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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Jun 03. 2020

33. 앞으로의 돈벌이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 새라 케슬러


“세상에 직장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 백이면 백, 월급쟁이라면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이다. 마침내 직장 없이도 먹고사는 시대가 오는 걸까? 나와 같은 희망으로 책을 열었다가 실망으로 덮었다는 사람들의 후기가 적지 않다. 사실을 말하자면 월급쟁이 독자들이여, 우리는 출판사에 제대로 낚인 것이다. 표지를 잘 보면 책의 원제는 <Gigged>, 그러니까 이 책은 긱 이코노미 Gig economy에 대한 이야기다.


| ABC의 종말 - 평생직장은 끝났다
 

<Gigged - The Gig Economy, the end of the job and the future of work>


더 정확한 책의 원제목은 이렇다.
Job에는 End가 붙고, Work에는 Future가 붙었다.

Job과 Work는 어떻게 다를까?


Job : work for which you receive regular payment. (옥스퍼드)

Job : the regular paid work that you do for an employer(롱맨)


Work : to do something that involves physical or mental effort, especially as part of a job (옥)

Work : to do a job that you are paid for (롱)


발견했는가? 두 단어의 차이는 regular의 유무다. regular인 job은 끝났다. 그렇지 않은 work의 미래는 어떨까. 그러니까 이 책은 직장을 안 가도 먹고사는 트로피칼 휴양 판타지가 아니다. 오히려 근시일 내 다가올 노동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해야 하지만 그것이 정기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학자 손턴 메이는 지금까지의 노동 시스템을 출근 기반 보상 시스템 ABC, attendance-based compensation으로 정의하고 그 시절은 끝났다고 말한다. 출근을 하는 것이 곧 일을 했다는 증명이 되던 사회. 그리하여 실제 업무와 관련 없이 밤늦게까지 책상을 지키는 자의 공로가 인정되던 사회. 그런 사회는 ‘직장’의 미래와 함께 끝났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안정적인 회사’에 들어가서 ‘최대한 오래’ 버티면 어찌어찌 중산층의 최소 조건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4차 산업 혁명은 일거리와 일하는 방식 모두를 바꿨다. 코로나는 그 모든 변화를 더욱 가속화했다.


코로나로 인해 인간들은 한 공간에 모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배웠다. 또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반강제적으로 재택근무를 실험해 나름의 피드백을 얻었다. 4차 산업 혁명으로 이미 균열이 가던 전통적 ‘직장’의 형태는 코로나 이후로 더 빠르게 재편될 것이다. 어제 좋았던 직장이 내일도 좋은 직장이라는 보장은 없다. 대기업은 앞으로의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기에 몸집이 너무 크고, 비대면 사회에서 믿을 건 지위가 아니라 실력이다. 앞으로 우리는 그저 성실히 직장을 다니는 방식으로 중산층이 될 수 없다.


 

| 긱 이코노미 - 90년대생에게 딱 맞는 일자리?



“단군 이래 돈 벌기 가장 쉽다”


월수입 7천만 원을 찍는 크리에이터 신사임당 씨가 처음 한 뒤 이곳저곳에서 즐겨 인용되는 말이다. 그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오늘날 세상은 플랫폼으로 연결되어 있다. 각종 플랫폼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상품화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콘텐츠, 사업 감각, 남는 방, 남는 시간을 모두 스마트폰 하나로 사고팔 수 있다. 소셜 채널부터, 음식 배달, 승차 공유, 가사노동, 크라우드 워크까지, 누구나 플랫폼을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카카오 드라이버가 되고,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된다. 숨고나 크몽을 통해 부업거리를 찾기도 한다. 그렇게, N포 세대로 대학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이제 N 잡러 가 되었다. 만약 이런 일들을 이미 하고 있거나, 할 생각이라면 당신도 긱 이코노미의 일부다.


Gig은 원래 재즈 공연의 임시 멤버를 부르는 말이었는데, 오늘날 노동시장에서 Gig이라고 하는 것도 프리랜서 노동자 혹은 플랫폼 노동자를 뜻한다. 이미 미국과 유럽연합의 경제활동 인구 중 20~30%가 프리랜서고, 미국 노동자 중에 풀타임 직장이 없는 사람은 무려 40%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작년 기준 플랫폼 노동자가 약 50만 명 정도로 추산되었다. 프리랜서 Freelancer에는 무려 4400만 명의 프리랜서가 등록되어 있다고 하니, 긱 이코노미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핫한 일하기 방식임에 틀림없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쉰다’.

