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
배려하는 것과 참아내는 것. 받아들인 것과 받아들인 척 하는 것. 완전히 이해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한 채 묻고 넘어가는 것.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은 좋아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너를 위해서' '네가 걱정되니까' 좋아하기 때문에 좋은 사람인 척 한 결과는 소중한 이를 상처입히는 방향으로 드러난다.
나는 어지간하면 내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생각과 꿈, 희망을 말할 뿐 감정은 말하지 않는다. 이유는 이렇다. 감정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걸 남이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깊은 감정을 말하는 건 약점을 들키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간혹 용기 내어 감정을 말하고 나면 애써 좋은 말을 해 주려는 상대를 보고 위로받은 '척'을 해야할 때도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감정을 숨길 거면 완벽하게 숨겨야 하는데, 간혹 사람에 따라 '숨김'이 안 먹히는 경우가 있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대체로 그 경우는 내가 그들을 좋아할 때 일어났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그들을 '배려해' 감정을 숨겼다.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기 싫다는 것도 이유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는 읽기 쉬운 존재였다. 모를 리 없었다. 느껴지는데 말을 안 하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내 감정이 드러나는 경우. 소리를 치고 화를 낸다. 내가 이렇게까지 표출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다. 그러니 끌린다. 그 사람 앞에선 노력을 덜 해도 되니까. 나를 포장하지 않아도 되니까. 문제는 그 표출에도 진짜 감정은 없다는 거다.
감정을 말하는 건 두려우니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알아봐주길 바라는데, 바로 그게 모든 문제의 원흉이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겁먹고.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불쏘시개가 된다. 티는 내고 말은 안 하고. 불쏘시개에 불을 제대로 지피는 건 시간이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자초한 관계의 답답함은 커져만 간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시간은 말로 잡을 수 있다는 거다. 말로 상황이 악화되는 걸 막을 수 있다. 사실 노력을 안 하는 관계는 없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는 없다.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까 끌린다는 건,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된다.
소중한 이들을 위하는 것, 진짜 나를 위하는 게 뭔지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내가 웃으면 따라 웃는다.
언젠가 한 친구에게 '행복'에 대해 물은 적 있었다. 친구는 자신의 행복은 잘 모르겠다 말하며 그랬다. 그냥, 자신이 뭔가를 해 줬을 때 좋아하고 밝게 웃고 행복해 하는 사람을 보는 게 행복이라면 행복일 것 같다고. 그건 나도 그렇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란 다 똑같을 텐데, 나를 숨기고 그들 곁에 있는 게 무슨 소용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일이다. 혼자 불을 지피지 않는 일이다. 쉽진 않을 거다. 변화의 과정에는 부작용이 따를 거고 때론 사람을 잃거나 놓아야 하는 일도 있겠지. 그러나 사람을 잃는 것 보다 두려운 건, '원래 그렇다'는 말로 변하지 않으려는 나를 마주하는 일이다. 내가 변해야만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