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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은솔 Nov 02. 2017

좋은 사람이라고, 좋은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최근 시댁에 조사가 많았습니다.
이로 인해 크게 낙담하셨을 시부모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 주말에 시댁에 다녀왔습니다.
맛있는 외식을 하며 가족 모두 기분 전환을 할 생각으로 저녁때쯤 가봤더니, 오히려 제 생일상이 차려지고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감사하기도 죄송스럽기도 하면서, 문득 ‘아, 여전히 사랑받는 며느리로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신혼 초반까지는 사랑받는 1등 며느리나 사위가 되기 위해서 마음을 졸였던 순간도 많았습니다. 양가 부모님께 인정받는 자식이 되고 싶어서 노력을 하면 할수록, 나도 그만큼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 커지며 간간히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연히 생각했던 좋은 자식이 되는 길은, 여느 젊은 부부들이 느끼는 독립적인 부부생활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결혼 전 혼수나 예단 문제, 신혼집 갈등, 결혼 후 밥상 차리기, 제사 갈등 등 젊은 부부가 느끼는 부담은 사회가 요구하는 효도와는 사뭇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결혼 후 4년 차.
저는 이런 문제들에서 예전보다 자유로워졌고, 그 자유 속에서도 부모님과의 관계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새로운 부모님과의 좋은 관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시댁에서 미리 받는 생일 축하




아직 없는 시댁도 무섭다.


최근 결혼생활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반응이 "실체 없는 갈등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몇몇 고부갈등이나 장서갈등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 결혼을 회피하려는 미혼자가 다수 등장합니다.

# "저 집 며느리 캐불쌍하다. 한남은 어쩔 수 없어. 오늘도 비혼 다짐."
# "처가 이상하면 시월드 이상이지. 처가 분위기따라 믿고 거름."
혐혼을 넘어 남혐과 여혐 시각까지 만들어내는 이런 대결구도는 미혼자들에게 예비 배우자의 가족에 대한 공포를 만듭니다. 미혼 시절 생긴 막연한 공포심은 결혼 준비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에 대한 보편적 원인으로 포장되며, 이렇게 생긴 감정의 골짜기는 결혼 이후에도 쉽게 메워지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 불편한 선입견을 딛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불편한 시각은 자칫 나의 가치관을 받치는 대들보가 되기도 하며, 이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나 큰 충격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선입견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출처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미혼자들을 기준으로 할 때, 시댁이나 처가댁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매스컴에서 만들어진 이미지, 남초/여초 카페의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이야기, 친구네 가정사 등등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일들로 점철된 내용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작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미래 배우자의 가족이 프로불편러의 허상으로 벌써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요즘은 처가 덕 보는 시대 아닙니까.


또한 가끔 미혼자와의 대화 중에는 미래 배우자의 가족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 "옆집 아들이 누구네 집 딸이랑 결혼을 했는데, 처가에서 집을 해줬다더라."
# "그 집 시댁은 명절에 각자 해외여행 놀러 다닌대."
남의 집 가정사를 줄줄이 꿰며 비교하는 민족의 특성상,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질 수 없습니다.
나도 덕 볼 수 있는 처가댁을 찾아다녀야 할 것 같고, 내 시부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쿨하고 세련된 분이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판타지가 가득한 시각을 갖기 시작하면, 나의 독립적인 가치관은 사라집니다.
있는 그대로의 각자의 모습 그대로 시부모님, 장인 장모님과 새로운 가족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미 내 머릿속에서 상상한 새로운 부모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남의 집 부모님 이야기 중 가장 좋은 것만 합쳐놓아 세상에 없을 부모 모델은, 아마 내가 나중에 그 나이가 되어도 해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나도 감히 해내지 못할 판타지를 기준으로 상대 부모님을 바라보면 스스로 스트레스만 쌓입니다.
그런 사위나 며느리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도 불안하기 짝이 없으며, 서로 불만만 쌓이다가 결국은 장서갈등이나 고부갈등으로 파국을 얻기도 합니다.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입니다.
부모님도 자식도 서로에게 너무나 부족하기도, 또 지나치게 넘치기도 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정할 수 있을 때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해 변화가 일어납니다.


