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땜하는여자ㅡ6화 외모 가꾸기에 대한 단상 1
첫 대학 1학년 때, 그때 가입했던 동아리는 과에 상관없는 연합동아리라서, 3월 한 달만큼은 여러 단과대의 학과 학생들이 모두 와서 동아리방을 기웃거렸다. 그중에는 고3 수험생 생활을 막 지나온 신입생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풀 메이크업에 멋지게 차려 입은 같은 학번 여학생들도 있었다. 주로, 대부분 여학생들로 구성된 학과 소속 학생들이 그랬던 기억이 난다. 여대를 간 고등학교 친구도 역시 그랬다. 상대적으로 남자 비중이 높았던 내가 있던 이학부나 동아리에서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경제경영학부 친구들은 최소 1, 2학년때만큼은 수수하고 털털한 모습이 많았다. 이때, 난 키가 커 보이기 위해 높은 통굽의 구두를 매일 신고 다닌 거 외에는 딱히 색조 화장을 하거나 옷에 신경 쓴 기억이 없다.
두 번째 대학에서는, 지금은 이름이 변경되었지만 내가 다녔을 때는 이름부터 공업 전문대였을 정도로 대부분이 공학계열의 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학교 내에서 남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특히 내가 전공한 전파통신과에는 여자가 거의 없었다. 이때, 화장은 무슨... 그냥 남자랑 똑같이 하고 다닌 걸로 기억한다. 높은 굽의 신발을 신을 일도, 메이크업을 할 일도 없다. 기본 베이스 화장조차 하지 않은 같은 과 후배 여자애들도 많았다.
그리고 입사를 했다. 회사에서 또한 경영지원부서에서 일하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다 남자다. 특히 여자 엔지니어는 내가 처음이고, 내가 입사한 이후에도 5-6년 동안 여자는 뽑지 않았다.
남자들과 부대끼며 야근도 하고 밤도 새우고 술자리도 갖다 보면 점점 옷을 골라 입고 외모를 가꾸는 일에 소흘해지게 된다. 잘 차려입은 누군가가 곁에 있어서 자극을 팍팍 주고 외모에 대한 화제로 자주 이야기 할 일이 있었다면 아마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옷이나 외모에 관심이 없어진다는 의미는 옷 입는 감각이나 메이크업 실력이 형편없다는 말과 동의어다. 보고 배울 사람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타고난 감각조차 없는 이상 실력이 늘 수가 없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체형이 호리호리하거나 날씬하거나 비율도 좋아서 아무거나 걸쳐도 보기 좋다면야 상관없겠지. 청바지에 후드티나 반팔 면티만 입어도 귀티 나고 멋있어 보이는 사람들은 분명 있으니까. 하지만 난 절대 그런 부류는 아니라는 게 슬픈 현실일 뿐이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향수가 생긴 적이 있다. 누가 선물해 준 건지 내가 산 건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로지 기억나는 한 가지는 한번 회사에 향수를 뿌리고 가서는 그날부터 다시는 뿌리지 않으리라 결심했다는 사실이다.
처음으로 향수를 뿌리고 출근한 날, 평상시보다 조금 일찍 온 나는 시제작실로 가서는 어제 못다 한 일을 이어서 하고 있었다. 좋은 향기 덕분에 기분도 더 좋아지고, 덩달아 일도 더 잘 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있는데, 하나 둘 출근한 사람들이 시제작실에 들어왔다.
제일 마지막에 들어오신 과장님, 들어오시자마자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틀어막더니, 나한테 묻는다.
‘00 씨, 향수 뿌렸어?’
‘네….’
‘무슨 향수가 이렇게 독해? 어휴… 머리 아파… 다음부턴 조금만 뿌리고 다녀.’
‘아…네……’
그때의 민망함과 창피함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한참 나중 일이지만, 나중에 경력으로 들어온 후배로부터, 전 회사 분위기를 들은 적이 있다. 후배가 다녔던 전 회사는 다른 부서 직원까지 회사 전 직원 모두가 남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보험 회사 직원이든 업체 영업 사원이든 외부 여자 사람만 왔다 가면 평상시와 다른 향기로 인해 그 사실을 모든 직원이 다 알게 된다고 했다. 그 자리에 없었던 직원까지도 회사에 들어와서는 평상시와 다른 향기를 알아채고 누가 왔다 갔는지를 물어보기까지 할 정도라는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 작은 시제작실에서 처음으로 향수를 뿌린 채 앉아있었으니 온 사방에 향수냄새가 진동했을 것이고 그동안 한 번도 여자와(그것도 향수 뿌린 여자와)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해본 적이 없었던 대부분의 선배들은 분명 다 향기가 다름을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단지, 예민하신 과장님이 참지 못하고 말을 하셨을 뿐.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 당시 신입인 나로서는 너무 무안하고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화장실 가서 여러 번 냄새를 다 털어내려고 했고(그런다고 냄새가 없어지진 않겠지만) 그날 하루 종일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을 피해 다녔고 다시는 향수 따위는 뿌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물론 그 뒤로 향수를 뿌려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외에 나갔다 올 때 한 두 번 산적도 있고, 선물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향수를 챙겨 뿌린다는 행위는 낯설다. 관심이 가지도 않는다. 아마도 그때의 기억이 무의식 중에 작용하는 게 아닌가 싶다.
7화 외모 가꾸기에 대한 단상 2(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