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대종주가 설악산종주로 바뀐 썰!
ㅡ2025년 5월 24일,
나는 마라톤114의 형님 그리고 동생분들과
설악대종주에 도전하였으나
두려움으로 일부코스를 변경하여 완주하였다.
설악산대종주는 우리나라 3대 종주 중
가장 어려운 코스로 알려졌는데
남교리~대승령~귓때기청봉~대청봉~공룡능선~마등령~소공원으로 이어지는 36km로 구성되어 있다.
5월 24일 00시 30분경 우리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때는 이슬비가 내렸고 덥지 않음에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이후 어둠 속을 걸었고
12선녀탕의 자태를 확연하게 볼 수는 없었으나
청량한 물소리와 랜턴에 비치는 부분만 봐도
신비로운 청량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바람도 비도 그냥 청량했다.
그래서 행복했다.
이후 대승령을 지나 귀때기청봉에 진입하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어둠 속을 걸었다.
산행초반에는 이야기를 나눴지만
산길이 좁아 일렬로 걸어야 했고
급경사를 오르는 길이기에
대부분은 서로의 발소리와 숨소리
그리고 시원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반강제적 명상을 하며 이동했다.
나는 이때 시간 속을 걸어간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3차원으로 살지만
어둠이 모든 것을 가렸기에
밤이 낮으로 가는 시간의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캄캄한 그 길은 졸릴 만큼 익숙했고
그래서 두려웠다.
왜냐하면 진짜 잠이 왔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밤의 피곤함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귀때기청봉 입구에 도착할 무렵,
날은 밝았고 비는 내리고 바람은 불었다.
어둠이라는 이불을 걷어내면
편한 일상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산산조각이 놨다.
바람은 우의를 찢을 만큼 거셌다.
비는 몸을 충분히 적실만큼 강했다.
결정적으로 귓때기청봉의 너덜길은
칼과 같이 날카로웠고
비눗물이 뿌려진 것처럼 미끄러웠으며
바위들 간의 공간은 함정(덫)처럼 위협적이어서
우리의 발은 묶여버렸다.
그곳의 바람은 충분히 매서웠고
그곳의 비는 충분히 차가웠으며
그곳의 우리는 신중하게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몸은 점차 식어갔고
이내 추위가 통증으로 느껴졌으나
서로를 생각해서 아프다는 말도 못 했다.
그렇게 정상에 오르고
이 고난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귓때기청봉는 인생 같았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길고 힘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각자의 고통을 참아내고 이겨냈다.
귓때기청봉에서 완전히 이탈했을 때
비와 바람도 잠시 쉬었고
전쟁 같은 오전이 끝나는 줄 알았다.
한계령삼거리를 지나 중청대피소로 가는 길부터는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더 거세졌고
체온도 다시 식어갔다.
몸이 아픈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다가 조난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청대피소에 도착해서 이 산행을 어떻게
진행할지를 논의했고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공룡능선에는 가지 않고 천불동계곡으로 선회하기로 결정되었다.
사실 무릎 등 관절, 체력 등만 생각하면 정상적으로 진행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 날씨라는 변수를 무시할 수 없기에 내린...
더 쉽게 말하면 두려워서 코스를 변경하였다.
거센 바람은 우리에게 난관을 주면서도
큰 구름을 삽시간에 옮겨서 멋진 풍경을 허락했다.
차가운 빗줄기는 우리에게 고난을 주면서도
풍부한 수량의 멋진 폭포를 만들어주었다.
계획에 없었던 천불동계곡을 걸어 내려오면서
묘한 패배감도 들었지만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또 도전할 수 있음에 행복했다.
설악산의 하늘과 바람 그리고 비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핑계일 뿐...
사실 그 두려움은 설악산이 준 것이 아니라
산을 잘 모르고 반바지와 얇은 옷을 입은
우리가 자초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세상살이에서 만나는 두려움!
그것의 원인이 환경과 배경이라고 원망하고 한탄했는데.,.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탓일 경우가 대다수인 것 같다.
그리고 두려움 덕에
온전한 몸과 마음만 유지된다면
한번 더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설악산대종주를 다시 기약하는 우리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