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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Apr 18. 2021

강박적 아름다움과 다이어트

사회에 대한 태도 EP.06 거식증과 폭식

그냥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최근 들어 여자 청소년들이 자주 쓰는 해쉬 태그로, #프로아나 #씹뱉 #폭토 #먹토 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감도 오지 않았습니다. 단어의 뜻을 알게 된 뒤에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마냥 행복해도 부족할 청소년 시기에 학업은 물론이고 외모에 대해서도 강박적인 외부적 기준에 시달리고 있는 게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2019년 기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자해 또는 자살 시도로 병원을 찾은 9~24세 청소년은 9,828명으로 1만 명에 가까웠습니다. 2015년 4,947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두 배로 증가한 수치입니다. 2019년 기준 10만 명의 10대 중 5.9명이 자살을 하였습니다.  


사실, 이는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닙니다. 영국에서도 역시 섭식 장애로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가 급증했습니다. BBC에 따르면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에 따르면 섭식 장애로 입원하는 환자 수가 지난 2016년 1만3,885명에서 2019년 1만9,040명으로 급증했다”며 “특히 이 중 13~15세 환자 수가 많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에서는 2019년 기준 식이 장애 입원 환자 중 18세 이하 환자는 전체에서 25% 수준인 4,471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Pro+Anorexia

프로아나는 찬성인 pro와 거식증의 Anorexia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즉, 거식증에 찬성하는 것을 넘어 동경하는 견해를 말하는데요. 마른 몸을 추구하는 사회적 관념이 섭식장애를 추구의 대상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굶거나 폭식 등의 섭식장애를 기반으로 마른 몸매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 위장, 생리, 우울증 등의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暴吐
폭토 폭식을 한 뒤 살이 찔까 두려워 억지로 토하는 일을 말합니다. 


먹토 먹고 토한다는 말의 줄임말입니다. 식사를 한 뒤 의도적으로 손가락을 목에 넣어 먹은 음식들을 다시 뱉어낸다는 의미입니다. 음식을 먹은 후 일시적으로 포만감과 만족감을 느낀 뒤 다시 게워내 살찌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동안 유행하기도 하였던 다이어트 방법입니다. 일시적으로 살이 빠지는 효과도 있기는 하지만, 먹토는 신체 자해와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부작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산이 식도는 물론 이에 까지 닿게 되면서 강한 산성으로 염증과 부식을 발생시킵니다. 역류성 식도염과 치아 부식을 유발하는 이 행위는 사실 폭식증과 거식증이라고 불리는 섭식 장애에 동반되는 대표적인 증세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일단 한 번 먹토를 하게 된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먹을 것을 강제로 토해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이후 먹토는 자연스럽게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요. 


씹뱉 씹뱉은 씹고 뱉기의 줄임말입니다. 맛은 느끼지만 뱉어버리면 칼로리 걱정이 없다는 생각에서 선택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씹뱉을 하게 되면 후각과 시각, 미각으로 소화기관이 활성화된 상태로 이미 위액분비가 촉진되었는데 음식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위산이 식도로 역류하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폭식 유발의 계기가 되어 섭식장애의 악화를 불러옵니다.  



Umberto Eco, UmbStoria Della Bruttezza 

움베르트 에코, 추의 역사


이탈리아의 천재 역사학자 움베르트 에코의 추의 역사 서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평범한 화자의 감수성으로 판단한다면, "아름다운"의 모든 동의어는 무관심적 평가의 반응으로 여겨질 수 있는 반면, "추한"의 동의어들은 거의 모두는 격렬한 거부감이나 공포, 두려움까지는 아닐지라도, 어떤 혐오감의 반응을 포함하고 있다. 

아름다움은 그 누구의 비판도 받지 아니하고 평온하게 지나쳐 갈 상황들을 만드는 반면, 추함은 타인의 거부감과 혐오감을 마주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추의 역사>의 저자 움베르트 에코의 이탈리아의 주간지『오지Oggi』와의 인터뷰 내용도 인용해보겠습니다.(2007. 10. 24)     


진행자: 추함은 아름다움의 반대말이라는 명제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움베르토 에코: 아니지요. 무엇보다 아름답지 못한 것이나 사람이 반드시 추한 것은 아니니까요. 삶은 그렇고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추함은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다양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 또한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아름다움은 항상 몇 가지 기준을 따라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아름다운 코는 일정한 길이를 넘어가면 안 되는 것이거든요. 반면 추한 코에 대해서는 피노키오의 코에서부터 넓적코, 콧구멍이 셋인 코, 종기가 많이 난 코, 술주정뱅이의 붉은 코 등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상이 가능하지요. 따라서 추함의 이미지는 아름다움보다 어마어마하게 풍부합니다. 이 책을 펼쳐 보면 그것을 알게 될 겁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추함의 유형은 얼마나 되나요?

