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아도 강동원

왜 아직도 결혼을 안 했냐고 묻거든 “제가 눈이 높아서요.”라고 ‘빙썅’ 화법으로 답해라. 한 선배가 알려준 팁이다. 지가 성에 안 찬다는데 어쩌겠나. 이 한마디로 대화 종결이다. ‘지 주제도 모르고….’라는 말은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긴 쉽지 않을 테니 보통 “그놈이 그놈이야. 아무나 만나봐.” 정도로 대화가 마무리 된다. 혹시나 오늘 뭐 하나만 걸려라 하고 내 안의 쌈닭이 꼬끼오 하는 날이라면 “그저 그런 놈이랑 사는 건 어때요?” 물어도 된다는데 워워. 여튼 만능 치트키라고 생각했던 “제가 눈이 높아서요.” 이 한마디와 비슷한 문장을 버스 광고판에서 보게 됐다.

“내가 너무 눈이 높은 걸까?” 

“결혼은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이고, 못 한 건 전부 네 탓이오. 주제에 눈이 높아서 이놈 저놈 다 보내고 결국 처량하게 혼자구나. 결혼 상대? 합리적으로 선택해. 네 분수에 맞게.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결혼? 야, 너두 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고객의 기부터 꺾고 시작하겠다는 결혼 정보 회사의 저 카피가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다. 왜 눈이 높으면 안 되는가. 배우 라미란 씨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외친 것처럼 “하루를 살다 헤어져도 강동원”이어야지.

결혼은 둘이 하는 건데 왜 내가 십 대 빵짜리 과실을 물고 시작해야 하는 건지. 내가 눈이 높아서, 내가 못나서, 패배자가 된 것 같아서,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낭떠러지에서 어쩔 수 없이 상대를 찾아야 하는 결혼은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을 거다. 오히려 늙어 혼자여도 내 몸 하나 건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지. 나와 결혼을 하겠다면 널 내가 먹여 살린다, 네가 쓰러지면 내가 업고서라도 지옥 불 건너겠다는 각오 정도는 있어야지. 

결혼 정보 회사들이여, 차라리 판타지를 심어달라. 굳이 결혼을 해야 할 명분이 없다 아입니까 명분이. 인생이 혼자보다 둘이 더 재밌는, 둘만 할 수 있는, 둘이어야만 하는 더 타당한 이유를 알려달라. 그게 매칭할 상대를 찾아주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 독립출판으로 발행 이후 정식 출간된 에세이 <저 결혼을 어떻게 말리지?>의 일부 에피소드를 브런치에 올려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