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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진 Dec 13. 2020

아빠와 산책

가족


아빠와 산책


이른 아침 인적을 피해 아빠와 산책을 나선다. 중간 지점에서 마실 따뜻한 커피를 보온병에 담고 도토리 쟁겨 두는 다람쥐처럼 매일 쟁겨두셨던 할머니의 청포도 사탕도 아빠의 당을 위해 준비한다. 날은 영상 6도로 이게 겨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포근한 날이지만 아빠의 반신은 죽어있는 세포가 많아 방심은 근물이다. 두툼한 기모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충분히 덮고 목까지 올라가는 짙은 고동색 패딩으로 스타일을 마무리한다. 보통 사람이 보면 혹한기 뛰러 가는 줄 알겠지만 아빠에게는 혹시 넘어질지 모르는 불상사를 위한 보험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는 거리를 보면 에게? 유난 떨고 있네 하실 수도 있다. 정말 동네 마실 나가는 수준의 거리기 때문이다.


 나의 기초체력으로 100 보정도 갈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아빠는 내 기준으로 30 보정도 가면 오장육부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한다.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숨은 턱끝까지 차올라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럴 때면 아빠는 나무나 전봇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의지하며 휴식을 취하신다. 나는 그런 아빠를 뒤에서 기다린다. 그렇다 같은 거리라 할지라도 사람에 따라 동네 마실에서 국토대장정으로 체감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지금의 아빠를 보며 의사 선생님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말씀하신다. 갑작스레 반신 불구가 된 자신을 마주할 용기가 없고 남아있는 살 날의 가치를 환산해 봤을 때 심리적으로 극에 달하는 우울감과 패배감으로 생을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제 정상에 범주가 아닌 장애에 범주에 들어온 아빠의 심리적 고충은 내가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거기다가 경제활동까지 하고 계시다. 숨을 몰아 쉬고 계신 아빠를 기다리며 사랑 나누는 철새들의 꽁무니나 보는 것쯤은 별것도 아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회복력이 의외의 모습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나야 아빠의 아들이니 아빠의 사정을 알지만 타인이 아빠를 보았을 적에는 그냥 조금 느린 사람 정도로만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몇일 전 있었던 산책 이야기를 잠깐 하면 가령 산책하다가 갑자기 아빠는 전방 5미터는 초토화시키고도 남을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방귀를 뀌셨다. 진짜 뽜아아아악!!!!! 아악!!! 이건 아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아직 살아있는 반쪽의 괄약근의 힘이 이 정도라면 우리 아빠 소화는 걱정 없네 라고 감사해하기도 무안한 구석이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투하된 방구탄 범위에 지나가던 젊은 커플 한쌍과 아주머니 두 분 이 계셨던 것이다. 아빠의 사정을 알리 만무한 커플은 난생 처음으로 총소리를 들은 훈련병의 표정으로 소스라치게 놀라 전방을 주시했고 아주머니 두 분은 질색팔색 손사래를 치시며 이게 뭔 개똥 매너야라고 강하게 텔레파시를 보내시고는 아래위로 훑고 지나가시는데 이때 내 가슴을 더 후벼 파는 부분은 순간적으로 아빠가 다리를 더 과장해서 질질 끄시고 계시는 게 아니겠는가. 하... 마치 저에게는 장애가 있어요를 온몸으로 표현했던 초원이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눈치가 빠른 둘째답게 한걸음에 달려가 아빠 괜찮아? 하며 아빠를 부축하며 연극에 동참했다. 아빠는 고개를 드시고 나를 보며 내 아들이지만 잘 컸어 같은 흡족한 표정을 하고 계셨다. 나는 이제 칭찬받았으니 웃어야 할 상황인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야 할 상황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폼에 살고 폼에 죽던 우리 아빠가 이런 추한 모습을 아들에게 까지 보였다는 거에서 아빠의 깊은 절망감이 표정에 서려있었다면 나는 별것도 아니라며 웃어야 했을 것이다. 천만 다행히 나는 좀 유아적인 면이 있어서 똥방귀 단어만 나와도 깔깔거리는 사람이라 반사적으로 그 자리에서 웃고 말았다. 아빠도 같이 웃었다. 솔직히 그 날 우리의 팀워크는 강백호 서태웅 저리 가라였다.


우리는 계속 걸었다. 아무 말 없이. 아빠가 30 보지점에서 쉴 때 가방에 챙겨 온 커피와 견과류 더미를 내밀었다. 아빠는 견과류는 됐고 사탕을 달라고 하셨다. 사탕 두 개를 입안에 털어 넣고는 커피 한잔을 홀짝 드신다. 전방에는 호수가 있었다. 아빠는 호수를 바라보고 계셨고 나는 그런 아빠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새들이 일제히 날기 시작했다. 하늘을 가득 매운 철새들에 이동을 아빠는 그저 지그시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지하철역 화장실 같은 곳에서 사정없이 방귀를 뀌어 대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아프셨거나  그런  상관없이  면상 바로 앞에다가 악의적으로 뀌시는 것만 아니라면 오늘은 장이  벅차겠는걸?,  냄새는 .... 사거리 안쪽에 있는 순이네 된장 냄새데? 아저씨 먹을  아시네~ 등등  이런 실없는 마음의 소리를 내며 때로는 내친김에 상황 보고 나도 남는 가스가   화음도 한번 맞춰 주기도 하고 그런다.( 둘일 때만)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오늘은  번이나 연극을 하셨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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