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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Oct 19. 2018

특별해지는 것

<스타 이즈 본>


셀 수 없이 먼 과거,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별을 맹렬한 속도로 날아와 부딪친 어떤 별이 없었다면 우리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몸속엔 여전히 별의 구성물질들이 돌아다닌다. 그러니 언제라도 반짝일 수 있다. 별의 자손들이니까.

이런 낯간지러운 말로 슬쩍 퉁치기엔 매일매일은 좀 더 본격적으로 좆같다. 예를 들어 코가 못생긴 여자, 얼굴에 코만 보인다. 그 여자의 감미로운 노래는 크고 구부러진 코를 가리기에 역부족인 것 같다. 이 여자, 가수가 될 수 있을까? 사랑받을 수 있을까? 거울은 항상 우리의 못난 점을 비추는데, 간혹 눈이 예뻐도 그만큼 큰 콧구멍이 먼저 보인다. 아무리 작은 거울도 치명적 결점만큼은 정확하게 보여준다. 누구나 한 줌씩 재능은 있기 마련이지만 이 역시 단점의 대단함에 비하면 맥을 못 출 만큼 작다. 그럼에도 희한하지. 코? 코가 뭐라고? 코는 보이지도 않는 누군가가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별 한 조각을 꺼낸다. 봐, 너 이렇게 빛나잖아. 그때부터 세상은 어제와는 다른 것이 된다.

<스타 이즈 본>, 이 아래로는 죄다 스포입니다


계절의 인상, 즐겨 듣는 노래, 감정을 다루는 방식, 삶을 대하는 태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단 한 사람과의 만남 만으로도 인생은 발칵 뒤집어질 수 있다. 이 영화는 단 한 번의 만남과 그 결과. 성장하는 존재와 쇠락하는 존재의 마주침. 누구에게 사랑받을 건지, 어떤 점을 사랑받고 싶은지 묻는 이야기.


정점은 진작에 찍었고, 슬슬 추락 준비 중인 락스타. 청력은 수명을 다해가고 있고, 언제 적 락스타냐 싶게 단발에 기타, 마약에 알콜. 어느 날 공연이 끝나고 술이 부족해 들른 드래그바, 그러니까 여장남자 퍼포먼스 바에서 한 여자를 마주친다. 여자의 등장은 마치 별의 탄생 같다. 짙게 분장한 드랙퀸들 사이에서 그 여자만 폭발적으로 빛난다. 남자의 눈에 여자는 영상으로 흐르지 않는다. 한 컷으로 각인된다. 여자는 앞서 말한, 가수가 되기엔 코가 못생긴 그녀. 하지만 락스타는 안다. 이 여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 그게 얼마나 빛나는지, 얼마나 매력적인지. 한동안 뻔한 전개. 락스타는 자신의 공연에서 여자의 노래를 부르고, 그녀를 무대에 데뷔시킨다. 함께하는 투어. 깊어지는 사랑. 점점 진짜 스타가 되는 여자. 그리고 스카웃. 스크린 공식 데뷔. 이제 여자는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팝스타답게 염색을 하고 화장을 하고, 락스타 입장에선 굉장히 쪽팔리는 노래를 부른다. 심지어 댄스도 춘다. 락스타는 그녀의 무대를 차마 끝까지 보지 못한다.


“내가 너를 망쳤어.”


당신을 무대에 올리지 않았다면, 당신은 계속 자신만의 노래를 불렀을까. 코 따위 뭐가 어때, 당신 안의 것에 더욱 집중했을까. 자책하며 락스타는 알콜 중독이 심해진다. 망가지는 락스타에 비해 여자에게는 대중의 사랑이 쏟아진다. 마침내 그래미 신인상 확정! 그 시상식에서 락스타는 여자가 가장 주목받는 순간, 모든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오줌을 지린다. 


“앨리는 지금 당신이 남편이라는 이유로 조롱받고 있어요.”


그러나 여자의 사랑은 여전하다. 이제 무대에 서서 그 밑의 연인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여자가 된다. 공연장에 나타나지 않는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그 순간, 그러나 남자는 목을 맨다. 그리고 힘든 시간들. 남편의 추모 무대, 여자는 당당히 남편의 성으로 자신을 소개하며, 그가 남긴 마지막 사랑 노래를 부른다. 더 이상 사랑은 없을 거라고. 당신 외엔 그 누구도.


이 영화의 끝은 해피엔딩일까. 성장 영화라면 맞는 것도 같다. 가수를 꿈꾸던 여자는 성공했고, 이제 그녀의 이야기는 특별한 것이 되었다. 그녀는 앞으로도 노래를 부를 것이다. 오래된 스타는 죽으면서 새로운 스타를 낳았다. 커다란 별들이 그러하듯이. 한편 로맨스 영화로 본다면 어떨까. 로맨스 영화의 이상적 결말이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면 이 영화의 결말은 새드엔딩이다. 그녀는 그를 잃었다. 그와 함께 했던 초반의 시간은 그녀가 가장 오롯한 그녀이던 시절이다. 대중의 입맛에 자신을 맞추기 전의 시절. 지금 너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도, 네가 진짜로 하고 싶은 너만의 이야기가 아닌 걸 알면 외면할 거야. 남자의 이런 걱정을 들을 필요 없었던 때. 그 시절은 가버렸다. 이제 그녀는 더 많은 사랑을 받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녀의 무엇을 사랑할지는 모른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다시, 성장 영화로서도 꽤 불안한 결말이다. (물론, 영화 결말의 가장 큰 교훈은 다음과 같다: 아무리 치명적 매력의 소유자라도 알콜 중독자는 만나지 말 것. 그들은 순간적 충동으로 배우자를 가장 큰 수렁에 빠뜨린다.)


우리 인생엔 가끔씩 one of them의 우리를 the one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은 헤어지든 죽든 간에 우리를 다시 원 오브 뎀으로 만든다. 영화에서 앨리는 잭슨을 만나 원 오브 뎀에서 원이 되었다. 사랑의 일로도, 스타의 일로도. 잭슨 없이 앨리는 다시 원 오브 뎀이 될까? 그건 알 수 없다.  


영화의 끝에서 나는 뜬금없이 나의 연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누구도 영생을 약속받지 못한 사이. 더 늦게 죽으면 남는 것을, 남는 것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벌일 텐데, 그것을 견뎌야 한다. 그러니 되도록 먼저 죽는 쪽은 나였으면 좋겠다. 물론 바란다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일은 드물므로 꾸준히 연습한다. 이 남자의 얼굴이 가장 사랑스러운 밤이야말로. 이 얼굴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이 사람이 없을 어느 밤을 기억해본다. 나는 하나도 특별하지 않았고, 밤은 별 하나 없이 깜깜할 어느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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