움베르토 에코: 비슷한 말을 사전에서 한번 살펴보세요. 〈추하다〉라는 단어의 비슷한 말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불쾌하다〉, 〈끔찍하다〉, 〈역겹다〉, 〈비위에 거슬리다〉, 〈그로테스크하다〉, 〈징그럽다〉, 〈혐오스럽다〉, 〈밉살스럽다〉, 〈추잡하다〉, 〈더럽다〉, 〈역겹다〉, 〈거부감 들다〉, 〈음란하다〉, 〈흉측하다〉, 〈욕지기나다〉, 〈구역질나다〉, 〈구리다〉, 〈기분 나쁘다〉, 〈무시무시하다〉, 〈천하다〉, 〈천박하다〉, 〈비열하다〉, 〈공포스럽다〉, 〈나쁘다〉, 〈볼품없다〉, 〈흉하다〉, 〈몰골사납다〉, 〈색다르다〉, 〈찌그러지다〉, 〈일그러지다〉 등등이 있습니다. 혐오감을 불러오는 추함이 있는가 하면 연민을 불러오는 또 다른 추함이 있는 것입니다.

진행자: 그런데 당신의 책에 있는 추한 사람이나 상황들에 대한 수많은 묘사들이 실상은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던데요.

움베르토 에코: 우리는 추함, 자체의 표명(똥, 썩은 시체, 악취를 풍기는 주름투성이의 생명체)과 형식상의 추함이라 부르는 것, 예를 들면 추하지는 않지만 이가 빠진 모습의 얼굴과 같은 불균형에서 빚어진 추함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두 종류의 추함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 있지요. 이미 옛날 사람들은 "악마도 잘만 묘사된다면 아름다울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추함이라도 그것에 대한 충실하고 효과적인 예술적 묘사에 의해서 만회될 수 있습니다. 중세에 (이 시기는 고통과 괴로움, 죽음, 악마의 묘사가 매우 중요하였던 때였습니다) 보나벤투라는 악마의 추함이 잘만 묘사된다면 그 이미지는 아름다울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한 시대 속에서 아름다움은 항상 몇 가지의 기준을 따라야만 했습니다. 반면 추함이란 그 몇 가지 원칙에 속하지 못한, 방대한 외면적인 속성에 적용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관련 영화

To The Bone

투 더 본 


거식증을 앓고 있는 엘렌은 오랜 세월 반복된 거식증 치료를 위한 입원과 퇴원에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어느날, 새엄마의 권유로 윌리엄 박사의 프로그램을 소개받게 됩니다. 엘렌은 거식증을 앓고 있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합숙을 시작하며 조금씩 변화해갑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싹트는 사랑과 유대감으로 거식증을, 그리고 뿌리깊은 자기 혐오르 차차 치유해가는 것입니다.

여주인공을 맡은 릴리 콜린스는 영화 촬영 이후, 연기를 위해 선택한 몸무게 감량이 오히려 거식증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어느날 제가 아파트에서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40대 여성분과 마주쳤습니다. '와, 너 좀 보렴.' 그 분이 말했습니다. 저는 연기때문에 살을 뺀 것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너가 살을 어떻게 뺐는지 알고 싶다. 너무 예뻐졌어!"라고요. 엄마와 함께 차에 탄 뒤 말했습니다. "이게 바로 거식증 문제가 생기는 이유"라고요. 



몸매가 하나의 스펙이라고 생각되는 시대상을 보여줍니다. 만약에 집에, 근처에, 혹은 지나가는 청소년이 음식을 씹고 뱉는다면 그것을 단순히 잘못된 식습관이라고, 하나의 잔소리의 대상으로 치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섭식 장애라는 병은 본인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에 아름다움이 깃들어있다는 것을 언젠가 느낄 날이 올 것입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 있는 그 누군가에게도 빛이 찾아들 것입니다. 금방 그렇게 될 것입니다.


레퍼런스
Kim, Y. S. and Kong, S. S. (2004). A study on weight-control behaviors, eating disorder symptoms and depression among female adolescents. Journal of Korean Academic Psychiatric Mental Health Nursing, 13, 304-314.            

8년째 청소년 사망원인 1위 자살..27%는 ‘우울감’ 경험, 2020.04.

건강 위협하는 #프로아나(개말라)… 부추기는 SNS, 2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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