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진 Dec 25. 2020

메리 크리스마스

심리


메리 크리스마스


요 며칠 정리를 했다. 우선 책상 위에 몇 개월째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박혀 있는 책들을 뽑아내어 새로 들인 녀석들이랑 같이 컬러별 장르별로 보기 좋게 안착시켰다. 좋아했던 포스터를 떼어내고 올해 트렌드인 기하학 패턴의 포스터를 하나 붙일까 하다가 휑하니 두어도 나름의 여백의 미가 생겨 포스터 자리는 공석으로 남겨 두었다. 언제부턴지 필기구를 자주 사용하지 않게 되어 마음에 드는 펜 하나만 남기고 모조리 좋은 주인을 찾아 입양시켰다. 부쩍 건조해져서 펀딩으로 탁상용 가습기를 하나 구매했었다. 적당한 곳에 놓고 전원을 켜 몽글몽글 올라오는 수증기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내 책상이 원래 이렇게 넓었었나? 잘 도 숨어 있던 먼지 구댕이 들을 발견하고는 비장하게 물티슈를 꺼내 들어 한놈도 빠짐없이 색출하는 작업을 돌입했다. 먼지에게는 미안하지만 쓱~ 한번 훔칠 때마다 새하얀 티슈가 금세 시꺼멓게 변하는 걸 보면 묘한 쾌감이 들었다. 내 손동작 한 번에 내 건강이 한 뼘 정도는 진보하는 것 같아 이 단순한 노동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내친김에 방안을 넓게 보니 정리하려면 일주일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방 입장에서도 깔끔한 걸 좋아할 것 같았다. 못난 주인이 개과천선하는 연말을 노려 나도 좀 깨끗해지고 싶다 아우성치는 것 같아 주인 노릇 좀 해 보겠다고 요 며칠 정리를 빡시게 했다.


정리를 끝내고 여느 연말처럼 동생과 트리를 만들었다. 보름 정도 세상의 온갖 따뜻함을 발광하다가 역할이 끝남과 동시에 감흥 없이 창고로 직행하고는 또 일 년 뒤를 기약해야 하는 불쌍한 녀석다. 나는 트리 같은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충 나에게 감당된 역할을 끝내고서 반신욕을 했다. 옷을 벗고 반신욕 중에 읽을 단편 소설(무라카미 하루키 - 잠) 하나를 들고 탕에 들어가 생각에 잠겼다. 정리의 중요성 같은 거를.


 아마 내년이 시작되면 다시 이것저것 잡동사니들이 나로 인해 방안 한가득 쌓이게 된다. 그리고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몇 달씩을 기다리며 정리되기만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평생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부분까지 침투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그렇다. 삶에서 공격보다는 수비가 중요하 듯 더하는 거 보다는 빼는 게 참 중요하고 어렵다. 세상에 혼자 존재할 수 있는 게 없듯이 공격을 해야 수비도 할 수 있고 더해 봐야 비로소 빼볼 수도 있는 것이라 우선은 더하는 게 선행되어야 하는데 또 생각해 보니 이게 살아 있다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무언가 계속해서 쌓이기 마련이다. 


 물질뿐만 아니라 마음에 쌓이는 먼지들도 언젠간 물티슈로, 또는 걸래로, 또는 먼지떨이로 마구 사정없이 털어 줘야 하는데 내가 살아가며 느낀 사실 하나는 이 과정은 어는 누가 대신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배우자가 해줄 수도 없고 신이 대신해 주지도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반려견이 해줄 수도 없다. 오로지 내가 나를 돌아보며 보살피고 어디 숨 막히는 구석은 없나 몇 년째 나를 기다리고 있는 케케묵은 때는 없나 하고 박멸을 시킬지 그대로 감내해낼지 아니면 편한 쪽으로 옮겨 놓을지 등등 말이다. 이것 또한 개인의 선택이고, 굳이 해야 해야 하나 싶지만 나에게는 꽤 의미 있는 시간들이다.


 정리를 끝내고 방문 앞에 서서 내 방을 쭉 둘러보면 비로소 현재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에게 끌리고 있는지, 몇 시쯤 내방 안이 가장 빛나는지, 어떻게 해야 가장 효율적이거나 이상적일 수 있는지,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전부 내가 왜 애증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오랜 시간 이런 과정을 관찰하다 보면 놀랍게도 변하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확고해지는 무언가가 분명 있는데 나는 이런 변하지 않는 것들에 에너지를 쏟는다. 덜어 내봐야 이윽고 보이는 것들.


 사라진 올 한 해도 이제 일주일 정도 남았다. 연말이 되면 반성문처럼 올 한 해 목표한 바와 이루지 못한 것들을 점검하며 나를 꾸짖기도 하고 이 정도면 그래도 잘했다 동진아 하며 격려도 하고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것도 준비해 셀프 시상식을 거행하기도 했었다. 어느 작가님 말에 셀프 선물을 준비하는 순간 어른이 된 거라고 하던데 셀프로 벌을 주는 건 어르신이 된 건가.... 모르겠다.... 어른도 어르신도 되고 싶지 않은데 아이가 되는 방법은 어디 없나....


늦었지만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