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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medy Dec 10. 2021

2021 결산 일기 - -2

섬바디 헲! 

    뭔가 어긋나 조금씩 망가져 간다는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얽히고 섥힌 마음과 기억의 잔여물들이 오랜 시간 치워지지 않아 썩을대로 썩어버려 꾸정물이 한움큼씩 나와 내 주변의 모든 이에게 그 역겨운 냄세가 나고 있다는 미묘한 확신과, 하나님 앞에 엎드려 Jesus, I'm messed up, forgive me, and act upon me라는 고백을 (강제로) 하게 하신 것을 보고 깨달았다. 아, 일기를 써야하는 구나. 흐르는 대로, 찬양을 들으며 생각나는 것들, 감정들을 그대로 적어내는 일, 그리고 그것을 눈치보지 아니하고 솔직하게 보여주는 일. 그래,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치유 과정이자 치료법, Remedy이다.  


    최근에 알게된 한 동생이 나에게 물어봤다. "오빠는 가장 돌아가고 싶은 기억이 뭐에요?" 난데 없는 질문에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이 하나, 둘씩 밀려들어오기 시작하고, 씁쓸함 한 모금, 웃음 한 조각이 새어 나와 글쎄, 잘 모르겠는데… 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하면 안될 생각이지만, 가끔은 "고작 이정도에…" 라는 생각이 문득 다가올 때가 있다. 상담을 하려고 하는 사람으로써 거의 뭐 실격에 가까운 생각이지만, 일단 나름 "힘듦"의 경험도, 또 보고 들은 것도 평균보다는 좀 높을수도 있다는 것을 점차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라.  


    오타와에서 알던 말광량이 동생이 어느덧 부쩍 커서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곳 실험실의 사진을 올렸다. 덩그러니 놓인 피펫통과 그 안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피펫들. 처음 실험실을 갔을때, 나는 온갖 잡다한 일을 다 했었다. 실험실은 보안문도 있겠다, 아무나 막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안전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남들은 하지 못하는 일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느껴져 마치 진짜 평범한 천재가 된 듯한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그렇게 밤새서 일하고, 실험하고, 그랬나보다.  


    그때는 그 잡다한 일들, 알콜 농도를 맞추고, 용액들을 만들고, 설겆이와 뒷정리를 하고, 센트리퓨지 정리와 엔자임들 정리, 오토클레이빙된 자잘한 것들 정리하기, 피펫들 꽃아 오토클레이빙실에 가져다 놓기 등, 나는 그저 그 안에 있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그곳에서 나는 다른 종류의 인정을 받고, 진정한 의미의 믿음을 보고, 올바른 관계를 경험하며 나의 틀린점과 나의 다른점들을 깨달아 갔던 시간이라 그리도 즐거웠고, 시간가는 줄 몰랐나보다.  


    나는 아직도 열심으로 할 의향이 있지만, 이제는 나이도 많아지고, 더 이상 내세울 것 하나 없어 그 누구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또 이제는 나아가야 할 방향들이 잡혀지고 있기에, 한번 더 그 곳에서 밤들을 지새우고 싶은 그 마음은 고이고이 접어, 내가 사랑했던 것은 인정과 믿음, 이해와 관용이였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 행위자체가 즐거웠던 것은 아님을.  


    우리 목사님의 18번중 하나는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다니엘서 9장 말씀이다. 다니엘은 황폐해진 성전을 보며, 예루살렘 성을 보며 그리 부르짖는다. 들으시고, 용서하시고, 또 이 고백을 듣고 행하소서.  


    나는 멋쟁이로 남기를, 멋쟁이로 살기를 원했다. 아프지 않은, 세상 모든 것에 통달한 것만 같은 그 이미지를 나름 즐겼다고나 할까. 아니, 사실 즐기지는 않았지만 어쩔수 없이 유지했다… 가 맞을게다. 한번 그리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들의 눈에 나는 그저 튼실한 한마리의 주의 종일 뿐이니.  


세미너리 학생들이 모였다. 우리들은 말했다. 아, 교회 떠나고 싶다. 아, 내가 여기 왜 있어야 하지?  


    이 고민이 모두의 고민이 되었다. 고민하고, 질문하고, 기도하고, 부르짖어보고, 찬양도 해보았으나, 우리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 교회가 시시해져 버린게다. 너무나도 큰 성령의 임재를 모두 맛보아서, 우리는 우리 각자의 교회에 가서 되려 더 지쳐버렸다. 더 답답해지고, 더 슬퍼지고, 비교하고, 도망치려 하고, 분노하고, 포기했다. 왜, 라는 질문은 때로는 너무나 파괴적이라, 나의 기존의 행동방식을 모두 부수어 버리기도 한다는 말을 나는 자주 했었다. 그게 내가 되다니… 


    사실 본질적인 질문, 모두가 해야하는 질문중의 하나이다. 여러분은 왜 여러분의 교회에 남아있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친구가 있어서? 목사의 말씀이 좋아서? 교회가 도움이 필요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서? 젠장. 이 중 그 어느것도 남아야할 무조건 적인 이유가 되지 않는다. 설사 지금 교회에서 누군가가 죽어간다 하더라도, 그게 내가 남아야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세상에 죽어가는 사람은 많고, 나는 어딜 가던 사람을 돕고 열정으로 살려 노력할테니.  


질문은 이렇게 된다.  


무엇이, 나를, 이곳에, 머물게, 하는가?  


