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을 읽고서
먼저 저는 이 책이 당연히 미국 소설인 줄 알았습니다. 본 작품을 각색하여 만든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 미국을 상징하는 영화이기에 당연히 원작 또한 미국 작품이겠거니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나 작가 조셉 콘래드는 폴란드 출신 영국인 작가이고, 지옥의 묵시록은 본 작품과 내용적인 연결점은 거의 없다시피 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정글의 그 찝찝함과 끈적임, 그리고 그 안에 잠들어 있는 야만과 광기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영화도 함께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책은 한 선원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주인공 '말로'의 뒤를 따라 정글, 어둠 속으로 항해를 시작합니다. 항로 곳곳에는 식민지의 폭력성과 야생의 야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거친 태양 빛 아래 그늘에서 말로는 천천히 어둠에 침잠해 갑니다. 배는 그런 선원을 태우고 더욱더 어두운 곳을 타고 들어갑니다. 그는 그렇게 그가 몸 담고 있던 문명과 이성의 세계로부터 멀어집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커츠'이기도 합니다. 그는 정글 가장 깊숙한 곳에 살고 있는 남자의 이름입니다. 말로는 커츠의 흔적을 따라 가장 어둔 지역으로 들어왔습니다. 곳곳에는 그를 찬양하는 무리가 이미 터져버린 수류탄의 파현처럼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커츠라는 존재는 신이오. 훗날 그들을 구원해 줄 파괴적인 힘 그 자체였습니다. 말로의 항해는 커츠라는 남자의 영웅담을 얼기설기 기워 나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조합할수록 커츠가 대단하기도 하면서 의구심이 드는 마음이 들게 되죠.
그렇게 꿰어 들어간 이야기는 가장 깊은 곳에서 매듭을 짓습니다. 매듭은 말로의 발목에 묶여 그를 더욱더 어두운 심연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심연 속에서 그의 피부는 이미 검게 물들어 갔습니다. 항해를 하기 전 그가 그토록 경멸했던 원주민과 같은 색으로 말입니다. 사실 폭력과 야만은 전염되는 것이 아닌 누구에게나 잠들어 있는 본능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나의 항해는 시작됩니다. 저기 저 파도 위에 비친 나의 색깔은 어떻습니까?
처음 책을 읽을 때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걱정했는데 저는 거리낌 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십오 쪽 정도가 의도적인지 한자어 병기가 많은 편이었습니다. 쉬운 문장은 결코 아니지만 어느 누가 번역하더라도 쉽지 않은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책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합니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 어설프게 의역을 했다면 말로의 말 따나 눈앞에 실재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지났을지도 모릅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의미가 무거운 작품이니 꼭꼭 씹으며 읽기를 추천합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를 다루고 있는 작품인 만큼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정글에 빗대어 표현한 그 시절의 기억과 경험은 굉장히 찝찝한 기분으로 오래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어둠을 품고 살아갑니다. 두려워해라.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