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관우 Jun 16. 2022

비혼주의자세요?

비혼이세요?

아니요, 그냥 비만인데요... 

.

.

미팅 때문에 찾은 공연 제작사. 우리 일행을 일 층까지 맞으러 온 담당자에게 뭘 여기까지 내려오셨냐는 말을 하니 이런 농담을 한다. “코로나 때문에 사무실에 앉아만 있으니까 근손실 올 거 같아서요.” 이렇게 헬스장이 많아지고, 이렇게 근력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전까진 ‘근손실’이 일상의 언어로 쓰일 거라곤 간고등어 코치도 몰랐을 거다. 


낯선 말들이 우리의 일상 안으로 훅 치고 들어왔을 때 조금은 경계하게 된다. 그런 말에는 유통기한이 생기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 같은 말이 그랬다. 관심을 가지고 보던 지역 문학 공모전들의 이름이 갑자기 ‘스토리텔링 공모전’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모든 미디어에서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시대라며 스토리텔링 전문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스토리를 텔링하는게 스토리텔링이다. 처음부터 있던 말도 아니다. 누가 먼저 쓰고 만들었는지 출처도 불분명하고, 이 말을 우리나라에서 퍼뜨린 문익점이 누군지도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없던 말들이 관공서에서 쓰이기 시작하면 이제 그 말의 수명은 다 한 거다. 스토리텔링의 변형이 지금의 ‘콘텐츠’인데 수많은 관공서에서 1인 크리에이터 활성화와 콘텐츠 다양화를 위한 사업들을 진행 중이니 시대를 앞서 가고 싶은 분들은 얼른 여길 피해 도망가시기 바란다. (세금으로 1인 크리에이터를 왜 양성해야 하는지 부터가 의문이다.) 


이런 흐름을 방송이 쫓지 않을 리 없다. 시대가 만든 파도를 타고 놀려면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야 한다. 잘은 몰라도 상암동에 도는 예능 기획안 중에 ‘비혼’이란 단어가 들어간 프로그램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시기상조라 생각될 수도 있다. TV 시청자 층의 연령대가 워낙 높다 보니 ‘비혼’은 시청률이 잘 나올 아이템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튜브 아이템으로는 딱이다. 난데없이 없던 말이 등장한 건 아니다. 비혼주의 이전에 독신주의를 선언한 사람들은 늘 주변에 있어왔다. 독신주의가 ‘근손실’이나 ‘플렉스’처럼 비혼주의라는 요즘 옷으로 갈아입었을 뿐이지. 스타일이 달라 보여서 그런가? 비혼주의자들을 대하는 시선도 조금은 달라졌다고 느낀다. 똑같이 허리띠를 길게 뺀 옷을 입고 있어도 독신주의는 철 지난 힙합 패션 같고, 비혼주의는 뉴노멀이다. 독신주의는 연애도 결혼도 안 하겠다는 다짐처럼 보였다면, 비혼주의는 연애야 할 수 있지만 결혼은 안 하겠다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구 독신 현 비혼 주의자가 된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졌을까? 알 수 없다. 볶지도 않았을 뿐더러 볶은 게 어떻게 탕이 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던 닭볶음탕이 다시 닭도리탕이라는 이름을 되찾아 가고 있다. 지금 내 상태를 지칭하는 말도 시절에 따라 이렇게 또는 저렇게 바뀌는 것뿐이다. 어떻게 불려도 나는 나인 것처럼 내 상태가 달라진다고 해도 나는 그대로 나다. 그래. 너무 비장하기보다는 그냥 상태 메시지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 독신이든 비혼이든 그럴 때가 있고, 그러고 싶을 때가 있고, 아니면 마는 것뿐. 과거에 비혼주의자였지만 결혼이 하고 싶어지거나 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과거의 나를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 배신감이 싫어서 애쓰지는 않았으면. 그러니까 비혼이란 말이 너무 무거운 의미를 지니게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결혼을 안했단 말에 “아니 왜요?”라고 되묻는 사람이 이상해지는 게 맞는다면 결혼을 하겠단 말에 “그걸 왜 해?”라고 되묻는 것도 이상해야 균형이 맞는다. 


(20대 때는 나도 계획 없다 였지만....)


** 에세이 <저 결혼을 어떻게 말리지?>의 일부 에피소드를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91583991&orderClick=LEa&Kc=


매거진의 이전글 살아만 와줘도 고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