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예기 중용 23장 ]
영화 '역린'에서 접한 예기 중용편의 글귀가 장중한 영화의 스토리와 함께 내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무거운 마음과 함께 감동으로 다가온 글귀.
예전에 드라마에서 누군가가 말했던 '그게 최선이야?'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최선을 다했는데 고작이 정도밖에 안되냐는 핀잔이 섞인 표현이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늘 '최선을 다해야지' '최선의 노력'처럼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는 것 같다.
또한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면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라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다고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걸 우리는 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어봐야 힘들 것이고 운이란 것도 있고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셔서 주지 않으신 것일 수도 있다.
나에게 스피치 코칭을 받는 직장인 여성은 올 때마다 풀이 죽어있고 언제나 우울해하며 올 때마다 울고 간다. 이유는 직장에서 진급도 잘 안되고 자신이
다른 직원들보다 일을 잘하지 못한다고 핀잔을 듣고 아이나 남편, 그리고 집안일도 제대로 하지 한다고 생각해서 자신감이 점점 사라지고 기운이 빠지는 걸 보고 심하게 자기 탓을 하며 이렇게 말한다. "제가 최선을 다하지 못하나 봐요"
아니다. 내가 봤을 때 그녀는 넘치게 최선을 다해서 강박증을 보일 정도다. 최선의 기준은 무엇이며 어느 정도가 최선을 다하는 것인가?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는 정도? 어찌 보면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인간을 우월하게 생각하는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최선을 다한다고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최선이 아니라 정성이다.
예기의 글귀처럼 정성을 다하면 나도 다른 사람도 하늘도 감동하는 것이며 정성이 마음을 움직인다.
정성 안에 최선이 있는 것이다.
정성을 다해 사람을 대하고 일을 대하고 자신을 대하고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라.
최선 안에 인간의 교만이 숨어있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진정성 있게 모든 것을 대하고 행동하라. 그러면 감동한다.
토끼는 귀를 잡으면 움직이지 못하고
악어는 눈을 가리면 움직이지 못하듯
사람은 마음을 잡으면 모든 것을 얻는 것이다.
만나는 이들에게 정성을 다하라.
하는 일이 있다면 온 마음을 쏟아 정성스럽게 하라.
누가 당신의 고객인가? 당신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다. 그에게 정성을 다하라. 그 정성이 유익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