 하루는 임시숙소로 배정된 독일군의 만행을 견뎌오던 절름발이 농부 브누아가 독일군 병사를 총으로 살해하고 도망치는 사건이 벌어진다. 독일군은 대대적인 병력을 동원해 수색작전을 벌이고, 수색작전에 실패하는 경우 브누아 대신 시장을 총살하겠다는 극단적인 수를 둔다. 독일군 총지휘관은 시장의 총살 집행자로 독일군 장교를 배정하고, 결국 시장의 운명은 루실의 집에 머무는 독일군 장교 브루노의 손에 맡겨지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농부를 숨겨주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그를 숨겨준 사람은 다름 아닌 루실. 루실은 왜 이 농부를 숨겨주었을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옳다고 느끼는 것을 지킨 루실. 그녀가 영화 초반에 등장했던 캐릭터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다.


총살이 있기 몇 시간 전, 시장의 부인은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둔 시장을 만나러 면회를 신청. 그와 마지막일지도 모를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그 대화가 의미심장하다.


 당신은 옳은 일을 했어. 하느님께선 우리 마음을 아실 거야.


시장의 마지막 대사는 마치 인간의 대사가 아닌 것만 같다. 세상에 조금의 미련도 없는 사람만 가질 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한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게 뭘까?


감독 의도 | 아름다운 것은 지켜져야 한다.


 감독은 잔인한 살육의 현장인 전쟁통을 보여주기를 거절한다. 감독은 자꾸만 관객의 눈을 아름다운 것, 순수한 것, 이루어질 수 없는 아름다운 것에 돌리게 한다. 이에 대해 당시 프랑스 사회에 만연했던 프랑스 귀족들의 잇속 챙기기 혹은 계층 간의 갈등을 놓쳤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아마도 이러한 의구심을 갖고 있는 관객을 위해 영화의 원작 <스윗 프랑세즈>가 1부 「6월의 폭풍」과 2부 「돌체」로 이루어진 구조를 소개해본다. 원작은 1부 「6월의 폭풍」은 전쟁통에서 살아나가는 각양각층의 속물적 인간군상을 냉정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1부의 치열하리라만치 냉정했던 필체를 작가는  2부 「돌체」를 통해 전쟁이 파괴하는 개인들 간의 관계를 통해 완화한다. 돌체는 악곡에서 ‘달콤하고 부드럽게’ 부를 것을 지시하는 나타냄표로 작가는 이를 달콤하거나 부드러울 수 없는 그들의 사랑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겪어낸 사람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내일이라도 혹은 1초 후에라도 모든 것들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뼈아프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전쟁통에 만연하고 있는 속물적 인간군상에서는 되도록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소재 | 알 수 없는 피아노 곡 : 돌체 '부드럽고 달콤하게 연주하라'

 브루노의 발사 명령이 떨어지자 들려오는 5-6발의 총성은 시장의 목숨을 앗아가는데, 이 사건 이후로 프랑스 주민과 독일 주둔군의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그로 인해 독일군 장교 브루노와 친밀한 사이를 유지하는 루실은 고집 센 시어머니는 물론 마을 사람들의 소리 없는 수군거림의 희생양이 된다. 루실은 자신의 남편을 기다리며 독일군 장교 브루노에게 차가운 태도를 유지하는데, 차가운 그들 사이의 공기에 피아노 선율이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관계 역시 조금씩 다른 음색을 내기 시작한다.


 루실은 본디 음악을 공부했던 내력이 있고 나름대로 조예가 깊은 인물로서, 집에 피아노 한 대도 갖고 있다. 독일군 장교는 루실의 집에 머무는 첫날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그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그 어떤 제지도 거치지 않고 루실의 귓속으로 흘러든다. 신경이 날카로운 시어머니도, 마을의 가십도,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던 그들의 사랑은 피아노의 선율을 타고 그들의 마음 정 중앙으로 스며들었다.


 노래를 들은 루실은 이 피아노곡이 도대체 무슨 곡일까 하고 골몰한다. 그러나 루실은 독일군 장교가 쳐내리는 피아노 곡이 누구의 곡인지 도저히 생각해낼 수가 없다. 오랜 전쟁에 지친 브루노는 유일하게 자신을 위로해주는 피아노 연주에 나날이 심취하고, 본디 음악을 공부했던 루실 역시 점점 그의 피아노 곡에 빠져든다. 그리고 동시에 루실 역시 그에 대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루실이 자신에 대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부터 브루노는 점점 적극적으로 루실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정원에 나온 루실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시어머니가 없는 저택에서 루실에게 춤을 추기를 제안하기도 하는 브루노. 인간다움이라고는 전혀 남지 않은 전쟁터에서 브루노가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존재는 루실과 피아노가 유일하다.


