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1.
우린 추억 속에 있는 거야.
이제 아이들의 일기를 읽을 날도
8일밖에 남지 않았다.
졸업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뿌옆게 낀 미세먼지 만큼이나 몸도 찌뿌둥했던 아침이이었다.
9시 땡하면 했다고 수업에 바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건 학생들만큼이나 나도 정말이지 싫어한다.
1교시는 좀 느긋하게
이런저런 주제로 말을 한다.
주제는 그때 그때 바뀌지만
전 날 미리 생각할 때도 있고,
그 때 생각나는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아침부터 누가 '씨o' 이라며 욕을 하면
욕을 왜 하면 안 되는지 말해준다.)
그것도 아니면 그저 얼굴을 보기도 한다.
날 바라보는 얼굴들은 안녕한지
그 표정에는 어제와 다름없는
'여전함'이 깃들었는지 본다.
어쨋든 그냥 좀 보고 싶다.
얼마전 조회시간에는
갑자기 우리가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우리가 볼 일도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얘들아!'
하고 말했는데, 아이들이 일제히
'와. 졸업이야!'
하며 굉장히 들뜬 표정을 짓길래
혼자만의 감상을 바로 거둬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하고 싶은 말은 했다.
(경력이 늘수록 학생들의 반응과 무관하게
자기의 할말을 하는 뚝심 비스무리하는게 생긴다)
지금 그냥 옆에 있는 짝과 친구들이
다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될테니.
나도 상대방의 6학년 기억에 영원히 남을테니
꼭 잘해주라고.
"너희는 지금 '추억' 속에 있는 거야."
사실은...
내 앞에 있는 너희들도 내 인생이 일부분이 되어있는 것처럼.
이라는 말은 하고 싶었지만,
너무 아침부터 감상적이 되기는 싫어서
딱 거기까지만 했다.
오늘의 일기 주제,
'내 짝은....'
그리고 그날 내친김에
일기 주제를 '내 짝은....' 으로 내주었다.
1학기에 '내 짝을 소개합니다' 라는 비슷한 소재로는 해보았는데,
그렇게 주제를 주니 무슨 연예인 프로필처럼 딱딱하게 써 놓은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좀 캐주얼(?)한 뉘앙스를 풍기려고
'내 짝은' 옆에 쩜쩜쩜을 찍어서 알림장에 써주었다.
기대하던대로 아이들은 짝에 대한
좀 허심탄회한(?) 일기를 써왔다.
좀 재미있었던 것은 요 쪼맨한 녀석들이
'초등학교 마지막 짝꿍' 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안 그런척 해도 나름 속으로 서로에게 의미부여를 하고 있었다.
자 그럼,
혼자 보기 아까운 일기 시리즈 공개.
이번 일기 시리즈에 제목을 붙이자면
동상이몽(?) 이라고 부르고 싶다.
1. 민정-성민 짝꿍.
성민이는 자기 짝꿍에 대해 이렇게 썼다.
(참고로 마지막 짝은 본인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자리에 앉도록 했었다.
단, 쌍방이 동의하는 전제 하에.)
아래와 같이 성민이는 민정이를 매우 좋아한다.
가장 마음에 든다는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민정이의 속마음은?
미리 이야기 하자면 민정이도 성민이가 괜찮은 짝이라 생각하고는 있다.
하지만 약간 결이 다른 느낌.
민정이는 성민이를 귀엽긴 하지만
살짝 귀찮아하고 있다.
2. 려원-찬 짝꿍.
이 일기는 우리반 아이들에게도 읽어줬다.
단연 이번 주제의 하이라이트다.
우선 려원이로 말할 것 같으면,
살짝 걸크러시 느낌으로 굉장히시원시원한 여학생이다.
좋고 싫은게 굉장히 분명하고
공부도 잘하고 똑 부러져서 반 분위기를 리드한다.
그 옆에 찬이는 키는 려원이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지만
려원이가 머라하면 한마디도 머라 못하는 참 순한(?)성격의 소유자이다.
심지어 같이 노는 남자애들은 찬이가 정색하는 순간이 가장 귀엽다고 했다.
이제 그만 각설하고,
려원이 일기부터 공개.
려원이의 일기는
기승전결 '찬이는 착하다'이다.
가끔 찬이에게 수학 문제를 설명해주는 모습에 내심 참 기특하기도 했다.
오늘 일기 검사를 할 때,
실제로 려원이의 일기를 먼저 읽고
이제 소개할 찬이 일기를 나중에 읽었다.
예상과 달리, 찬이의 사정은 좀 달랐다.
찬이의 일기.
가끔 보면 찬이의 물통이나 우유에
'로이킴 개존잘'이라는 낙서가 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려원이의 소행이었다.
심지어 같은 모둠의 여학생도
괜히 려원이의 장난에 전염되서
찬이의 우유곽에 갖은 낙서를 써놓는 모양이다.
(그 모둠은 순딩이 찬이 빼고 다 여자임)
근데 어른이 내 눈에는
찬이도 그렇게 싫어하는 느낌은 아니다.
그래 찬아.
앞으로 살면서 여학생의 관심을
그렇게 많이 받아볼 기회도 그리 많지 않다?
지금은 말도 안 된다 하겠지만
어쩌면 지금의 기억을 나중에 곱씹으며 씨익 웃을지도 몰라.
전에도 말했듯이,
넌 지금 추억 속에 있으니까.
그냥 즐기렴.
+
월요일날 쌤이 '야' 하고 부르면
'호' 한번 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