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베리의 야간비행을 읽고 나서
과거의 인류의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우리의 생각과 어긋나는 지점들이 생긴다. 내 기억 속 십 년 전 드라마는 권상우가 부메랑을 던지는 천국의 계단이었는데 실제로는 길라임이 등장하는 시크릿 가든이라던지. 언제 보아도 세련된 디자인의 M1911 권총의 숫자가 총기의 개발 연도 1911년을 상징한다는 놀라운 사실부터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수상한 때가 지금으로부터 딱 백 년 전이라는 놀라운 이야기는 인간의 역사가 마치 고무줄처럼 이리저리 늘었다 줄었다 하는 인상을 준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건 비행기였다. 라이트 형제로 상징되는 인류 최초의 비행이 언제인지 혹시 아는 사람이 있을까? 1903년. 인류가 하늘을 정복한 시간은 겨우 118년 밖에 되지 않았다. 고작 한 세기 만에 우리는 음속을 돌파하고 수백 명의 사람들을 거대한 쇳덩이에 실어 나르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 생텍쥐베리는 비행기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다. 정비병으로 일을 시작해서 파일럿이 되고, 전쟁에 참여했다. 작가로 등단한 이후에도 비행기 타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도 그때의 경험을 글로 풀어내게 되는데, 사막의 조난당한 경험을 토대로 쓴 작품이 불굴의 명작 '어린 왕자'이고, 야간 비행의 경험으로 빚은 작품이 오늘 이야기할 '야간비행'이다. 조종간을 놓지 않았던 그는 결국 정찰 비행 도중 피격되어 실종을 하고 나서야 손에 힘을 풀고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 왜 작가는 그토록 비행에 집착했던 걸까? 당시 시대를 생각해보면 비행기라는 물건은 최신 기술의 집약체였을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화성으로 나아가는 유인 우주탐사선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가슴 설레며 비행기와 교감했을 작가를 생각하니 나 역시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 같다.
야간비행은 파일럿으로서 생텍쥐베리의 경험이 가장 잘 녹아있는 작품이었다. 인류 첫 번째 비행 이후 24년, 사람들은 칠흑 같은 어둠을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는 우편을 들고 밤을 지났다. GPS도, 위성 통신도 없던 시절 파일럿들은 미약한 전파 신호의 간섭에 의지한 채 수천 미터 위를 날아다녔다. 그때의 공포, 직업으로서의 책임감,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우정과 인류애가 모두 이 책에 깃들어 있다. 우리가 야간비행 끝에 손에 쥔 것은 밀봉된 편지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메시지도 함께였으리라.
비행기를 타게 되면 이 책을 꼭 읽어볼 것
옛 친구가 남긴 코멘트가 기억나 열두 시간 비행 중에 이 책을 읽었다. 원래 좋아하는 책이었지만 정말 굉장한 경험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날은 난기류로 도착할 때까지 벨트를 풀지 못하는 험한 비행이었다. 그릉그릉대며 울부짖는 비행기 엔진 소리, 귀와 피부를 때리는 난기류의 몸짓, 어두운 조명 아래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은 계기판의 숫자들, 저 먼 아래서도 희미하게 보이는 또 다른 인류의 불꽃까지. 물론 거대한 항공기 안에서 당시의 열악한 비행 상황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푹신한 소파 위에서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순간이지만 파비앙의 뒤에서 함께 비행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고 이 난기류의 끝을 함께 마주하고 있었다.
COVID-19가 끝나고 여행이던, 출장이던 비행할 일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전혀 다른 느낌으로 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비행과 같다. 흔들리는 동체 속에서 조종간을 잡고 버티는 일만으로도 벅찬 일들의 연속이다. 이 책과 함께 비행하게 된다면 마지막 착륙의 순간 알 수 없는 평온함이 찾아올 것이다. 우리는 잘하고 있다. 우리는 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