좋은 사람이라고, 좋은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가족관계는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똑똑한 개인 간의 조합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훌륭한 인격과 총명함, 또 부족함까지 서로 공유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일 때 진짜 좋은 가족관계가 완성됩니다. 또한 서로 간 이견이 있을 때 대화를 할 수 있는 용기를 내어 충분히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명절 전, 갓 결혼한 후배가 고민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내용은 결혼하고 첫 명절을 친정에서 먼저 보내기로 남편과 결정했는데, 이 문제로 시댁에서 아들에게 딴죽을 걸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에 양가 방문 순서는 어떻게 정하게 된 건데?"
"신랑이랑 결정했어요. 신랑이 자기 부모님은 그런 거 신경 안 쓰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이러니까 당황스러워요."
"양가 부모님이랑 협의할 생각은 안 해봤어?"
"각자 부모님께 알아서 전달하기로 했어요."
"음.. 이건 마치 너의 생일날 너희 부모님이 '원래 우리 딸은 생일 때 우리랑 함께 하니까'라며 생일 며칠 전에 딸네 집으로 가겠다고 통보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네. 이러면 넌 어떨 것 같아?"
"음.. 그건 우리 엄마 아빠가 잘못했네.. ㅋㅋㅋ"
"그래. 생일날 누구네 집에서 보내느냐는 것은 나중 문제야. 서로 본인 생각만 하고 대화도 없이 결정한 게 기분 나쁜 거지."

이후 이어진 대화에서 저는 후배에게 양보하라고 조언하지 않았습니다.
부모에게 독립한 부부가 주체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며, 설득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생략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양보를 해버리면 양가 부모님이나 신혼부부 모두 기분 좋게 명절을 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남편 혼자 문제를 해결하게 두지 말고, 한 번쯤은 시부모님과 직접 통화하면서 설득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명절이 지난 후 후배를 만났을 때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양가 방문 순서에 대해 시부모님과 직접 통화하며 차분히 말씀드렸고, 이해해주셨다는 말을 전해왔습니다. 친정에 먼저 다녀온 후 시댁에 가서 좋은 시간을 보냈고, 시 어르신들께 며느리 잘 얻었다는 말도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도 좋은 며느리나 사위가 되기 위해서 양가 부모님의 숨소리 하나에도 머릿 털이 곤두서던 시절을 기억합니다. 한국 문화가 정한 좋은 자식이 되기 위한 발버둥이었습니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좋은 자식이라고 교육받아왔던 우리 모두는, 그분들의 의견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이 가족관계가 잘못됐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런데 가족 간의 이견을 대처할 때 부모님이나 자식이 틀렸다는 구도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답도 없는 불화의 시작이 됩니다.

그렇게 자식의 의견을 부모님께 제대로 전달해보지도, 설득하려는 과정도 거치지 못한 미숙한 관계는 서로를 "악의 축"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한국 사회의 "시월드""처월드"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고 봅니다.


좋은 자식이나 좋은 부모가 되려고 애쓰는 것이 우선이 아닙니다.

각자가 경험했던 인생을 통째로 들고 새로운 가족이 되었으니, 그 안에서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입니다.


매번 시댁이나 처가댁에 봉사만 하면서도 욕먹는 자식이 있을 수 있고,
자식의 뜻대로 살아가면서도 부모님에게 둘도 없는 며느리나 사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좋은 가족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절대적인 복종이나 고집은 필요 없습니다.

굳이 양가 부모님이나 며느리, 사위의 기싸움에서 이기겠다는 힘겨루기도 필요 없습니다.
젊은 부부는 젊은 부부대로,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각자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서로에게 하나씩 꺼내어 놓으며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필요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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