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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귤 Dec 10. 2016

Agoraphobia

    나는 몇 가지 병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가장 불편하고 짜증 나게 느껴지는 것은 광장 공포증이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으면 거대한 파도가 날 덮치고 나는 그들 앞에서 한없이 무능력해진다. 숨이 거칠어지고 가슴은 누군가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답답해진다. 나는 그렇게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다가 먼 곳으로, 구석진 곳으로, 사람이 적은 곳으로 도망친다.     

    

    이 병이 짜증 나는 이유는 정도가 항상 다르다는 것이다. 충분히 버틸 수 있을 때가 있으면, 지금 벗어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을 때가 있다. 이런 나도 가끔씩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과 같은 존재라는 걸 느끼고 싶을 때가 있지만,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실감한다. 난 왜 광장 공포증에 빠진 것일까? 아무리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광장 공포증이란 걸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생 때였다. 평소 버스처럼 사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에서 어지러움을 느끼곤 했는데, 거기까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중학교 1학년 소풍으로 에버랜드를 가게 됐다. 그곳에서 난 처음으로 광장 공포증의 증상을 만났다. 식은땀이 나고,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내 온몸을 뒤덮었다.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릴 벗어나 최대한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나마 사람이 적던 장미공원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증상이 생각보다 오래가서 나는 집합시간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눈을 감고, 이어폰을 끼고, 나는 이곳에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렇게 내 자유이용권은 광장 공포증으로 바뀌었다. 그 뒤로 난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길 꺼려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날 괴롭히고 있는 광장 공포증은, 이제 내 일부분처럼 느껴진다. 광장 공포증이 없는 내가 상상이 안될 정도로 날 이루고 있는 한 부분이 되어버린 듯하다. 이제는 광장 공포증을 가지고 생활하는 게 익숙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사람들이 많은 곳은 힘들지만, 그곳이 두렵진 않다. 나도 나만의 방식이 있고, 그 방식으로 증상을 이겨내려 노력하니까.     


Agoraphobia

이제는 나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것

아마 앞으로도 안고 살아가게 될 나의 원수

죽을 때까지 곁을 지킬 나의 친구

나는 너를 미치도록 미워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다

그저 슬퍼할 뿐

윤동주 시인은 말했지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난 그와 다르지만

영원히 슬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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