전개 | 변화하는 루실 : 보다 나다워지는 과정


 피아노 곡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과 루실, 장교 브루노의 관계 변화는 동시에 진행된다. 장교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것, 브루노가 루실을 위해 노래를 직접 만들었다는 것, 자신의 남편은 다른 여인과 이미 가정을 꾸렸다는 것, 장교가 루실을 사랑하고 브루노 역시 장교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 이 모든 현실들이 대사가 아닌 피아노의 선율로서 루실의 마음에 빈틈없이 후벼 들면서 차분하고 이성적인 루실은 인생에 다시없을 감정의 폭발을 겪는다. 아마도 그녀의 인생에 다시없을 용기로 소작농 부누아를 숨기고, 남편의 옷을 입혀 그를 트렁크에 싣고 그녀는 파리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삶의 어느 순간보다도 강한 생명력을 느꼈을 것이다. 선택을 하는 인간은 살아있음을 느낀다. 옳다고 느끼는 믿음이 있는 인간은 선택을 한다. 자신 안에 생겨나는 무언가를 인정한 자에게 믿음이 생긴다. 우리 모두의 속에는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 많은 것들이 자라고 있다.


 브루노의 피아노곡을 통해 조금씩 커져나가는 자신 안의 감정을 느끼면서 루실은 자신의 인생을 선택해나가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조용히 자신의 남편을 기다리는 프랑스 마을 뷔시의 아낙에서 이웃 농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파리를 향하는 운전대를 잡는 루실이 되기까지의 여정이다. 파리로 향해 멀어져 가는 루실의 자동차와 뷔시의 마을에 남는 독일군 장교 브루노. 그리고 전쟁이 앗아간 브루노의 존재를 그가 남긴 악보를 통해 기억한다는 루실의 내레이션을 통해 영화는 마무리된다. 전쟁 중 짧았기에 더욱 치열하게 불타올랐던 그들의 사랑을 그린 영화, <스윗 프랑세즈>.



이 영화 왜 골랐어?

 반복되는 일상을 사랑하기 힘든 지혜에게. 나치는 어머니의 정신까지 죽일 수 없었다는 구절을 꼭 들려주고 싶어서 이 영화를 보낸다. 허무함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영원한 것을 찾는 거라고 생각해서 골라보았어. 진실된 것은 그 순간 안에 영원히 남는다는 말을 지혜도 혹시 믿는지? 소중한 모든 것을 순간 속에 넣어두고, 때때로는 그 순간들을 기억의 서랍에서 꺼내어 보는 위로가 필요한 것 같더라.



누구나 인생에 불타오르는 순간이 있다.


 루실의 인생이 생명력으로 불타올랐던 시간은 아마도 장교와의 일-이 개월 채 되지 않는 짧은 만남의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다른 그 어떤 시간들 속에서의 본인보다도 더 뜨겁고 열망으로 가득하며 생명력으로 충만한 그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을 인생에서 한 번이라도 느껴봤다면, 혹은 그 순간을 향해 내가 달려 나가고 있다면 그래서 그 순간과 지금의 내가 이어져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한 것.


그래서 아름다운 지금


 만약 내가 너와 함께 4반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마 지금 이런 글도 나누지 못하고 있었을 테지. 만약 내가 너와 함께 마스트리트의 마을에서 감자튀김을 사 먹지 않았더라면 아마 우리는 이런 글을 나누고 있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지. 만약 내가 너와 벨기에에서 서로를 향해 셔터를 눌렀던 기억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네 말이 맞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번 행복하고 즐겁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야. 그리고 나는 때때로 허무함이 가득해지면 우리가 모두가 조그맣고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평범한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해. 일상의 단조로움에 하루에도 일곱 번이고 여덟 번이고 넘어지기도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소중한 추억들과 순간들이 있었고, 그 순간순간의 우리들은 지금의 우리와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는 걸 기억하는 거야-



영화 <스윗 프랑세즈>
생활이 단조로울수록 열정을 잃기가 쉬운 것 같아


P. S. 

 맞아. 지혜야. 신영아. 우리의 삶은 눈 깜짝할 사이에 금세 단조로워지고, 우리는 언제나 몸은 단단하게 웅크려 우리의 존재를 지켜낼 준비를 해야 하지. 그러다 보면 몸을 웅크리지 않았던 때를 종종 잊어버리게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야. 언제나 스스로를 지켜낼 자기 자신의 수호천사가 되어야 하지. 때때로 그 역할이 너무 버거울 때, 다시 너의 비밀 일기장으로, 너의 수호천사로 돌아오렴.  


그 때의 우리가 보았던 것들.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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