이 문장은 긱 이코노미의 가장 긍정적이고 희망찬 부분을 드러낸다. '틀’한 세상을 남다르게 사는 90년대 생이 자신의 스케줄에 딱 맞춰 자신만의 기반을 쌓아가는 주머니 속 ATM. 나인 투 식스를 벗어나, 온갖 꼰대 질서가 난무하는 정규직 고용의 한계를 벗어나, 내가 원하는 때, 내 실력을 증명해 내게 필요한 만큼만 일하는 멋진 신세계. 출퇴근이 없는 것은 덤. 정말 긱 이코노미는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밥벌이의 미래일까. 그렇다면 그 미래는 어떨까.

  

| 어차피 로봇으로 대체될 사람들


책에는 한국 사례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에서 다룬 긱 이코노미의 양상을 우리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타다는 어떨까. 타다는 이동 방법을 혁신한 ‘플랫폼’이었다. 타다는 안정적인 차량 공급을 위해 1만 2천 명의 기사들을 확보해,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차량을 배차했다. 자, 그리고 우리는 타다가 어떻게 되었는지 안다. 올초 소위 타다 금지법이 통과되며 타다는 운영을 종료했다. 그럼, 타다의 수많은 드라이버들은 어떻게 됐을까.


타다는 런칭 초기 ‘타다 기사들은 월급을 받기 때문에 승차거부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입소문을 탔다. 기존의 회사 택시는  기사가 요금을 받으면 일단 사납금을 채운 뒤, 그 남은 돈을 자신의 몫으로 가져갔다. 사납금 제도에서는 돈이 되는 목적지를 골라 받아야 기사의 몫이 늘어난다. 타다는 사납금 제도 대신 시급제와 월급제를 섞어 시행해, 기사들이 승차 거부할 유인을 없앴다. 그리고 이 내용을 자신들만의 혁신으로 커뮤니케이션했다. 그렇다면 타다의 기사들은 타다에 고용된 월급쟁이일까? 아니면 프리랜서일까?


"많은 노동자에게 긱 경제는 고용주가 최저임금을 안 주고
유급휴가와 휴식시간 같은 기본적인 것을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기만 경제다.”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개인 사업자로 계약했다 하더라도, 일하는 방식이 근로기준법의 노동자와 같은 구조라면, 노무를 제공받은 이가 사용자 책임을 져야 한다. 타다에 따르면, 타다는 새로운 택시 서비스, 즉 여객 운송 사업자가 아니다. 이용자들에게 ‘기사가 딸린 렌터카’를 제공해, 각자의 목적지까지 렌터카를 빌리는 ‘자동차 대여사업’이다. 따라서 타다는 사업 신고 내용에 따라 기사를 고용할 수는 없고, ‘알선’만 해줄 수 있다. 타다의 기사들은 전형적인 플랫폼 노동자들처럼, 개인 사업자, 즉 프리랜서 신분으로 타다와 계약을 맺었다.


타다의 기사들은 개인 사업자, 사장답게 타다와 대등한 위치에서 일했을까? 타다는 기사들의 출퇴근과 휴식시간을 통제했다. 운전할 차량부터, 미 운행 시 대기 장소나 최종 목적지까지도 모두 정해주었다. 또한 운행 후 피드백에 따라 추가 교육 혹은 계약 해지 등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임금 부분을 보자면, 앞서 말했듯 타다의 기사들은 운행 건 수에 비례하여 수수료를 받지 않고, 시간 단위로 보수를 받았다. 과연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개인 사업자의 모습일까?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AB5법에 따르면, 기업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인과 ‘개인 사업자’로 계약할 수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a) 회사의 통제·지시로부터 자유롭고,
 b) 회사의 통상적인 사업 이외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c) 스스로 독립적인 고객층을 갖는 등 해당 사업에서 독립적인 사업을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분류되면 기업은 최저임금, 산재보상, 실업보험 등 노무 제공자에 대한 사용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리고 타다의 기사들은 a, b, c 어느 조건도 충족하지 못하였지만 4대 보험은 물론 퇴직금, 휴일 및 심야 수당 등 그 어떤 것도 보장받지 못한 채 계약이 해지됐다.


