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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May 23. 2018

레인을 벗어나도 된다는 거짓말

<4등>

딱 1등 차이라면, 4등이 아쉬울까. 2등이 아쉬울까. 모두 경계에 있는 숫자. 한 끗 차이로 세상이 바뀔 수도 있는 둘. 나는 1등 할 수도 있었던 2등보다는 3등에 가까웠던 4등이 더 아쉽다. 시상대는 언제나 세 칸으로 끝이니까. 박수도, 메달도 3등까지니까. 운이 좋으면, 2등은 누군가 기억할 수도 있지만 4등은 장외. 다시 만져볼 메달도 없이, 기사 한 줄 없이 무대 밖에서 저 빛나는 1,2,3등에게 박수를 쳐주는 수밖에 없다.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치 않아. 좋아하고 즐기는 게 중요해. 누구나 말은 잘하지만 그건 결국 잘한 사람들의 이야기. 사람들이 그런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이미 그들이 충분히 자신의 일을 잘 해냈기 때문 아닐까. 내 일을 충분히 좋아하는 나는, 그만큼 잘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종종 나는 나의 등수가 신경 쓰인다.  


이런 내가 감독이라면 시작할 수 있었을까. 수영을 좋아만 해서 4등만 하는 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


4등만 하는 준호. 수영 시작한 지 2년. 재능은 분명 있는데 어찌 된 게 4등만 한다. 1등을 하는 형들이 부럽지 않은 건 아니다. 그들은 물론 멋지다. 그들의 능력엔 감탄하고 그들의 명예는 동경한다. 언젠가 1등을 하면 좋겠지. 하지만 나는 이 정도면 괜찮아. 아니 어쩌면 이 정도가 끝 아닐까. 그래서 준호의 엄마는 속이 타들어간다.  


조석으로 아이를 따라다니는 게 그녀의 하루. 엄마는 자신을 위해 빌 게 없다. 그저 아들이 1등을 하는 게 소원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의 1등을 위해 용한 코치를 찾아낸다.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도 선수단 무단이탈을 일삼다가 결국은 수영을 그만둬버린 광수. 망나니의 사전적 정의 같은 광수는 훈련 때마다 준호를 때린다. 독해야 1등 하는데, 너는 수영을 너무 예쁘게 하는구나.


준호는 멍이 들어 얼룩덜룩해진 엉덩이로, 1등이나 다름없는 2등을 한다. 처음이다. 누구나 박수칠만한 결과는. 그러나 그 축하파티 때 아버지에게 그동안 코치에게 맞아왔다는 사실을 들킨다. 맞아서까지 1등 할 필요 없다며 성을 내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쟤,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두려워.”
- <4등> 중

이런저런 소동 끝에 준호는 광수 코치와 헤어진다. 이별의 시간, 광수는 말한다.

“너 혼자서 해봐라. 혼자 하면 1등 할 거다.”
- <4등> 중

챙겨주는 엄마도 없이, 몇 대 맞을래 하는 코치도 없이 소년은 새벽 운동을 나가고 레인 뺑뺑이를 돈다. 그렇게 어느덧 마지막 장면. 그는 가장 먼저 결승선을 터치한다.  


이 영화의 가장 특별한 점은 바로 여기서 만들어진다. 준호가 1등을 하기 직전까지 1분 남짓한 시퀀스. 레인을 따라 열심히 달리던 준호가 마지막 턴을 하더니 레인을 가로지르며 유영을 시작한다. 그 공간엔 그 어떤 중력도 작용하지 않는다. 물에 몸을 맡긴 준호와 헤엄치고 싶단 느낌만 있다. 배운 대로가 아니라 몸 가는 대로. 그렇게 준호는 가장 먼저 1등선에 터치한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준호의 POV. 1등을 하고 난 물 밖의 세상이 그의 시점으로 보인다. 거친 호흡. 장내에 퍼지는 자신의 기록. 동생들의 부러운 시선. 화장실로 가는 길, 아직 초조한 시합 전의 친구들. 이제 화장실. 코치님이 즐겨 때리던 빗자루가 보인다. 그리고 거울 속 내가 보인다. 1등을 한 나. 준호의 1등은 오로지 준호만이 목격한다. 박수받는 장면도, 엄마의 환호도 없다. 그래서, 특별하다.



“형, 1등 하면 기분이 어때요?”

- <4등> 중


마침내 1등을 하고 준호는 기분이 어땠을까. 거울 속 그는 후련해 보인다. 그놈의 1등. 모두가 안절부절 못하며 쫓는 그것. 마침내 그것을 얻고 난 후의 세상은 그 전과 얼마나 다를까. 방금 준호가 이뤄낸 1등은 엄마의 것도, 코치의 것도 아니다. 오직 준호 혼자만의 것이다. 어쩌면 그의 상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1등은 그저 '1등이 아니라' 비유에 가깝다. 준호가 마침내 그가 원하던 순간 속에 있다는.


레인을 벗어났던 소년이 마침내 원하는 순간을 얻는다. 아, 정말로 우아한 거짓말.  


왜 우리는 우리의 등수가 두려울까. 왜, 맞는 것보다 4등이 더 무섭게 됐을까.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게 그 끝에 시상대가 있어서는 아닐 텐데. 인생은 시합이 아니니까 무엇이 메달이라고도 말할 수 없을 텐데. 좋아하는 일을 충분히 즐긴다면 언제라도 1등을 할 수 있다. 등수를 잊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1등을 하게 된다. 이런 말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위로하는 척하면서 우리의 등수를 매긴다. 1등이라는 건 그야말로 ‘하나’다. 여럿이 될 수 없다. 1등 프레임 안에 있는 한 대다수의 우리는 질 수밖에 없다. 레인을 벗어난 현실의 준호들은 결국 엄마와 코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아이들에게 질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준호는 이 엔딩에서 영원히 멈춰있으면 좋겠다. 내가 이 거짓말을 믿을 수 있게. 레인을 벗어났던 기억이 빛나는 한 순간을 만든다고. 레인을 벗어난 끝에 원하는 순간을 얻게 된다고.


어쩌면 우리에겐 거짓말이 필요하다. 좀처럼 일어날 것 같지 않아도 마음속에 깃발처럼 세워둘 한 문장이. 그래서 좋아하면 끝내 잘하게 된다는 말을 우리는 자꾸만 믿는다. 아무리 적은 확률이라도 한번 더 희망을 걸어본다. 좋아하는 한, 포기하지 않는 한 무언가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우리는 더 우아한 거짓말을 믿어야 한다. 한두 푼 월급으로 한 달 두 달 겨우 사는 우리들이니까 더더욱. 우리가 지금 헤엄치는 곳이 그저 승부의 세계만은 아닐 거라고. 때로 레인을 벗어나고 싶은 게 잘못은 아니라고. 중요한 건 1등이 아니라, 마침내 ‘원하는 순간’ 속에 있는 거라고.  


내 안엔 4등만 하는 초등학생이 분명히 있다. 그 아이에게 뭐라고 해줄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내 안엔 이런 순간도 있다는 것. 물에 한껏 몸을 맡기고, 가장 예쁜 자세로, 물살이 갈라질 때의 미세하고도 부드러운 마찰을 느끼며 천천히 헤엄치는 순간이. 그러니, 다시한번 외워본다. 특출난 데 없는 내 안의 초등학생에게 다시한번 이야기한다.


1등을 바라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용기 내는 인생이야.

살아온 대로 또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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