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숑로제 Apr 20. 2019

단체티 수작업으로 만들기

2019.4.19.



그동안 학급 운영비로 보드게임, 만들기 키트 등등을 사곤 했다.

10만 원으로 아이들 모두가 쓸 수 있는 물건을 고르기는 쉽지 않다.

이번에도 역시 뭘 사야 하나 고민하던 차.

수학여행 때 입고 갈 단체티가 있으면 좋겠다는 

아주 야무진 생각을 해냈다.


그러나 티셔츠 25장을 10만 원으로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단체티 주문 최저가는 장당 6000원.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전사지를 이용해 티셔츠에 무늬를 붙이는 방법을 알았다.

그때 멈췄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팔에 지금 알이...)

어쩐지 오기 비슷한 게 생겨서 

인터넷 최저가 무지 티와 전사지를 뒤졌다.


무지 티 주문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 사이즈를 대충은 재야 돼서

줄자로 학생들과 친밀한 시간 잠깐.

(저기 oo아, 겨땀 냄새 어쩔..)


디자인을 어떻게 할까도 고민하다

결국 한 커플룩 제작 블로그를 찾았다.

그분은 기념일을 숫자로 크게 디자인하셨는데

나는 그 숫자 대신 학년 반 번호를 넣어보기로 결정!

(창의력이라고는 1도 없는 자신을 알기에 항상 모방을 추구합니다만)


학교 이름 써넣으면 안 입고 싶다는 

학생 고객님들의 요구에 따라서 

학교 이름을 뜻하는 의미를 영어로 새겨 넣었다.

(고객님의 만족을 위해 항상 노력하는 교사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도착하면 전사지에다 디자인 출력해야 하고

그걸 또 잘라서 잠깐 말려야 한다.

예열된 다리미로 티셔츠 위에 전사지 놓고 기름종이 놓는다.

그리고 심히 가로 세로 빠짐없이 

다리미에 체중을 실어서 문질 문질을 해줘야 한다.

(왜 이렇게 열심히 설명을 하는 걸까요)


 완성된 반티 공개




일단 5가지 종류로 준비한 디자인

사진은 한 장만 찍어놓았다.


숫자의 의미는

6학년 5반 3번이라는 뜻.







다리미로 열심히 문질문질 중

1번부터 5번까지는 너무 의욕적으로 세게 문질러서 모양 살짝 변형되어버림.

세탁 후에도 멀쩡한 티셔츠를 만들고 싶은 욕심에....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몬스터 눈알 디자인










티셔츠 널어놓고 식히는 중.









다 식은 뒤 모아놓았더니 제법 

괜찮은 상품 느낌이 물씬.









그리고 내 티셔츠 디자인.







숫자에는 학교 이름과 반 번호가 다 들어가 있다.

(이쯤 해서 깜짝 퀴즈. 대체 학교 이름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아래 로고는,

AWESOME을 넣은 것은 다른 어떤 글자보다 글자 모양이 이뻐서 썼다.

GOOD NICE 보다 글자 수와 알파벳 모양이 맘에 들었다.

CUTE SEXY도 글자 모양이 괜찮긴 했는데....

(혹시 입고 돌아다니다 누구한테 가격 당할까 봐 차마...)


CAPTAIN은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을 떠올리며 지어봤다.

우리 반 아이들이 태어나기 한 참 전 영화라 

이 뜻을 아는 녀석들은 하나도 없겠지만.


아이들을 이끌어가는' 선장'이라는 은유가 좋다.

나와 우리 반 학생들은

한 배에 타서 일정기간 동안 

1년의 인생을 항해한다.


'졸업'이라는 목적지를 향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같은 공간에 모여서   

하루에 6시간 동안 시간을 보내고,

나는 이들이 편안하게 항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객만족 선장 정도랄까.


그리고 생각보다 티셔츠가 

너무 잘 나와서 다른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했다.

이렇게 잘 될 줄 알았으면 같이 할 걸 그랬다고

(진짜 생각보다 괜찮다)

나도 처음 해보는 거라 확신이 없어서

(하다가 망하면 그 책임 옴팡 내가...)

그래서 확 땡기지를 못했다.

근데 우리 반만 반티 입고 다니자니 어쩐지

다른 반에게 누가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했다.


다들 괜찮다고 하시지만

그래도 좀 죄송스럽다.


내년에는 이거 다 같이 한번 해봐야지.

그땐 어떤 디자인으로 할까.






+


그래도 돈만 있으면 어디 업체에 맡기고 싶다.


아 팔다리 삭신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짝에 대한 '동상이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