    무엇이… 에서부터 나는 막혔다. 아니, 나아갈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유의미한 "무엇"이 남아있지 않았다. 관계는 생각보다 쉬이 끊어짐을 나는 꽤나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관계는 아웃. 뭐 엄청난 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기도 하고. 하나님의 지령, 혹은 섬길 일도 끝났고, 돌볼 사람은 남았으나 나 아니라 다른 사람이 충분히 도울 수 있는 문제들이고. 아니 애초에 어쩌면 내가 있음에 다른 사람이 채우지 않았을 수도 있는것이기도 하다. 그래, 고민해 보아도 더 이상 남은 "무엇"은 없었다.  


    나를… 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남을만한 사람인가? 각 교회는 모이는 사람, 모여져 있는 사람에 따라 특성이 달라진다. 어느 교회는 목사와 사모의 노력을 등한시하고, 어느 교회는 성도의 노력을 등한시한다. 어느 교회는 술을 많이 마시고, 어느 교회는 밤문화가 활발하게 돌아간다. 또 어느 교회는 교횟돈으로 아주 맛난 것들을 사먹기도 하고, 어느 교회는 지나치게 정죄하기도 한다. 또 다른 교회는 목사를 신으로 우대하기도 하고, 또 다른 교회는 스스로가 신이 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 물론 이는 시니컬하게, 교회의 나쁜점만 본 이야기도 하다. 물론 좋은 컬쳐를 가진 교회도 있다. 어느 교회는 이쁜 자매들이 많고, 어느 교회는 잘생긴 형제들이 많다.  


얼마나 좋아?  


    아, 너무 싫어하지는 말아라. 이거 다 우리 세미너리 학생들 입에서 나온 시니컬한 말들이니까. 중요한건 각 교회마다 주된 죄의 주제가 있고, 기독교인들은 주가 주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주된 죄의 주제에 대해서는 무관심과 고개돌림으로 일관하기 마련이니까. 이는 곧 품어줌, 이해함, 받아들여줌이라는 이쁘장한 포장지로 고이고이 덮혀 이렇게 포장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까내리는 좋은 무기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목사요, 기독교 상담사요, 선교사가 되려 하는 우리들은 예수는 좋으나 사람에는 지쳐가고, 그래서 사람이 모인 교회에도 지쳐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우리 안에는 화가 있다. 이상하게 우리들에게는, 어떤 경험을 하고 살았던지간에, 무시당했다 라는 그 깊은 화가 있다. 우리 교회 병신들은 하나님 똥구멍의 때도 보지 않을라고 해! 라고 찰지게 말했던, 눈물을 뚝뚝 흘리며 분에 차서 이야기 했던 그 흑인 누나에게, 나는 그저 나도 하나님 똥구멍의 때는 안보고 싶어.. 라는 시덥잖은 농담이나 할 수 밖에는 없었다.  


예수에게 희망을 품었기에, 되려 사람에게 희망을 잃은 우리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뭐랄까… 음…  


희망차다고 생각했다.  


하나님 똥구멍의 때를 안보고 싶은게 나 혼자는 아니구나..  


    박장대소. 우리는 서로의 깊은 아픔들, 분노들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서로에게 분노한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감정의 격해짐이 오랜 시간 쌓여온 답답함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공감했기에, 우리는 좀 조용히 하라고, 컴 다운 하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웃고, 농담한다. 그리고 말한다. 하나님은 아실거야. 서로가 서로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우리는 하나하나 각자 울었다. 교회는 힘들다. 사람은 힘들고, 일하는 것도, 섬기는 것도 힘들다. 쉬운건 예수 뿐이라. 그의 발치아래서 쉬는 것은 왜 이리도 쉬운것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찬양들으며 혼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터.  


    이곳, 이라는 단어는 여러 의미가 있다. 내가 현재 남아있는 교회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의 집을 의미하기도 하고, 나의 위치를 이야기 하기도 한다. 집에는 남아있어야 함에 의문이 없다. 나의 위치, 즉 내가 섬기는 자리, 선생으로써, 또 일하는 사람으로써, 그 위치도 있기도 하고.  


    나의 떠남은 사람에 의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여야 하기에, 나의 남음 역시 사람에 의해서 남는 것이면 안된다. 설사 내가 결혼할 사람이 교회에 있다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람. 그렇게 끊어질 관계면 어차피 끊어질 관계겠지. 그래서 힘들다. 사람 때문에 남는다 하면, 결국 섬김 이라는 이유 말고는 없는데, 나는 이미 섬기면서 욕을 한바가지 먹어버렸고, 여전히 먹고 있고, 그래, 그렇다. 때로는 한마디의 "안돼"가 열마디의 위로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길때도 있으니. 저 인간들은 자기가 말하는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알고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그리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인간들보다도 하나님에게 나는 더 파렴치 했을거라는 것을 기억하고, 애써 씹어삼킨다. 꼭 교회에서만 그런건 아니다. 저 씹새…. 말이 입 목구멍 앞에 대롱대롱 걸려있지만 뱉지 않으려 노력해야만 하는 순간들. 어이없고, 억울하고, 답답하고, 무시받은 순간들.  


    사람들은 너무나 쉬이 이야기 한다. 그런걸 보지 말고 예수를 보라고. 아니 그걸 모를리가 없지 않는가. 그나마 예수를 존나게 뚫어지게 쳐다보니까 내가 아직까지 살인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생각은 안해보나…? 라는 말도 역시나 입에 대롱대롱. 자신들도 못하는걸 나에게 하라고 하다니…  


    흠 이렇게 쓴지가 오래되어 어떻게 맺을지를 모르겠다. 빡침과 상처를 글로 승화하는 법, 이는 좋기는 하지만 글쎄… viewer's discretion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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