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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펄블B Apr 21. 2016

바느질의 미학

어미새, 아기새, 다람쥐, 토끼.....

어제 마지막 인형 만들기가 끝났다. 남는 천으로 조각보 만들듯이 만들어서 색 조합이 전혀 안 맞는 코끼리는 캐나다에서 만드는 마지막 인형이 되었다.


헤나에 crafts도 모자라서 인형 만들기까지 시작한 건 한국에 있는 친구 생일 때문이었다. 직접 만들어주는 선물을 좋아하는 친구라서 이번에는 뭘 해줄까 하다가 중학교 때 잠깐 했던 인형 만들기가 생각났다. 별로 어렵지도 않았던 것 같고, 다시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길로 천이랑 실을 사다가 인형 만들기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건 추억이 미화된 거였다!


그 친구랑 서로를 어미새, 아기새 하면서 놀아서 병아리랑 엄마 닭을 만들려고 했는데, 첫 병아리는 넌 오리니 병아리니? 싶을 정도로 실패했다. 머리 만들려다가 실패한 건 어제까지 바늘꽂이 역할을 했고, 실패한 오리/병아리는 지금은 어쨌는지 방에서 찾아볼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야 불굴의 의지를 가진 한국인!! (그 의지로 내일 보는 시험공부를 좀 해) 다시 도안을 찾아서 만든 병아리를 시작으로 엄마 닭, 다람쥐, 토끼, 강아지 두 마리,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에 어제 마무리 지은 코끼리까지 거의 틈만 나면 바늘을 손에 달고 살았다. 지금 뭐하냐는 친구의 톡에 열에 아홉은 바느질해라고 답한 것 같다.



원래는 그냥 친구 생일 선물로 어미새랑 아기새만 만들고 내 개인 소장용으로 토끼 하나만 만들고 끝내려고 했다. 근데 이게, 바느질이, 특히 박음질이, 되게 사람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문득문득 불안한 감정이 솟구칠 때도, 가끔씩 짜증 나는 일이 있을 때도, 흘러넘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을 때에도 바느질은 효과가 있었다.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사람이라 항상 좀 차분해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느질을 할 때면 신기하게도 안정감이 들었다. 종종 삘 받아서 새벽에 인형 만들기를 시작했을 때에는 이걸 손에서 놓치를 못하고 결국 밤을 새고야마는 나를 보며 아니 이건 도안도 간단하고 인형 크기도 작은데 대체 왜 박음질이 끝이 안 나는 거지... 라며 시작한 나 자신을 쥐어박고 싶기도 했지만 그런 욕구도 다스려질 정도로 바느질은 나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음... 이러다가 한국 가서는 재봉틀 살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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