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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medy Dec 15. 2021

11 17 일기 (12 -01 십이 마이너스 일 일기)

지혜와 지식 (Wise vs Smart)


부제: Wise vs Smart




2번째다. 작심삼일 이라는 말이 우스울 정도로, 고작 두번째인데 벌써 쓰기가 귀찮다. 매일 쓸 필요는 없다는 걸 앎에도 매일 써야만 할 것만 같은 이 기분은, 아마 과제를 하고 싶지 않은 나의 깊은 욕망일지도 모른다. 


성경은 이야기 한다. Wisdom is proved right by her actions. 지혜는 그 누구도 옹호해 주지 않아도, 결국 그 진가를 보이고, 그 행동의 결과가 보여지는 것이 지혜이다. 그래, 오늘 써볼 것은 지혜에 대한 생각이다. 최근에 나는 지혜롭다는 이야기를 갑자기 듣기 시작했다. 똑똑하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어봤어도 지혜롭다는 소리는 잘 못들어 봤는데, 어째 똑똑에서 지혜로 넘어가니 조금은 서운한 기분이.. 지혜의 기본은 "뒤에서 일한다"도 있는지도.. 


지혜로운 사람을 만났다. 95년생, 나보다 한 살 많은 누나 분 이시다. 틴데일을 다니면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Spiritual Direction이라는 과가 있는데, 그 과에서 반드시 한 명의 Director, 즉 일종의 개인 상담사를 2주에 한번씩 만나야 한다고 해서 만나기 시작했다. 비록 비대면으로, 줌으로 보기는 하지만. 첫 만남부터 사실 조금 무시하고 싶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솔직하라고 이야 하겼으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솔직하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첫 만남에서 그녀는 나에게 Gift of Vulnerability와 Gift of Presence 가 있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아픈 부분, 상처를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달란트, 그리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달란트. 둘 다 내가 썩 좋아하는 것들은 아니기에, 그냥 ㅎㅎㅎㅎ… 로 넘어가긴 했지만.  


신기한 경험이였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사람을 고를지 명확하게 답을 주셨다. 나이 많고 더 지혜로운 사람도 있었겠지만, 하나님은 그러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뭐, 까짓거 하나님 함 믿어보기로 하고, 누가봐도 상담을 하기에는 조금 어려보이는 이분을 선택했다. 다른 분으로 바꿀 수도 있었지만, 그냥 믿어 본거지 뭐. 믿음은 곧 기적으로 변화되곤 하니. 


뭐랄까, 음, 신선했다. 나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다고 자부하지만, 하나님이라는 존재와 나의 영적 상태, 혹은 교리나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도 깊은 대화가 가능한 여성이 존재하다니… 라는 느낌이랄까..?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었다. 나는 상담을 가르치고, 그녀는 나에게 모든 것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safe place 가 되어주었으니. 상담에 대한 피드백을 참지 못하고 우수수수 쏟아내는 나의 모습을 보고 그걸 내 열정인 것을, 비하가 아님을 알아주어서 감사했다. 3년을 봐도 나를 모르는 사람들 보다는, 6번 온라인으로 만난 사람이 나를 더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해 졌지만. 매주 조금씩 나를 더 잘 상담하는 그녀를 보며 약간 뭐랄까, 포켓몬 키우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가랏 조에몬! 


재능이란 참 무서운거야,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나름 상담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 95년생분은 상담을 배우셨고, 3학년이라 이제 1학년 밖에 안된 신참 꼬꼬마보다는 잘할 법도 할 텐데, 나는 되려 그녀를 상담해주는 케이스가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재능은 사람을 말하게 하는 재능이였다. 토해내도록 질문하게 하는 재능. 그리고 복잡한 머리를 순식간에 조용히 시키는 재능. 그런데 자꾸만 쓸데없는 말과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으로 성령의 인도를 막길래, 내가 지적해 줬는데, 세상에나, 그걸 감사하다고 하다니. 확실히 지적을 하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듯 흥칫쳇뿡을 시전하는 그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이… 기부니가 나쁘니 너가 틀렸어!! 난 안들을거야!!! 


으…. 주여… 


지혜로움과 똑똑함은 분명 다르다. 나는 누군가가 보기에는 똑똑할 수 있으나 지혜롭지는 못하다. 지혜로움은 무엇일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 행동 그 자체로 스스로가 아무런 변명이 필요하지 않은 말, 행동, 생각이라고 이야기 해볼까.. 한다. 최고의 지혜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인 이유는, 비록 지금은 욕먹지만, 비록 예수는 죄인들과 밥 먹고 술 마셨다고 욕먹었지만, 하나님에게 옳다함을 받고, 그 결과로 증명이 되는 것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내가 옳음이 바지에 송곳같이.


