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쓰는 백두산 여행기-3
나는 여행 때 몇 가지 놀이를 한다.
1. 주변을 달리고
2. 한곡의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며
3. 현지에서 지명유래를 상상한다.
주변을 뛰면 남들이 못 보는
여러 가지를 경험할 수 있어서 좋고
한곡의 노래만 들으면
풍경, 냄새, 습도까지도
그 노래에 입혀지고, 베어 들고, 적셔져서
사진과 글이 없어도
회상하기 좋으며
현장에서 지명의 유래를 상상하면
그곳의 삶과 동기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이 세 가지 놀이를 백두산에서도 했는데
천지에서 세 번째 놀이를 하던 중
눈물이 났다.
천지에 대한 여행상품은
대부분 서파 또는 북파이다.
여기서 파(坡)는 중국어로 언덕을 뜻한다.
나는 천지에 두 번 방문했는데
2025년 7월 18일에는 서파에,
그다음 날에는 북파에 갔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는 천지를
두 번이나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신나게 사진을 찍고 웅장함에 감탄하다가
경이로움에 찔끔,
고독함에 쭉,
동질감에 왈칵,
그리고 다시...
천지의 별칭 중에는 흑수(黑水)가 있는데
나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내가 본 천지는 완벽한 하늘색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본 세상의 모든 물들은
하늘과 더불어서 산야, 건물, 배 등을 반사했다.
하지만 천지는
오롯이 하늘만을 품고
하늘만을 내뱉었다.
하늘이 어두워지면 천지도 어두웠고
하늘이 밝아지면 천지도 밝았다.
하늘만을 온전히 품고
하늘만을 온전히 내뱉어서
하늘연못(天池)라고 명명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백두산 근처에는 그 정도 높은 산이 없다.
설악산은 태백산맥,
지리산은 소백산맥,
그러나 백두산은 혼자 외로이 서있다.
그곳 제일 높은 곳에는
하늘만 비추는 호수가 있으니
외로워 보였다.
그런 슬픈 하늘연못을 보니
하나의 뜻만 받고 살아온
내 삶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짝에 가서 일하라고 하면 갔다.
이 짝으로 오라고 하면 또 이동했다.
그러다 보니 수십 년 홀로 돌아야 다녔다.
그리고 외로움은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그래도 움직이는데
그 험한 곳에 있는 천지 외로이 홀로...
경이로움이 애잔함으로 바뀔 때까지
20여분을 천지만 봤다.
그리그 그 애잔함이 동질감으로 변하는 데는
5분 정도가 더 소요된 것 같다.
그렇게 슬픈 하늘연못을 내려오는데
내 위치가 바뀌면 보이는 것도 바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서파나 북파와 같이
언덕에 있지 아니하였다면
그래서 수면과 가까운 위치 해서
비슷한 높이에 있었다면
천지는 주변을 에워싼 언덕들(서파, 북파 등)을
담고 다시 반사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천지가 오롯이 하늘만 담고 내뱉는다는 것은
내가 서있던 그곳에서만 진리였다.
그리고 내가 외롭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나의 삶을 같이해준 가족과 친구가 있기에
외로움의 존재가 약해지거나
즐거움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것은
더 큰 진리임을 깨달았다.
이것이 영험하지만 외로운 하늘연못에서
배어온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