전 세계 각지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이 근로자 지위 회복을 위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우버가 대표적이다. 우버는 런칭 이후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과 ‘(노동법상 지위에 대한) 오분류 소송’을 상당수 겪어 왔고, 다양한 나라에서 패소했다. 그리고 2016년, 우버의 한 고위직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후에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그는 이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이야 뭐, 어차피 다 로봇으로 대체될 겁니다.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 중


플랫폼들은 경영 상의 효율과 이익을 위해 플랫폼 노동자와 직접 고용 관계를 맺는 것을 꺼린다. 사실 플랫폼들이 그렇듯 저렴한 가격에, 24시간 내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식으로 인건비를 줄였기 때문이다. 우버의 공동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우버가 비싸게 느껴진다면, 운전하는 사람에 대한 요금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없다면 우버를 타고 얼마나 멀리 가든, 직접 차를 모는 것보다 훨씬 더 저렴하겠죠."


사실, 플랫폼이라는 이름을 떼어놓고 보면 긱 경제는 인력 회사가 일용직 노동자를 중개하는 방식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문제는 플랫폼 오너들이 일용직 서비스를 앱에 옮겼다는 이유만으로 그 서비스를 굉장한 혁명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노동 조건에 무심한 고용자가 아니라 혁신적인 기술을 구축하는 건설자로 착각”한다. 거칠게 말하면 플랫폼 오너들에게 플랫폼 노동자들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기 전까지의 임시방편이다. 자율주행 자동차, 배달 드론, 크리에이티브 AI 등이 나오면 소송을 거는 ‘인간’은 고용할 필요도 없다.


| 누가 중산층이 되는가


대한민국은 IT 강국이라고 자부하지만 막상 플랫폼 노동자들에 관한 법률 논의는 걸음마 수준이다. 작년 말에야 요기요의 라이더들이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았고, 타다의 기사들은 아직도 그 법적 지위를 놓고 투쟁 중이다. 오직 풀타임 노동자들만 4대 보험의 혜택을 받는다. 취업 패키지도 구직자가 풀타임 일자리를 구하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판데믹 와중에 확인했듯이 풀타임 일자리는 우리가 최종적으로 가야 할 목적지가 아니다. 앞으로의 노동자들이 지원받아야 할 것은 풀타임 노동과 독립 노동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유연함과 그럴 수 있는 기술이다. 노동자가 일터를 옮길 때마다 사회 보험 프로그램이 함께 움직이는 이동형 복지와 같은 완전히 새로운 판이 필요하다. 처음 증기 기관이 나오고,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가 그 권리를 보호받기까지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배웠다. 이번에는 그렇게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나라가 건강하고 두터운 중산층을 만드는데 힘을 쏟는다. 안정적 자산과 예상 소득이 확보되면,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꾸려갈 수 있다. 최소한의 안정성이 뒷받침된 이후라야 다소 위험한 투자도 무릅쓸 수 있다. 그래서 중산층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중산층이 튼튼해야 사회가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중산층은 누가 만들까. 노동의 축이 완전히 뒤바뀌고 있는 이런 현실에서.


 "안정적 중산층은 성장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다. 기실 그것이 없으면 우리 경제는 잠재력을 최대로 발현할 수 없다. 중산층에서 이탈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사는 중산층은 진정한 중산층이 아니다.”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


지금까지는 전문직이나 대기업 직원들이 우리 사회의 중산층을 이루었다. 앞으로의 중산층은 직장 밖에서 나와야 한다. 플랫폼 노동으로도 중산층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플랫폼 노동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플랫폼 노동으로 인해 생기는 어떤 위험에도 풀타임 노동자만큼의 안정성을 가지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페레스 전 노동부 장관은 청소 플랫폼 업체를 찾아, 그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누가 여러분에게 '어디서 일하세요? 무슨 일 하세요? 무엇을 만드세요?라고 묻는다면 미국의 중산층을 만들고 있다고, 그게 바로 여러분이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십시오."


그렇다. 플랫폼 노동자가 바로 중산층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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