주의 일은 낭중지추라. 


나는 힘들어요… 라고 운을 띄었다. 교회가 힘들고, 사람이 힘들고, 몸도 아프고, 혼자 해결하고,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이 익숙해져서, 나만 이해하고, 배려하고, 도와주는 것이 익숙해져서 이제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요, 라고. 따스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나의 말에 그녀는 대답해 주었다. 그러니까, 일요일이 힘들단 말이지? 아니면 그 외에 시간들도 힘드니? 


음… 일단 교회는요, 일요일에 제일 힘들어요. 다른 사람들은 목사가 되었던 찬양팀이 되었던 누군가가 먹여주는데, 나는 말씀으로도, 찬양으로도, 기도로도 전혀 채워지지 못해요. 신경 쓸 일도 많고, 맡긴다 한들 여전히 내가 더 잘하니까요. 차라리 이럴바에야 안 가는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아니, 어쩌면 내가 있기에 더 잘 안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예배가, 조직이, 교회가 잘 돌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있어야 하는지, 그게 목사, 사모의 노력, 그리고 뒤에서 뭔가 해내려 하는 자들의 미친듯한 발버둥임을 모르고 그냥 taking it for granted, 너무 많아요. 


그럼 너는 언제 회복을 받는데? 


기도하고 찬양할 때요. 우리 교회에는 개쩌는 목요집회라는게 있는데, 그때는 좀 힐링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오퍼레이션을 하지 않게 된 건 얼마 안되고, 여전히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아요.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나를 찾을때가 더 많기도 하구요. 


그렇구나, 그러면 목요일에는 채워지고 주일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섬기는거네? 그러면 나머지 월, 화, 수, 금, 토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채워질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게 크게 채움을 받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채워진다면, 주일 하루 정도는 섬겨도 되지 않을까? 


여기서 지식과 지혜의 질문이 갈린다. 아… 저 질문이 지혜구나, 라는 생각에 벌어진 입과 당황스러운 눈이 오갔다. 옳은 질문이다. 나는 왜 평소에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못하는가? 지식은 나에게 나를 채워주지 못한 교회를 탓하라 말한다. 지식은 나에게 너를 아프게 한 저 roto… 분 때문에 안된다고 한다. 지식은 나에게 성경을 보게 한다. 초대교회, 혹은 하나님의 나라와 나의 현재 교회를 비교하게 만든다. 지혜는 이제는 숟가락 정도는 들 수 있지 않냐고 물어본다. 지혜는 나에게 초대교회, 그 개쩌는 바울이 18개월동안 만든 교회도 시기, 질투, 섹스 때문에 문제가 많지 않았냐고 한다. 


우리 목사님은 자주 이야기 하신다. 원래 목회자는 주일이 제일 힘들다고. 물론 나는 항의한다. 나는 목회자가 아니라고. 그러나 나는 저 질문 한마디에 하나님의 질문을 이해했다. 너는 주일에 섬기기 위해서 평일날에 나와 데이트할 준비가 되어있니? 


아뇨, 안됐어요. 


그 질문의 답에 안돼, 는 사실 세상의 것이 많았다. 아니, 세상의 것 밖에는 없었다. 저 돈 벌어야 하구요, 저 공부해야 하구요, 사람들 도와주기도 해야하구요, 운동도 하고, 겜도 좀 하고, 그래야죠. 주님, 나 시간이 없어요. 난 아프다고 생각할 시간조차 부족한걸요? 투정부릴 시간도, 사람도 없고, 해 봤자 뭐 달라지는 것도 없고, 한다고 돈이 생겨요, 시간이 생겨요? 어차피 내가 하는 거, 와 개쩐다 하면서 백업해 줄 사람 없어요. 당신이 약속한건 다 미래라, 현재 밖에 못 사는 인간들에게는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거든요. 내가, 그들이 미래를 갔다 와본 것도 아닌데, 뭘 믿고 뭘 듣겠어요? 


