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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진 Dec 07. 2020

무엇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

심리


무엇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


뭐든 거창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이 버릇으로 나는 소심해지기도 하고 뿌듯해지기도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어떤 한 개인의 행동과 말을 이해하려 하다 보면 거창해진다는 것이다. 이게 다시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타인의 행동과 말을 어떻게든 이해하려다 보니 거의 전인류적으로 접근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지고 스스로 자가 성찰을 해 본다. 나는 어떻지? 내가 혹시? 혹시 모르는 일이다. 이게 또 무슨 말인가 하면 얼마 전에 있었던 일로 예를 들어 보려 한다.


조금 일찍 퇴근하여 강남역에서 수원으로 가는 광역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4시 정도로 아마 고속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을 예정이었다. 날은 조금 추웠지만 고통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버스가 도착하여 차례차례 버스에 탑승했다. 나는 비교적 빨리 내리기에 항상 맨 앞자리를 선호한다. 버스에 올라 기사님에서 행선지를 말씀드렸다. 꽤나 상량한 말투로 인사까지 건네시는 거 보면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시거나 성향이 밝으신 분이시거나 기사 경력이 적은 편일 거라 생각하며 자리를 살폈다. 역시 이른 오후답게 앞좌석이 텅텅 비어 있었다. 나의 키는 183이라 그것도 축복스럽게도 다리가 긴 체형이라 상대적으로 널찍한 입구 쪽 자리에 앉았다. 뒤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 취향대로 자리에 착석했다.


 그때였다. 시뻘건 핏빛에 가까운 롱코트를 입고 무릎은 가볍게 덮고도 남는 시꺼먼 장화를 신은 아주머니께서 탑승하셨다. 범상치 않은 외향에 나도 모르게 쫄아 버렸다. 그래도 내가 지금 쫄았다는걸 티 내면 그분에게 굉장한 결례를 범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떨고 있는 심장을 애써 외면한 체 창밖으로 시선을 아주 천천히 고개랑 같이 돌렸다. 아주머니는 나의 정 반대 자리 그러니까 기사님에 바로 뒷자리에 착석했다. 운행은 걱정과는 다르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햇살도 좋았고 강남을 빠져나오는데 신호등이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천세일시 같은 날이었다. 아주머니께서 들고 계시던 엉덩이만 한 토즈 백안에서 신문을 꺼내지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아직도 의아한   굳이 과천을 지나는 고속도로 안에서 그것도 요즘 같은 시대에 신문을 봐야 했는지 그게 조금 의문이다. (용기가 없어 어떤 지면을 읽고 있었는지까지는 보지 못했다.) 아주머니는 버스 안에서 지적 쾌락을 더욱 깊이 세기 시는 스타일이 실수도 있다. 화장실에서 집중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신문을 넘기며 들려오는 청량한 팔랑거림 소리였다. 기사님이 소리가 거슬렸는지 정중하게 신문을 보지 말아 달라 .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무슨 소리가 거슬리냐 지금 기사님이 듣고 계신 라디오 소리  공기와 버스의 땀내 나는 마찰 소리가  크지 않냐며 반문하셨다. 듣고 보면   일리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승객의 생명과 직결되는 기사님의 오른손을 들어드리고 싶었다. 양보할  없는 기싸움이 5분마다 긴장감을 조성했다. 아마 뒤에 앉아 있던 승객들도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으리라.


 말싸움의 끝은 기사님의 오른발로 종결시켰다.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질주 하기 시작한 버스는 톨게이트를 거의 시속 100km를 육박한 엄청난 속력으로 통과하는 게 아니겠는가. 두려웠다. 그래도 나름 겁먹지 않았다. 운전병 출신이라 난 안전벨트 매는 습관이 무조건 반사적이라 역시나 지금도 생명줄을 단디하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눈앞에서 순식간에 뒤바뀌는 풍경을 보노라면 아찔했다. 기사님은 분노의 질주로 화가 났음을 아주머니에게 강하게 어필했다. 아주머니는 지지 않고 기사님의 등받이까지 발로 툭툭 치며 더 새 차 게 신문을 넘겼다. 기사님의 등받이에 툭 소리가 한번 날 때마다 알피엠은 더욱더 요란한 폭음을 내뿜었다. 나의 목적지까지는 15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이제 나의 운명은 하나님에 것이다.


