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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진 Mar 05. 2021

열심인 아이

사랑


열심인 아이


                 그 아이는 정말이지 열심인 아이였다.


 5년 전 나는 세계여행 중이었다. 여행경비가 넉넉하지 않아 부족한 상황마다 관광을 뒤로하고 나는 경제활동을 해야 했다. 스냅사진을 찍으며 돈을 벌기도 했고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나는 옷을 했던 사람이라 네가 그 날 걸치고 있던 옷들의 금액이 내 세계여행 경비보다 비싸다는 사실을 만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제품이 가짜 아닐까 하는 의심조차 들지 않았다. 부자들 특유의 여유로움과 관망적인 태도를 관찰할 수 있었다. 졸부 같은 게 아니다. 꽤 오래전부터 부여된 부. 그러니까 한 번도 경제적으로 욕구불만을 느껴본 적 없는 모습과 엘리트라 말할 수 있는 교육 수준, 정제된 말투와, 각이 잡혀 있으나 유연한 에티튜드. 내가 지금껏 만났던 게츠비들의 일관된 자태를 하나도 빠짐없이 가지고 있었다. 분명 여행이라는 접점이 없었다면 우리는 평생 숨 쉬는 것조차 모르는 사이였을 것이다.


우리는 잠깐 동안 연애를 했었다. 부자동네를 이야기하면 항상 거론되는 지역에서도 중앙에 그녀는 살고 있었다. 마치 요새처럼 넓게 벽들이 감싸고 있는 집들을 지나 그녀의 집을 들어설 때 난 얼이 빠진 기생충의 기우의 표정으로 들어갔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이런 집 두 번 이상은 와 본 것처럼 뭘 계속 안다는 듯 씨부렸었는데 분명 그녀의 눈에는 찐따 같았겠지. 찐따가 맞고 그냥 있는 그대로 있었으면 되었는데. 물론 그 모습도 넌 귀여워해 줬으니까. 인테리어나 공간의 미를 모르더라도 압도되는 집의 내외부를 보고 다시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의 대한 내 마음이 더 커져있었다면 나는 쓰레기 일까. 잘 모르겠다. 


그녀는 집을 좋아했지만 동시에 싫어하기도 했다. 장녀로 태어나 늦둥이 막내아들을 보면서 차별대우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정말 친부모가 맞나 싶을 정도의 유치한 차별이었다. 그런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없어. 열심히라도 안 하면 난 사랑받을 수 없거든'


그녀는 나와의 연애도 전력을 다해 열심이었고 나와는 그런 부분이 결정적으로 맞지 않았다. 폴 킴 말 따나 나는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있는 그대로 편하게 있기를 바랬지만 어딘지 쫓기듯 여유를 찾기 어려운 그녀는 항상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했다. 한 번은 핸드폰에 어떤 어플을 깔아 놓길래 뭔가 했더니 서로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전송해주는 어플이었다. 내가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나는 그다지 똑똑하거나 치밀하지 못해 감추는 거에도 서툰 편이다. 애초에 감출 것도 없고, 그녀의 그런 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섭섭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자기가 생각하는 사랑은 이런 모습이 아니라며.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책했다. 외모가 부족해, 키가 작아서 오빠가 나한테 이러나?, 내 열심이 부족했나?, 이 정도 했으면 적어도 내 노력에 반은 눈에 보여야 하는 거 아냐? 성형외과를 알아보는 가하면 외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에 나는 괴로웠다. 그게 정말 진짜 아닌데. 그녀는 자존감이 정말이지 높은 아이였는데 별것도 아닌 나를 골라서 짧은 시간에 자존감이 바닥이 났다.


우리 집은 굴곡이 정말 많은 집이었던 터라 나는 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영원히 할 수 있을 것 같은걸 어떤 최고의 사랑 표현이라 여겼다. 예를 들어 집을 대려다 준다 던가, 웃게 해 준다 거나, 손을 잡는 다던가, 요리를 해준다거나, 설거지를 해준다 거나, 같이 있어준다거나, 이런 시시콜콜한 것들. 그녀는 한 끼 식사에 10만 원 20만 원은 가볍게 쓸 수 있는 환경이었다. 특별한 날에는 이태리 와이너리가 추천하는 외계어 같은 이름의 와인을 먹지 않으면 사랑받는다는 기분을 느낄 수 없다 했다. 우리의 차이를 그녀는 잘 알고 있었고 티를 내지도 않았고 오히려 미안해했다. 미안해해야 하는 그 상황 자체가 싫었다. 내 국산차를 처음 탔을 때 너의 표정이 나를 아프게 했다. 친구 커플과 만났을 때 내 존재가 순전히 부끄러움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참 참담했지.


연애는 서로가 다른 환경에서 애정이라는 감정으로 전쟁을 하기에 성장한다. 지금 만나는 상대와 정말이지 무서울 정도로 문제가 없다면 둘 중 하나라 나는 확신한다. 한 명이 일방적으로 감내하고 있거나 희박한 가능성으로 정말 잘 맞거나. 나는 후자 쪽을 만나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녀에게 너무 큰 짐을 일방적으로 짊어지게 했던 것 같다. 


서로가 생각하는 연애의 모습은 달랐고 우리는 해어졌었다. 나는 그녀와 헤어질 때 눈물을 보였는데 결국 내가 편하자고 끝까지 손을 잡아 주지 못한 자괴감에 나온 눈물이었다. 그녀의 열심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했고 이건 남자 친구가 채워 줄 수 없는 부분이라 결론을 내렸다. 친구에게 말하자 '너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니라고 했다.'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다. 


내가 갑자기 5년이나 지난 연인을 떠올린 이유는 얼마 전 그녀와 만났기 때문이다. 해어질 때 어떻게든 울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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