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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Mar 20. 2023

긴긴밤

글/그림 루리, 문학동네

코로나 이후, 올해 1월부터 참가한 독서모임.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는데 3월 책은 어린이 문학상 대상에 빛나는 책인 루리 작가의 긴긴밤이다.

긴긴밤

 

2018년,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단 하나 남은 수컷이 위독해서 멸종위기에 처하게 됐다는 기사를 접한 루리 작가는 이 이야기를 쓸 결심을 했다고 한다. 결국 흰 바위 코뿔소 수컷은 그다음 해에 세상을 떠나고, 현재 세상에는 모녀 단 두 마리만 남아있다.


보통은 책을 읽을 때, 줄을 치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고르지만, 이 책은 그럴 수가 없었다. 고학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답게 길지 않은 분량이 이지만, 어떤 문장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기 보다는 떠오르는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많고 읽고 나서도 계속 가슴이 먹먹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린이 문학이 이런 거라면 앞으로 안 읽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동물원에 코끼리들과 같이 있던 노든에게 현명한 할머니가 세상 밖으로 나가서 호기심을 채우라고 조언할 때까지만 해도 호기심 많은 한 코뿔소가 안락한 동물원을 나와 갖은 고생을 하면서 한 뼘 더 성장하는, 일종의 성장 동화 이겠거니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갔다. 아내와 딸과 함께해서 행복해하던 노든의 모습에는 덩달아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무자비함으로 가족을 순식간에 잃은 노든, 나와 같은 인간들이 한 생명체의 가장 소중한 가족의 행복을 파괴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아무 잘못 없이 갑작스럽게 이런 일을 당한 노든이 얼마나 상처받았을지, 비록 동물이지만 담백하게 상황을 이야기하는 문장과 파스텔톤 그림이 노든의 입장이 되어 공감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었다.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확실히 그전보다 가족의 소중함과 애틋함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 특히 자식이 부모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너무나 잘 알기에 실종된 아이나 아픈 아이를 접할 때마다 누구보다 더 훨씬 마음이 아프다. 아내와 자식을 동시에 잃어버린 노든의 마음을 읽어보니 마음이 쓰이고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은 노든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계속 읽어나갔다.

 

가족을 잃고 파라다이스 동물원에 들어온 노든은 매일 밤 악몽을 꾸지만 친구 앙가부를 알게 되면서, 가족을 잃은 상실감과 공허한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회복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닥친 또 한 번의 아픔, 이 또한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일어난 났고, 이로 인해 노든은 결국 앙가부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정말 너무한 인간들. 노든에게는 분노와 절망감 밖에 남아있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노든은 앞으로 무슨 낙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삶을 살아갈 이유가 없어져 버린 노든. 노든의 마음속에는 인간에 대한 복수심만이 남아있게 된다. 슬픈 이야기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여기까지 읽었을 때는 더 이상 책을 읽고 싶지 않을 정도로 가슴이 먹먹했다.

 

동물원 화재로 인해 동물원을 탈출하는 노든에게 우연히 치쿠라는 펭귄이 나타난다. 치쿠에게는 아직 부화되지 않은 알이 하나 있었고, 치쿠는 알을 돌보고 품는 일에 온 신경을 다 쏟는 중이었다. 쿠 혼자서는 험난하고 위험한 동물원 밖 세상에서 알을 돌보는 건 거의 불가능할 거라는 걸 안 노든은 이런 치쿠를 두고 차마 혼자 떠날 수 없었다. 결국 노든은 치쿠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바다에 가기 위해, 먹이를 찾으며, 묵묵히 길을 가는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하기로 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위험한 세상에 노출되어 있고, 바다가 뭔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로 너무나도 두렵기만 한 이런 상황에서 나보다 약하고 돌봄이 필요한 친구를 보살피기 위해 나도 같이 그 위험을 함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제대로 먹지도, 알을 돌보기 위해 제대로 된 잠을 자지도 못하며 불안한 날들을 보내면서도 치쿠와 노든은 어느 순간부터 우리라고 부르며 함께 하고 있었고, 서로에게 마음을 의지하며 서로를 든든히 여기게 된다. 둘에게는 서로를 챙기고 의지하는 마음이 험난하고 무서운 세상을 꿋꿋이 버텨나가게 만드는 힘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예상했던 대로 점점 치쿠의 기력은 떨어지더니, 결국 치쿠는 알을 잘 돌봐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며 눈을 영원히 뜨지 못하게 된다. 또 한 번 노든에게 찾아온 절망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노든에게는 알이 있기에, 이 알을 무사히 돌보며 부화시켜야 한다는 목표가 있기에, 슬퍼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에 알에서 펭귄인 '내'가 태어났다. 노든은 펭귄에게 알 바깥의 세상에서는 살기보다 죽기가 더 쉽지만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며 살아남는 법을 가르친다.

  

‘나도 그랬어. 차라리 살아남은 게 내가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을 말이야.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어. 왜냐면 그들 덕분에 살아남은 거잖아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해.’


노든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어떻게 ‘나’라는 펭귄이 태어났는지 그 여정을 알기에 이렇게 말하는 노든의 말은 너무도 절박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노든 덕분에 펭귄은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고 그래서 살아남았다. 항상 그 옆에 노든이 있었고 둘은 함께했다. 이름을 지어달라는 '나'에게 노든이 말하는 대사는 참으로 아름답다.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


펭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얼마나 사랑받는지, 스스로를 행복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자존감과 용기를 주는 말이다. 노든처럼 내 옆의 사람을 소중하고 특별히 생각해 주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 사람에게 자존감과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어느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내 주위 사람, 가족이나 회사사람들에게 노든 같은 사람이었나를 생각해 보게 된다.


마지막 부분의 장면인 복수하지 말고 평생 같이 살자는 펭귄의 울부짖음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고 함께하며 행복했음에도, 결국은 각자 가야 할 길이 있고 함께 할 수 없다. 이별해야 할 순간이 온다. 그게 나중에는 서로에게 최선이고, 도움이 되는 길임을 알지만 그 이별해야 하는 순간만큼은 얼마나 힘들고 마음이 찢어질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 순간만큼은 서로 도움이 되는 이별이란 게 있는 건지 믿고 싶지 않다.


서로가 연결되어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은 자는 또 다른 자에게 도움을 주며 세상에 영향을 주는 관계,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건 다른 누군가가 꿋꿋이 견딘 긴긴밤이 있었음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나에게 정말 많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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