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른여덟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를일별진 Apr 26. 2024

좋아함의 크기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흐려질 뿐






감정의 크기는 변하지 않는다. 갈 곳을 잃었다고 해서 이미 출발했다는 사실이 거짓이 되진 않듯 좋아하는 마음도 그러하다. 줘버린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걸 자각했던 순간이 거짓은 아니다. 다만 갈 곳을 잃은 마음이란 본디 흐려지게 마련이라, 여전히 좋아하냐 묻는다면 좋아한다 답하지만 중요하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하게 된다. 흐려진 마음에 새로움이 선명해지고 흐르는 시간만큼 중요한 게 바뀐다. 좋아하는 마음은 가라앉는다. 아래로, 더 아래로. 절대 사라지진 않지만 묻히긴 한다.




사실 행복해지려고 집을 나섰다. 추억을 쌓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길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행복과 멀어져 있었다.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돌아가고 싶었지만 돌아갈 순 없었다. 너무 멀리 와 버렸다. 포기할 순 없으니 쉬기로 했다. 나무에 기대앉아 주변을 돌아봤다. 멈춰선 곳에선 많은 게 보였다. 걸어왔던 길, 처음의 마음, 지금의 마음. 그리고 내 시야를 가득 채운 새로운 것들과 다양한 가능성. 긴 시간 혼자 쉬고 나서야 알았다. 애초에 중요한 건 길이 아니었다. 과정에서 보고 느낀 모든 것. 내 마음, 그 자체였다. 나는 갈 곳을 잃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길을 잃은 적 없었던 거다. 나보다 감정이 우선시되지 않도록 재정비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모든 마음 모든 결정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건 나임을 깨닫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흐려지고 가라앉은 감정이 다시 선명하게 떠오를지 아니면 새로움에 밀려 완전히 묻히게 될지, 마음의 결말은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저,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설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탄 봉사가 가르쳐 준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