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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관우 Jun 15. 2022

살아만 와줘도 고맙다

방송 작가는 어디까지 잡학다식해져야 할까. 최근에는 크리스천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를 맡게 되면서 서른이 넘어 처음으로 성경을 읽게 됐다. (하늘에서 보고 계실지 모르니까 솔직하게 다시) 서른이 넘어 처음으로 성경을…. 위키백과로, 블로그로 읽게 됐다. 철저한 무신론자로 살아왔지만 일은 일이니까. 우리 집은 기독교에 반감이 심했다. 교회의 탈을 쓴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던가 가정에서의 역할을 버린 채 독실하기만 한 친지들이 있는 집들이 대게 그렇듯이. 


다행이 방송은 함께 하는 분들의 배려로 성경 속 인물이나 교회에서 쓰는 용어 들을 비신자인 내 입장에서 질문하고, 답을 듣는 구성으로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이번 회차에서 준비한 주제는 탕자. 탕자는 누구고 왜 돌아왔는지 상식 수준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야기를 풀고 나자 그 여운은 꽤 깊고 길었다. 


상속해 줄 재산까지 미리 당겨 받아 집을 뛰쳐나가 놓고는 그 돈을 다 탕진하고 돌아온 자식 놈을 받아준다고? 나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이 있었는데, 출연진들은 달랐다. 그건 크리스천이라서가 아니라 부모라서였다. 부모애. 부모라면 자식이 부모를 버렸든, 재산을 탕진했든 그저 살아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울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그 부모애 코드를 드라마나 영화에서 쓰는 건 반칙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다. 손이 콕 닿기만 해도 저릿저릿해지는 약점을 건드려서 울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래서 영화 「신과 함께」를 천만 관객이 본 건 좀 반칙이라고 생각했다. 엉엉 울면서. 자식의 입장만 경험해 본 나도 이 정도인데 자식에서 부모로 진화한 이들은 이 영화를 보고 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며 사연 없는 가정 없는 K-관객들에게 십중팔구 정도는 먹히는 이 코드는 딱히 다른 수가 없을 때, 감독의 전체 커리어 중에 예의상 딱 한 번 정도만 꺼내 쓸 수 있는 치트키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늘 반칙 중이라고 생각한다. 성동일이 아빠로 나오면 반칙이다. 


탕자 같은 자식도 이해해 줄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 사랑이란 단어의 쓰임이 연인에서 가족의 개념으로 확장되는 순간. 직접 경험하지 않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로 훔쳐봐서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나는 아직 기대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더 크다. 지금은 무섭고 주저하게 되는 이유가 지금이어서일수도 있겠지만. 

(* 오혁과 정형돈의 멋진헛간 은.... 진짜 멋진 노래였지!)


 결혼 전, 상대와 가장 큰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 바로 자녀계획일텐데 ‘결혼을 하면 바뀌겠지’ 하고 절대 짐작해서는 안되는 영역이 바로 여긴 것 같다. 부부에서 부모로, 또 한 번의 진화를 하기 보다 여기서 멈추겠다는 선택 역시 존중해 줘야 함을 1980~1990년대생들인 우리는 이미 만화로 배웠다. 늘 귀엽기만 한 피카츄로 살 것인가 인생에 한 번인데 라이츄라는 진화를 경험해 볼 것인가. 포켓몬스터에서 지우의 피카츄는 라이츄로 진화하지 않았다. 성장하되 진화하고 싶지 않다는 ‘내 친구’ 피카츄의 선택을 지우가 존중해 줬기 때문에. 배우자, 연인의 어떤 선택도 존중해 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피카?

(피까?)


** 에세이 <저 결혼을 어떻게 말리지?>의 일부 에피소드를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91583991&orderClick=LEa&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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