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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진 Dec 12. 2020

토요일

가족


토요일


저희 집은 주말에 일정 시간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건 당연히 아버지가 만든 법이고 가족에 소속된 이상 거부권은 없습니다. 국민의 4대 의무와 같이 이(李) 가의 절대적 의무인 셈이죠. 저는 어려서 진짜 그게 너무 싫었어요. 자유를 박탈당한 것만 같고 그 시간에 나를 기다리는 수많은 걸들이 아니고 세상으로 나가 생산적이고 거국적인 일들을 도모해야 한다 자부했죠. 그럼에도 저는 그다지 투쟁심과는 거리가 먼 성향이라 언제나 잔다르크 같은 누나를 설득해야 하는 사람은 저였습니다.


 가족의 모임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양상을 띠는데 어찌나 서로를 헐뜯는지 아빠는 엄마를 불편하게 하고 엄마는 아빠를 무시하고 누나는 원하지도 않는 사랑으로 동생들을 괴롭혔어요. 그러다 한 마디 대꾸라도 하면 어디 누나가 말하는데 라는 무언의 언짢은 표정으로 발언권까지 가져가 버렸죠. 또 막내는 막내대로 얄궂은 면이 있었지만 막내라는 타이틀은 모든 게 용서가 되는 칭호라 모두가 귀여워했죠. 둘째에게 제일 필요한 덕목은 관찰력과 인내 그리고 감내, 미리 마음에 넓은 바다를 준비 해 놓는 것. 무엇이 떨어지더라도 다 받아 내겠다는 일념으로. 그렇습니다. 저는 언제나 이 모든 양상을 한 걸음 뒤에서 묵언으로 관찰을 하지요. 누가 시켜서 그런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요.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으로.


시간이 참 많이 흘렀어요. 강산이 변한 만큼 저희 가족의 주말도 많이 변했습니다. 아빠가 노쇠해지며 이가의 기강은 사라졌어요. 그렇게 원하던 자유를 얻었지만 어쩐지 저는 허전한 마음만 남습니다. 엄마야 그렇다 치고 누나는 이제 출가를 하여 더 이상 집에 있지 않고 동생은 이 대코로나 시국에도 (사경을 헤매 봐야 정신 차 릴라나) 약속이 끝임 없어 뭔 놈에 친구들이 그렇게 많은지 나도 다 해본 건데 넌 하지 마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영악한 것이 아직도 막내라는 타이틀을 악용하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용인한 지 오래된 것 같아요. 그도 그럴 수 있는 게 오랜 투병생활로 인한 쓸데없는 미안함 때문에 무엇이든 옛날처럼 단호하게 말씀을 못하세요. 어제 일 같이 생생하지만 우악 돼던 소음은 온 데 간데없고 아침저녁으로 냉장고 소리만 집안 한가득 맴돕니다. 제가 이런데 부모님은 오죽할까요.


아빠는 일정량 몸을 움직여 주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욕창이 올 수도 있어서 비교적 사람이 적은 아침 시간에 아빠와 저는 산책을 나섭니다. 우리는 아직도 가족이고 시간이 흘러도 가족일 겁니다. 피부로 함께 했던 우리들의 교차된 시간은 각자의 사정과 선택에 맞춰 한순간에 짧아질 수도 있고, 타의적으로 재단될 수도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시간이란 개념의 특성상 더 많아질 일은 없지만요. 어쩌겠습니까 인생이란 게 이런 걸... 아 테스 형..


원래 이런 글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니라 아빠와 걸으며 느낀 사색을 쓰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길어졌네요. 내일마저 써야겠습니다. 오늘도 많이 웃는 하루 보내세요. 어느 미세먼지 그득한 포근한 겨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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