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진 Mar 06. 2021

오빠는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 없지?

사랑


오빠는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 없지??



                오빠는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 없지?? 이 질문에 나는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5년 전 사귀었던 아이의 질문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그렇다고 긍정하면 그녀와 사귀었던 시간은 무어란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끝까지 갈 용기가 없었고 정신적 어떤 문제를 아직도 안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경위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건 그 아이에게도 좋지 않을 수 있다. 문제를 자각한 지점도 그녀와 헤어진 후였고 그 후 연애를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스스로 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다. 상대가 너무 아파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문제를 자각하고 원인에 대해서 나의 과거와 과거를 지나다 보니 이건 아마 삼촌의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 그렇다고 아니다 난 매 순간 전력 질주하듯 사랑한다 너도 그랬다고 말한다면 어떤 새 출발의 신호 같은 게 될 수도 있다. 왜 이렇게까지 고민하냐면 질문을 하기 전 지금 사귀고 있는 친구와 원만하지 못하고 외국에서 기약 없는 롱디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난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아직 끄나풀처럼 붙잡고 있는 나의 대한 감정을 내가 잘라줘야 할 필요를 느꼈다. 여기까지 마인드 맵을 그리는데 3초 남짓이었고 기어코 나는 그녀의 가슴에 긍정의 비수를 꽃아 버렸다.


역시나 약간의 텀을 두고 소주를 시켰고 얼마 전 본 영화의 한 장면을 이야기하며 그 장면이 너무 슬퍼서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횡설수설한 말을 이어갔다. 지켜보는 나의 마음도 타들어갔다. 역시 사실대로 말했어야 했나.


그녀가 나를 좋아하게 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이유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생각했을 때 아마 정해진 자신의 인생에 자신이 선택한 처음? 이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녀는 정말이지 정해진 게 많았다. 정해진 거 외에는 나쁘고 위험하고 더럽고 온갖 나쁜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랄 정도로 두려워했다. 나는 길가에 그냥 획획 주차를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정해진 곳에 주차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어디가 아프면 어디 병원에 가야 했고 그 병원에 누구를 찾아가야만 했다. 정해진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노력했고 흔한 휴학 한번 없이 정해진 곳에 취업을 했다. 그저 정해진대로 시키는 대로 말썽도 부린 적이 없는 아이다. 교육에 목이 마르면 그게 어디든 목을 축일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라 그런 아이 특유의 구김이 없었다. 우리 집은 지은 지 10년도 더 된 오래된 아파트였고 그녀가 사는 집은 기생충에 나올 법한 아니 더 한 대저택에 살고 있었다. 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그녀의 세계에서 삐딱선으로 비칠게 불 보듯 뻔했지만 그럼에도 원했으니 이건 분명 사랑이라 여겼을 거라 생각된다. 내 주변에서는 그런 여자를 왜 놓치냐고 타박하지만 솔직히 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정말 나쁜 맘이라도 먹었다면 그 순진무구한 아이를 어떻게든 사탕 발린 말로 꼬드겨 웨딩 마차를 같이 탔겠지만 난 이래 저 레 다 이겨낼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국산차는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 그녀는 내 불쌍한 sm7을 타고 서울 근교의 큰 베이커리 카페를 간 적이 있었다. 주차를 끝내고 나오는데 그녀의 친구 커플과 마주친 것이다. 이러저러 이야기를 하는 중에 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빨리 이 자리가 끝났으면. 나도 저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학창 시절 기능도 디자인도 너무나 아름다운 최신 핸드폰을 자랑하는 아이 앞에서 내 초라한 초콜릿폰을 자신감 있게 꺼낼 수 없었다. 서로 인사를 하고 간단한 호구조사도 필요 없었다. 어떤 사회적인 조건에서 보자면 100전 100패가 뻔했다. 


그 자리에서 나를 더 마음 아프게 했던 건 그런 내 존재가 그녀는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집이 어디에 땅이 있고 어디에 아파트를 하나 더 샀고 그런 이야기를 나도 치기 어린 맘에 해본 적이 있지만 그 모습 조차 귀엽게 여기기 때문에 나는 공작새를 포기했다. 그녀에게 우리 집은 그저 귀여운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디 아파트를 사고 땅이 있는 건 재롱떠는 수준이었기에 아이들이 칭찬받고 싶어서 수학 100점 맞았다고 신나서 자랑하면 엉덩이를 팡팡 치면서 귀여워해 주는 그런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으면 무기력해진다.


자주는 못 보더라도 오래 보고 싶은 그런 아이였다.


무작정 눈물을 흘리고 멈출 생각 않던 그녀. 맞다 나랑 연애를 할 당시에도 이성보다는 감정이 항상 앞서는 아이였다. 나는 어떻게든 해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시간을 보니 8:50분. 적어도 1시간은 충분히 이야기를 해야 했다. 가게 사장님이 곤란한 표정으로 나에게 빨리 일어나지 못해?라는 윙크를 보냈고 이대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여자나 가지고 노는 몰상식한 쓰레기로 전락할 수 없어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했는데 이놈에 코로나로 어디 갈 곳도 마땅히 생각나지 않고 한참을 고민하다. 말이 꼬여 아니 머리가 꼬여 한잔 더하자 고 말했다. 그녀는 그게 그러니까 흠.... 잠자리의 신호로 오역해버렸는지 정황상 그게 또 맞고 얼른 나를 택시를 태워 보내는 게 아닌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택시 안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마구 섞여가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들을 보면서 난 기사님에게 '한강으로 가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 이게 아닌데. 이게 정말 아닌데. 나는 오늘 사랑도 하지 않는 여자와 연애를 하는 이상한 놈으로 그리고 다시 만나서도 심한 말 끝에는 같이 자자고 하는 그런 쓰레기가 되었다. 술이 어느 정도 깨고 나서도 그녀와 내가 같이 아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질까 두려워하는 내 미련함과 뻔뻔함에 한 번 더 놀랐다. 이렇게 옹졸한 사람이었다니.



S야 나 너 진짜 사랑했어. 나보다 네가 더 소중해질 때쯤 도망간 거야. 미안해.

너와 어울리는 또는 덜 노력해도 되는 상대를 만나서 나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널 아껴주는 그런 사람 만나기를 내가 전심을 다해 기도할게. 나와 있으면 네가 가지고 태어난 거를 부끄러워해야 하니까. 

얼마만큼 좋아했냐고 물어본다면 죽었을 때 염라대왕님이 살아생전에 추억 10개 정도만 들고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너와의 추억은 꼭 들고 가고 싶을 만큼.

서로의 끄나풀이 없는 상태로 다시 만난다면 꼭 말하고 싶다.

정말 사랑했다고 너는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 있다고 그게 내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심인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