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르페브르 <리듬분석 Elements de rythmanalyse>
공간과 일상연구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저술가 중 한 명인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80대 중반인 그의 말년에 그의 평생 연구 주제였던 공간, 시간, 도시의 일상생활을
‘리듬’ 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통해 분석을 시도했다.
마지막 아내였던 카트린 레귈리에와 함께 『리듬분석 프로젝트』(1985), 『지중해도시들에 대한 리듬분석 시도』(1986)라는 두 편의 짧은 글을 쓴 후, 본격적으로 리듬분석에 대한 집필을 시작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집필을 마치지 못한 1991년 세상을 떠났고, 따라서 리듬분석에대해 시작한 사유가 어떤 지점으로 수렴되었는지 명백히 남기지는 못했다. 남겨진 것은 그의 동료 르네루로가 그의 유고 원고들을 모아 낸 『리듬분석의 요소: 리듬 지식 소개(Elements de rythmanalyse: Introduction a la connaissance desrythmes)』(1992) 였고, 한글로는『리듬분석』으로 번역되었다.
르페브르는 철학가이면서 동시에, 나치 치하에서는 레지스탕스로,
프랑스공산당 내에서는 반스탈린주의 투쟁가로 프롤레타이라 과학의 비판가로, 프랑스 68운동에서는 학생들의 사상적 지도자로 활동하는 등 현실 문제에도 적극 참여했던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전공이 철학이기 이전 어린 시절 에콜 폴리테크니크 입학 시험을 준비하며 가졌던 수학과 과학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고, 그 외에도 방대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평생 60여편의저서와 수많은 글들을 집필했다. 그는 다양한 영역을 엮어 나가며, 평생 체험과 인식의 일치를 위해 사유한 철학자로서, 진정한 사유를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사용했던 다양한 개념들은
하나의 체계 속에서 응고되어 버리는 전통철학의 개념들과 달리
새로운 사유를 자극하는 효모 같은 구실을 했다.”
공간에 대한 그의 생산적인 이론화도 그러하였지만, 스튜어트 엘든은 『리듬분석』역시 “ 어떻게 그가 외부의 사유들을 관념, 실례, 분석 속에 탁월한 방식으로 혼합함으로써 맑스주의패러다임을 비판하고 넘어섰는지를 보여준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본인 역시 “리듬들을 분석하기 위한 하나의 과학, 새로운지식의 영역을 정초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리듬분석』이르페브르의 고유한 이론이라기 보다는,
당시에 대두되었던 새로운 분석 방식 혹은 연구 요소로서의 리듬에 대한
르페브르의 구체화 시도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르페브르의 동료로서 『리듬분석』을 출간한 르네 루로에 따르면, 리듬분석은 1980년대 초반 혹은 아마도 그 이전에 일상비판의 필수적인분과가 되었고 대세로 인정받고 있었다고 한다. 영어판 해제에서 스튜어트 엘든은 리듬을 분석의 수단으로활용한 두 저자를 소개한다. 둘 다 르페브르와 동시대에 저서를 남겼고.맑스보다는 니체와 하이데거의 영향을 더 많이 받긴 했지만 르페브르와 비슷한 지적 배경을 공유한다.
첫째는 언어의 리듬 패턴에 대해 논한 앙리 메쇼닉이다.
그는 『리듬비평』(1982)에서
“리듬들과 그것들을 정의하는 방법들 사이의 관계는 인문학과 의미론에 명백한 도전을 제기”한다며
“이 도전은 단지 시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문학적 실천의정치학을 이룬다”고 지적하고 있다.
두 번째는 『역사의 속편』(1992)에서 문학 분석과 사회이론을 결합해 낸 엘리자베스 디즈 어마스이다. 어마스는다양한 문학작품들의 예를 통해 시간과 역사에 대한 인식변화를 보여주고, “탈근대적 시간성의 성격을 가장잘 보여주는 것은 음악적 리듬”이라고 말한다. 다음은 어마스가인용한 나보코프의 『아다(ada)』(1969)의 한 구절이다.
"시간감각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은 리듬뿐일지도 모른다.
리듬의 반복적 비트가 아니라 두 비트사이의 틈, 검은 비트들 사이의 회색 틈, 부드러운 간격을말하는 것이다. 반복적 진동 자체는 단지 측정과 관련된 보잘것없는 관념만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진짜 시간이 도사리고 있다". (나보코프, 1969)
그 외에도 르페브르가 『공간의 생산』에서 자주 인용하는 가스통 바슐라르도 『공간의시학』에서
“세계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거대한 리듬에서부터 인간의 가장 예민한 감수성에 작동하는 정밀한 리듬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이론적 리듬분석을 요청”했고, 벤야민, 기 드보르 역시 리듬을 사회문화적 경험과 이해를 위한 연구 주제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고려하고 있었다고 한다. (장세용신지은, 2012)
따라서 우리는 『리듬분석』이 르페브르의 고유한 이론이라기 보다는, 당시에 대두되었던 새로운 분석 방식 혹은 연구 요소로서의 리듬에 대한 르페브르의 구체화 시도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르페브르 역시 『리듬분석』집필 훨씬 전부터 리듬 개념에 주목해왔다. 이미 1968년 『한 연구의 소개』의 일상생활에 관한 사회학적 주제들중에서 “’인간-자연’분리, 리듬들의 해체”(p.25)를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일상생활비판』2권(1961)에서리듬분석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예고하고, 『리듬분석』의 예고편에 해당한다고 논의되는 3권(1981)에서는 이 약속을 이행한다. 『공간의 생산』(1974)에서는 “공간의역사는 당연히 시간의 역사와 분리되지 않는다”며 공간의 역사 연구의 출발점은 “공간-자연의 리듬, 자연의순환에 가해진 변화, 그리고 인간의 몸짓, 특히 노동에 의해그 변화를 공간 속에 각인시키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컨테 시간-공간적리듬, 즉 사회적 실천에 의해서 변화된 자연의 리듬을 출발점으로 잡아야 한다”(1974, p.195)고 논하며 시간과 공간을 ‘다르게’그리고 ‘함께 사고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인다. 이후 ‘리듬분석 프로젝트’에서현대 물리학 이론 등장 이후에도 시간과 공간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오래된 습관이 남아있다며 해당 이론들이 현재로서는 다양성들도 함께 파악할 수 있는통일적인 이해를 제공해 주지 못한다며 제한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도 한다. 나아가 자아와 관련해 리듬분석은“더 구체적이고 더 효과적이며, 몸과 공간적 실천의 전유교육에 좀 더 접근해 있기 때문”에 “정신분석을 대체”(1974, p.308)할 수도 있다는 리듬학을 예측하기도 한다.
리듬이야말로 지금까지 철학적 체계가 결여하고 정치조직들이 망각해 왔음에도 감성과 육체에 의해 체험되고 느껴지고, 만져진바로 그 구체적 보편이 아니겠는가? (Lefebvre, 1992)
장소와시간, 에너지의 소비의 상호작용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리듬이 있다.(Lefebvre, 1992)
『리듬분석』에 이르러서 르페브르는 아직은 불투명한 리듬의 일반적인 개념 정리를 시작으로리듬분석에 필요한 여러 가설, 전제들을 제시하고, 리듬 분석에필요한 요소들에 대한 개념 정리 및 리듬분석가의 자세 등에 대한 사유를 펼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