돈 버는 것도 주를 위해. 그래서 나는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어볼 계획들을 만들어 왔었다. 교회가 돈을 벌 수 있는 구멍을 만들기 위해, 프로그램을 짜고, 돈을 받고, 1-2년 뒤에 교회 프로그램으로 바꾸어 교회가 돈을 벌게 한다. 크, 멋진 생각이다. 과외를 해서, 과제를 도와주며 돈을 벌고 관계를 생성한다. 크, 좋다. 틴데일 열심히 해서 빠르게 졸업해서 많은 사람들을 상담한다. 크, 장난 아니다. 근데 되려, 내가 열심히 하기 시작하니 내 플랜에는 예수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아니 분명 예수를 위해서 시작한 일들인데, 내가 슬그머니 들어오기 시작한다. 잘하려고 하니 계산적이게 되고, 효율적으로 하려고 하니 논리적이게 된다. 문제? 문제는 없다. 사람이 문제지. 사람은 계산적인걸 싫어하고, 논리적이지 못하다. 한없이 삐딱하고, 한없이 위험부담을 가지고, 한없이 감정적인게 인간인지라. 


나의 가치. 이 놈이 또 다른 문제였다. 나는 나의 가격을 제시한다. 나의 일에 가격이 붙는 순간, 첫번째 선택지는 나에게 일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돈을 내고 도움을 받을 것인가? 기꺼이 예스를 하는 사람들은 패스, 그렇다면 가격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은? 각자에게 다른 돈을 받는건 멍청한 짓이라고, 그냥 돈 낼 사람들만 받아주라고 이야기 한다. 호구 짓 그만하라고, 도움을 받은 사람 조차 비웃는다. 젠장할, 내 일의 가치는 고작 그 비웃음 한모금 이였었나. 


사람의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 없다. 하지만, 사실 숫자만큼 제대로 표현되는 것은 없다. 숫자만큼 눈에 보이고, 정확하고, 깔끔한 녀석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분명 나는 도와주고 싶고, 함께 있고 싶다. 그러나 엑셀에 숫자와 계획들을 써내려 갈 때, 호기롭게 정했던 액수의 반도 안되는 금액들에 씁쓸한 생각이 아니 들 수 없기도 하고. 안정적인 수입을 원한다. 그러나 그럴려면 과외도 그만두고, 예배도 그만둬야 한다. 돕는거? 꿈도 못 꾼다. 악착같이 살려면 살겠지만, 그러면서 비로소 연애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연애는 시간 내서 하는 거라고 말하는 여자들이 참 어리석다고 느낀다. 시간을 내서까지 연애를 하는 사람 중에 교회에, 하나님에게, 드릴 시간을 온전히 드린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라고. 사실 인간의 인생에서 제일 먼저 희생당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시간이다. 우리의 반쪽(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그러나 아닐수도 있는) 사람과의 시간과 비교한다면, 당연히 사람이지. 성경은 이야기 한다. 마음이 갈라지지 않게 하라고. 고전 7:32-35는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 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결혼한 아내, 남편도 "흐트러짐 없이 주를 섬기"는 것을 이야기 하는데, 하물며 결혼도 안한 사귀는 사이는...


안 그런가? 


세상이 제일 먼저 변화 시킨 것이 관계, 특히 이성 관계일 것이라 생각한다. 수 많은 단계들, 스킨쉽의 단계, 관계의 단계, 누가 먼저 고백하고, 어떻게 하고, 프로포즈 부터 이 모든 단계 중 그 어느 것도 성경에 나온 것은 없다. 되려 그런 것들이 생겨지고, 새겨지매 "아내를 기쁘게 할까" "남편을 기쁘게 할까" 보다도 낮은 것들이 하나님 보다 우선시 되어지고, 결혼 하기 전에 하나님을 같이 찬양하지 않았는데 어찌 결혼하고 하랴. 


교회는 그렇다.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적게 가진 자에게, 그 적게 가진 자가 베풀 수 있을 때 까지 돕는다. 물질은 있으나 마음이 없는 자들도 있고, 마음은 있으나 물질이 없는 친구들도 있다. 물론 둘 다 없는 쌩 양아치들도 상당히 많기는 하지만. 물질이 있는 자에게는 물질을 취하고, 마음이 있는 자에게는 마음을 취한다. 둘 다 없는 양아치들은 손을 좀 봐준다. 어디보자… 너가 왕이 될 상인가..? 


지식은 그런 것이다. 물질을 본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프로핏, 이득을 본다. 돈이 기준이 되어 받을 사람에게 받고, 받을 만큼만 받는다. 기준 미달인 사람에게 더 주는 것은 투자의 목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혜는 그런 것이다. 사람을 본다. 주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프로핏, 이득을 본다. 사람이 기준이 되어 받을 사람에게는 더 받고, 못 받을 사람에게는 받지 않는다. 기준 미달인 사람에게 마음으로 갚을 기회를 준다. 내가 아닌 하나님에게 마음으로 갚게 이끄는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난 기꺼이 지식을 가진 사람이 되겠어! 


