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39세 되던 6월 마지막주. 남선교회 월례회 때 혼자 찬양을 하고 난 뒤 반주자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집사님... 나이가 조금만 젊었어도 성악과 갔으면 좋았을 텐데... 소리가 너무 좋아요"
전부터 망설이다 포기하고 잊고 살아왔었는데 그날의 느낌은 달랐다. 왠지 꼭 해야만 될 것 같은 강한 울림이 있었다. 나는 이도저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결정했다. 그리고 7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고 12월에 세종대와 경원대(가천대)에 편입합격했다.주위의 반응은 놀라움과 부러움. 일단 들어가면 물론 힘은 들지만 졸업은 하게 된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오늘은 즐겁다. 그렇다고 매일 좋은 일이 있다거나 돈이 많거나 일이 많거나 미래가 든든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 나를 보면 뜬구름 잡는 몽상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나의 철없음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이후에 풍요로운 삶을 이루어줄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믿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연예인이나 예술가들이 멋있어 보이는 이유는 동안피부이거나 멋있게 옷을 입어서라기보다 젊고 자유로워 보이고 매력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그들처럼 살지 못할까.
그래야만 하는,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아니 그래야만 하지 않나? 하는 자신도 설명을 제대로 못하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다. 남들이 살아가는 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뒤쳐진 것 같고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남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살아가는 이른바 평범한 삶. 평범한 삶의 기준은 없으나 나는 그런 기준으로 나의 삶을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나 보다. 나는 양복 한 벌 없다. 청바지에 캐주얼하게 입는 게 좋다. 얼마든지 멋스러운 옷이 많은데 굳이 구두에 양복에 넥타이에. 나이가 50이 훌쩍 넘었는데도 청바지에 카디건이나 후드티가 좋다. 누가 봐도 아저씨라고 생각되는 옷이 싫다.
젊게 살고 싶어 하면서 생각은 늙은이처럼 산다.
이 얼마나 모순인가. 그 이면에는 좀 전에 말했듯 그래야만 하고 그런 게 맞는 거 같고 그런 게 무난할 것 같은 다른 사람의 기대와 눈치에 부응하는 이유다.
사람들 안에는 누구나 어린아이가 있고 꿈틀거리는 욕구가 있다. 그것을 누르고 살면 병이 되는 것이다.
자연스러움은 철이 없음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는 어디까지나 자기 책임이다.
누구나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은 다르다. 각자 나름대로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신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