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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를일별진 Feb 07. 2024

곧 죽어도 뭔가를 하긴 해야지






월급을 못 받은 지 몇 개월. 비정상이 정상이 된 상황에 익숙해져버렸다. 우울함이란 것도 내 일부가 되어 버린 것 같고. 이런 상태를 말하지 않은 지는 좀 됐다. 내가 처한 상황은 상황일 뿐이고 남들이 해 줄 수 있는 말도 한정돼 있으니 말한다 한들 의미가 없었다. 이해받지 못할 마음은 꺼내지 않는 게 낫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얇은 막 같은 게 마음을 뒤덮어 나조차 나의 상태를 알 수 없게 됐다. 대신 극도로 우울했을 때보다는 컨트롤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바다다. 얕은 해수면에서 점점 깊이, 더 깊은 곳에 심해가 있듯 그렇게 이루어진 사람이다. 마냥 밝은 사람은 없고 마냥 어두운 사람도 없듯 나의 밝은 면은 수면 어두운 면은 심해다. 심해는 그 깊이만의 신비가 있기에 나의 심해도 특별한 일부다. 이번 일을 겪으며 더 깊어졌다. 나의 깊이는 다른 이들을 향한 이해의 발판이 될 것이며 내 글에 타인의 공감을 더해줄 것이다. 깊이가 있을 땐 깊게 생각하고 얕은 곳에 있을 땐 단순하게 생각하자. 절대 매순간 감정을 곱씹어 생각하지 말자.'


자위는 효과적이었다. 걱정을 하여 무엇하나. 겉으로는 밝아졌다. 아니, 정말 괜찮아지긴 했다. 문제와 감정을 분리할 수 있게 됐다. 혼자 가만히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혼자 있는 게 힘들어졌다. 잠기는 기분이 들었다. 집안에 물이 들어차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명상을 하며 잠드는 순간 만큼은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찹찹찹 발바닥 젤리가 바닥에 닿는 소리와 함께 내 품에 안기던 그 포근한 온기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다 그마저도 힘들어졌을 때,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는 판단과 함께 하고 싶은 모든 걸 충동적으로 했다. 가장 먼저 한 건 붙임머리. 돈을 들였다. 이후 친구들이 하자는 걸 했다. 시작은 스쿠버 다이빙이었다. 고민 끝에 또 돈을 들였다. 거기에 더 돈을 들여 복싱과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줄어들었다. 책에 빠져들었다. 미친 듯이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체크한 부분을 다시 읽고 그걸 또 컴퓨터에 옮겼다. 읽은 글을 먹고 소화하고 기억했다.

돈이 줄어드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까짓것 안 먹으면 그만이었다. 딱히 음식에 대한 욕구도 없었다. 월급 못 받는 걸 생각 안하고 질러댔으니 당연히 한계가 있을 터,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면 당연히 먹는 걸 포기하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혼자 있는 게 힘들어진 게 내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예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타이밍이 좋았다. 매일 같이 만나던 친구들이 바빠졌고 나는 숨겼던 감정을 드러낸 참이었다. 어차피 거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머리를 붙이고 난 뒤 씻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과 운동을 핑계 삼았다. 뭐... 이 모든 상황이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했다. 사실 거리가 생긴다고 해서 흔들릴 마음도 아니었다. 그냥 각자의 상황에 집중하게 됐을 뿐. 그 사이에 애매한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으면 최고인 거고.


돈이 고파도, 배가 고파도, 사람이 고파도 뭔가를 하긴 해야했다.

혼자 있을 때도 쉬지 않았다. 그건 온전히 나를 위해서였다. 나답게 지금을 극복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이러한 나의 태도를 현실을 무시한 채 내게로 도망치는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살고 봐야하지 않겠는가. 당장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면 내 마음부터 지켜내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사람으로 얻은 위안은 사람이 사라졌을 때 몇 배는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오기에, 혼자의 감각을 절대 잊어서는 안됐다. 더는 우울의 늪에 빠지고 싶지 않고 그걸 타인에게 전이시키기도 싫으며 당분간은 심해가 아닌 수면에 누워 햇살을 보고 싶을 뿐. 그러니 곧 죽어도 나는 뭔가를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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