그런 농담을 자주 한다. 하나님은 만원 가져서 5000원 낸 사람을 천만원 가져서 십만원 낸 사람보다 크게 보신다고. 나도 그것을 닮아서 기꺼이 십만원을 가져야겠다…


나의 말과 농담들에는 그런 모순이 다 담겨 있다. 나는 나의 한 부분도 숨기지 않는다. 돈을 더 받고 싶은 내 욕망과, 진정으로 돕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싸우는 것을 나에게 도움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보았다. 람보르기니 한 대씩 사달라는 농담이 과연 농담일까…? 그러나 그게 지혜가 아님을 알기에 그저 농담으로, 나 자신과 싸워 나간다. 누구는 그 말을 부담으로 듣고, 누구는 그 말을 솔직함으로 받아들여 나에게 미안과 감사를 준다. 


사람들은 존나게 간사한 존재다. 나는 돈 별로 안 받고도 참 많이 도와줬었는데, 이제 돈을 받기 시작하니 주지 않는, 갚지 않는 사람들에게 화가 나기 시작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나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은 나를 욕하면 안된다고 생각을 한다. 인간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을 욕하는 건 개 씹 인성 쓰레기에 양아치 아닌가..? 근데 예전에는 이게 당연했는데, 별로 화가 안 났는데, 나에 대한 가치가 좀 올라갔다고, 자존감 좀 올랐다고 이게 이렇게나 거슬릴 줄이야. 


그게 나야. 


움바 둠빠 두비두바


한 마디의 안돼, 한 마디의 왜 그렇게 살아?, 한 마디의 병신 같이 살지 좀 마, 또 한 마디의 호구 같이 살지 마, 그리고 또 다른 한 마디의 넌 맨날 남만 챙기니까 볼품이 없는거야, 라는 비교의 말들. 하나 하나, 켜켜히 쌓이고, 째고, 뚫고, 무너뜨린다. 아무리 큰 도움을 받아도 이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내가 도와달란거 아니고 지가 그냥 도와준거야, 불편해. 해달라고 한거도 아니고 와달라고 한거도 아닌데 지 멋대로 한거야. 분명 그 사람들은 그 도움을 받을 때는 감사했었다. 몇몇은 목숨이라도 내어줄듯, 생명의 은인이네, 평생 갚겠다느니, 말은 참 멋들어지게 한다. 마치 자기 인생이라고 내어 줄 듯, 마치 내 말에는 껌뻑 죽어줄 듯. 


마치 램보라도 사줄듯이 말이지...


그래, 나는 또 이렇게 이야기 한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가 사실 제일 약하고, 쓰잘떼기 없고, 수명 짧은 말들이라고. 그런 약속 함부로 하지 말라고. 약속 들을 때는 좋은데, 그거 깨지면 은근 큰 스크래치라. 차라리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되려 거리를 두는게 낫지, 싶다. 한두달만 보면 딱! 알게 되니까. 챙겨주려고 하고, 이야기 하려고 하고, 친해지려고 하는지, 관계를 유지시키려 노력하는지, 아니면 여전히 내가 먼저 해야하는지. 혹은 나를 더 알려고 하는지, 내 일에 대해 궁금해 하는지, 아니면 지 할 일. 할 말들만 하고 나는 서서히 사라져가는지. 그래, 사람은, 오래두고 볼 일이다. 그렇게 가슴 졸이는 한두달, 석달이 지나고 나면, 또 나만 진심이였지! 라는 씁쓸한 생각과 함께 슬그머니 포기와 손절 버튼에 손을 대지만, 나는 안다. 또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할 사람들인 것을. 


웃기에 바쁜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산다. 별로 행복하지 않고, 별로 대단하지 않다. 그닥 간지가 나지도 않고, 그닥 평화롭지 못하다. 사실 이런 일기를 쓰면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나는 아직 멀었다.. 인듯… 아직 멀디 먼 나는 오늘은 이렇게 짧은 생각으로 마쳐본다. 왠 갑작스러운 결말이냐, 음, 우울해 지잖아, 더 쓰면. 인생도 술도 커피도 쓴데, 글까지 쓰면 좀 그러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쓴다.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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