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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관우 Jun 05. 2022

결혼하고 미국에 간다고?

정말? 미국에 갈 거라고? 


괜찮겠어? 알지, 너 집순인 거. 그래도 일 관두고 나면 아쉽지 않겠어? 아니, 일단 거기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잖아. 아니네, 한 명 있네. 남편 하나 말고는 아무도 없잖아. 가끔 이러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 같이 먹을 친구도 없이 뭔 재미로 산다냐. 남편 직장 동료들, 그 동네 한인 친구들. 뭐 생기기야 하겠지. 영어 늘고 나면 동네 친구들도 생기고 하겠지. 근데 다 새로 시작해야 하잖아. 네가 서른 넘게 여기서 만들어온 걸 다 버리고 가겠다고? 진짜 대단한 결심이다. 근데, 한국이 그렇게 싫었던 거야, 아니면 다 포기해도 상관없을 만큼 남자친구가 좋은 거야?


“….”


둘 중에 하나라도 확실하게 대답했다면 나도 말을 아꼈을 거다. 내 인생도 아닌데 내가 뭐라고. 일 년에 한 번 보면 잘 보는 친구 사이. 딱 그 정도. 우리가 뭐 얼마나 친했다고. 


너, 만약에…. 이혼이란 걸 하게 되면 말이야. 그 이후에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본 적 있어? 일단, 한국에 다시 들어오게 되겠지? 너 미국 가면 일 안 할 거라며. 몇 년을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갑자기 다시 일을 시작하겠다고? 경력이 몇 년이나 끊기는데, 지금 다니는 회사만큼 좋은 델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네가 더 잘 알잖아, 쉽지 않다는 거. 작정하고 자리 구하면 어디든 가기야 하겠지. 근데, 성에 차겠어? 그래도 큰 회사 다니던 애가. 지금 친한 회사 동료들도 그때 가선 얼굴 보기 힘들 걸? 아마 네가 힘들거야. 계속 다녔으면 나도 저 자리에 있을텐데…. 내가 왜 저길 나와서는…. 하고. 이런 생각 하다보면 미국 가서 힘든 일 생겨도 그냥 참고 살자. 다시 한국 가서는 못 살겠다. 싫어도 그냥 참고 살자…. 애라도 생기면 그래. 애들 보고 살자. 그거 너무 별로지 않아? 


지가 좋아서 결혼하겠다는데 무슨 오지랖이냐고? 아니, 그게 아니라…. 쟤는 남은 인생 다 걸고 떠나는 결혼인데 최악의 상황도 생각은 해봤냐는 거지. 봐봐. 지금이야 쟤도 잘 벌고, 남친한테 꿀릴 게 뭐가 있어. 근데, 결혼해서 일 관두고 생활비를 절대적으로 남편한테 의지하게 되면. 하루 온종일 남편 스케줄에 맞춰서만 살게 되면. 그렇게 배우자라는 한 사람한테 비스듬히 기대게 되는 순간. 기우는 게 과연 어깨뿐일까? 배우자 없이 경제적으로 자립이 안 되는 삼십 대 후반, 사십 대 초반의 나한테 스스로 만족할 수 있겠어?


나 같으면 꾸역꾸역 십 년을 채운 경력이 아쉬워서라도 저 결심이 쉽지는 않을 거 같아. 일이 뭐 대수냐고? 맞아. 요즘 직업 하나로 평생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딨어. 근데 그만둘 때 아쉬움은 없어야지. 경력이 우리 훈장이잖아. 그냥 자기만족일지라도 말야. 나 잘 살아왔네. 용케 버텼네. 보고 있으면 그냥 씨익 한번 웃게 되는 그런 거. 이제 서른 막 넘긴 우리가 이룬 게 또 뭐가 있다고. 쟤도 어떻게 버틴 회사인데 그거 내려놓고 미국 따라가겠단 결심이 쉬웠겠냐고. 고민 많았겠지. 애초에 이혼을 전제로 생각하는 결혼. 당연히 이상한 얘기지. 근데, 그냥 생각은 해볼 수 있는 거잖아. 어렵게 공부해서 들어간 네 직장, 가족들. 언제든 볼 수 있는 친구들. 또 네가 좋아하는 거. 쿠팡 로켓 배송이랑 마켓컬리, 교촌 허니 콤보, 엽떡. 이걸 다 포기하고 미국으로 떠날 수 있을 만큼 좋은 점이 더 많아? 그만큼 그 사람이 좋아? 


아까부터 대답 못 하고 있잖아 너.


(혹시 유진초이라면...얼른 따라 가)



** 독립출판으로 발행 이후 정식 출간된 에세이 <저 결혼을 어떻게 말리지?>의 일부 에피소드를 브런치에 올려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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