모든 싸움이 그러하듯 둘의 싸움으로 끝났으면 만사가 오케이인데 이번에는 옆 차선의 자동차가 화가 났다. 기사님의 난폭운전으로 위협을 느낀 차들은 아마 5대는 될 건데 세상이 아직은 살만한지 오직 한대만이 반응하여 버스를 추월할 듯 질주했다. 옆에서 크락션 소리가 요란하게 났지만 기사님의 표정은 요지부동 모아이였다. 그 보복운전하려던 차가 잘 못해서 이번엔 다른 차선에 있던 차에게까지 불똥을 튀어 버린 것이다. 과천 봉담 고속도로 위는 이제 피티 기는 F1 경기장으로 변모했다. 이 와중에도 아주머니는 지지 않고 툭툭 대고 신문지는 펄럭이고 기사님은 왱왱대고 밖에선 빵빵 거렸다. 망망대해에 표류된 체 천둥번개를 향해 신에게 절규했던 파이의 표정이 된 승객들의 얼굴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나는 종교가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아는 모든 신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나의 암기력에 감탄했고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무조건 신을 찾게 된다는 인간의 나약함까지 깨닫게 해 주셨다면 나는 아주머니와 기사님에게 감사의 절이라도 올려야 했을까.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폭풍은 끝이 났고 나는 다시 멈춰 있는 땅을 밟았다.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평소 걸음걸이라면 집까지 10분 하지만 그날은 조금 과장해서 30분은 걸었다. 자 이제 생각해 보자. 아주머니는 어떤 삶을 살아오셨기에 또는 그날 누구와 어떤 일이 있으셨기에 그리 완강했을까. 기사님은 다음 탑승객에게 똑같이 상냥할 수 있었을까? 차가운 태도에 승객은 역시 '기사 놈들은 싸가지가 없어' 하며 혀를 끓고는 자리에 앉았을 수도 있다. 혹시 그들은 만남에 장소에서 버스기사 이야기가 나오면 오늘 있었던 싸가지 없는 기사에 대해서 수군대고는 어떤 프레임이 형성이 되었을 수도 있다. 내갈 길 잘 가고 있는데 왠 귀여운 버스가 광란의 질주를 하며 나에게 위협을 가했다. 몇 명은 도망가고 그중 몇은 도발에 응했다. 도망간 운전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도발에 응한 운전자는 분이 풀리고 승리감에 도취되었을까? 버스 안 사정은 알게 모야 우선 준만큼 갚아 줘야지. 다행히 서로의 도착지가 달랐기 망정이지 한가로운 사람들이었다면 중간에 내려서 육두문자를 토설하며 주먹다짐까지 이어 갔을 수도 있다. 아니면 땅끝 해남에서 한잔 했던가. 이런 일련의 생각들을 이어가다 보면 굉장히 무기력해진다.


그 날 원흉이라면 원흉인 버스가 아닌 불똥끼리 전복 사고라도 났었다면 어떠했을까? 한 사건의 지분을 완벽하게 개개인에서 분배가 가능할까? 법적인 매뉴얼이 있을 것이지만 영화처럼 모두가 하하 호호하는 해피엔딩이 가능할까? 결단코 불가능. 아마도 그들은 본인이 본인을 보았을 때 아무 잘못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 각자에게 지분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 그럼 반대로 눈시울을 붉힐만큼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고 치자 아름다운 이야기는 한 결과고 과정일 것이다. 과정 속에 분명 많은 사람들의 지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나미야 잡화점에 기적처럼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 과대한 망상에 가까운 해석일지도 모르겠다. 무기력해 진 뒤 그럼 나는 어떻지? 나는? 내가 하고 있는 무의식속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불똥같은 핵폭탄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과 좋은 일은 나에게 어느 정도 책임과 공로가 있다고 여기며 산다면 진짜 미친놈일까? 다행히 나는 말이 없는 편이고 사람들 앞에서 내 의견을 피력하는걸 두려워하는 사람이라 내가 이런 사람이란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술을 먹으면 가끔 격양되는데 감사하게도 외향적 조건들이 매력적인 면이 있어서 재미있게 봐주거나 4차원같다고 대놓고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끔 그렇게 하나하나 다 감정 이입해서 어떻게 살아?라고 여쭤 본다.


 살아가다 보면 접하는 많은 뉴스거리는 사실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책임은 매 순간 죄의식을 가지면서 사는 거고 공로는 더 많은 긍정의 뉴스거리가 차고 넘치기를 바라는 희망의 보상 같은 거다. 보상이 있어야 뭐든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만들어내는 모든 아웃풋으로 일어나는 일은 공로만을 받기를 희망하면서 오늘도 난 조심스럽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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